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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갑질 상사의 갈등 극복] 입 안에 있으면 내가 말을 다스리고 입 밖에 있으면 말이 나를 다스린다

[후박사의 힐링 상담 | 갑질 상사의 갈등 극복] 입 안에 있으면 내가 말을 다스리고 입 밖에 있으면 말이 나를 다스린다

배려 없는 상사의 말은 부하에겐 독 … 권위주의 버리고 수평적 자세 가져야
그녀는 요즘 매일 밤 나쁜 꿈에 시달린다. 그저 잘 해보자고 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줄은 몰랐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억울하고 슬프다.

1주일 전 노동조합이 그녀에 대한 보직 해임을 요구하기 전까지,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전도유망한 보직자였다. 지난 3년간 야근하지 않은 날을 손꼽을 정도였고 성과도 꽤 있었다. 물론 혼자의 노력으로 된 것은 아니다. 부서원들의 협력으로 가능했다. 노동조합은 그녀가 수년간 야근을 강요했고, 갓 결혼한 여직원에게 함께 일하는 동안 임신 금지를 언급했으며, 휴가를 못 가게 한 ‘인권침해 상사’로 적시했다.

물론 그녀가 그런 말을 하긴 했다. 그러나 강요나 종용은 전혀 아니었다. 회식 자리에서 “지금은 바쁘니 임신은 나중에 하면 어떠냐”며 웃으면서 말을 건넸고, 멀리서 출퇴근하는 직원에게 회사 숙소를 이용하면 편한데다 저녁까지 해결된다고 말했을 따름이다. 하필 회사의 중요 행사기간에 외조모상을 당한 담당직원이 휴가를 3일 쓰겠다고 해서 기간을 좀 줄이면 어떠냐고 물었을 뿐이다. 몇 마디의 실언이 그녀를 곤궁에 빠뜨렸다. 부서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는데도, 사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졌다.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심각하게 퇴사도 고민해 봤지만, 그간의 노력과 고생이 너무 억울해 미치겠다.

사회 곳곳에서 ‘갑질’이 벌어진다. 회사에서 눈치 보느라 야근하고 연차휴가는 다 못 쓴다. 일터에서 직원은 사장을 위해 봉사하는 노예로 취급된다. 아파트에서 부녀회에 찍힌 경비원은 하루아침에 모가지가 날아간다. 학교에서 논문 심사권을 쥔 교수는 학생을 종처럼 부린다. 콜센터에서 고객이란 지위를 악용해 욕설과 행패를 일삼는다. 매장에서 행사비를 납품업체에 마구 떠넘긴다. 하도급업체 사장이 대금 결제를 받으려면 거래처 직원에게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야 한다.
 사회 곳곳엣 벌어지는 갑질
갑질은 강자인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다. 물질적·정신적·인격적으로 피해를 준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90%가 갑질 당한 경험이, 33%가 갑질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다. 갑질을 하고도 인식하지 못한다. 갑처럼 보이려고 위세를 떨고, 을처럼 안 보이려고 허세를 부린다. 갈등이 생기면 큰소리부터 내고, 무시 안 당하려고 기(氣) 싸움을 한다. 영원한 갑도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 갑·을·병으로 꼬리를 무는 악순환으로 정신건강을 해친다.

사람 사는 곳에는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 강자는 야심차고 교만하며 약자를 비난하고 경멸한다. 약자는 비겁하고 비굴하며 강자에게 아첨하고 순종한다. 강자와 약자는 상대적이다. 더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더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 강자는 이길수록 더 강해지고, 약자는 질수록 더 약해진다. 강자와 약자의 내면에는 나약한 인간이 있다. 강자는 불안에 떨고, 약자는 절망에 빠진다. 인간은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다. 누구나 두려움을 안고, 야망과 저항 사이에서 방황한다.

갑질은 권위주의의 유산이다. 권위는 남을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이고, 권위주의는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다. 권위는 권위주의를 거쳐 권력이 된다. 권위는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드러난다. 상호 존중의 질서가 형성된다. 권위주의는 스스로 드러내려 하고, 남이 인정하지 않으면 강제라도 따르게 한다. 강자와 약자의 질서가 형성된다.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고, 약자는 강자에 종속된다. 갑질은 자신의 지위를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로 보는데서 온다.

한국사회에 갑질이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식민지 잔재 탓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전략적으로 앞잡이 특권층을 만들어내고, 특권층과 서민 사이의 소통을 단절시켰다. 군대문화에서 온다. 군대는 명령과 복종을 중시하는 강력한 권위주의 문화다. 고도 성장기에 군대문화가 사회 전반에 도입되고, 자연스럽게 기업문화로 정착되었다. 권위의 상실에서 온다. 비리와 부정부패로 국가의 권위가 떨어지고, 장기적인 청년실업으로 가정의 권위가 추락했다. “왕은 왕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마음을 살피고, 시대정신을 읽어라
자, 그녀에게 돌아가자. 그녀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말을 아끼자. 골라서 말하자. 예부터 사람의 품격을 보는데 몸가짐과 말과 글씨를 기준으로 삼았다. 지위에 맞지 않는 말은 부하에게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신중히 말하자. 말이 입 안에 있으면 내가 말을 다스리고, 입 밖에 있으면 말이 나를 다스린다. 무심결에 나온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줄여서 말하자.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다. 말할 필요가 없음을 느껴야 하고, 말하고 싶지 않음을 지녀야 한다. 말해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하고, 말로 할 수 없음을 봐야 한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말을 화려하게 하는 자는 진실성이 없다. 말을 어눌하게 하고 행동을 민첩하게 하라.”

둘째, 마음을 살피자. 분노하지 말자. 상대가 더 분노한다. 그동안 나만 생각하고 살았다. 성공을 위해 부하의 희생을 담보해선 안 된다. 분노의 대상을 내게 돌려, 나를 바꾸는 에너지로 삼자. 억울해 하지 말자. 상대가 더 억울하다. 그동안 남을 고려하지 않고 살았다. 억울한 것은 인정에 목마른 상태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하며 살짝 벗어나자. 슬퍼하지 말자. 상대가 더 슬퍼한다. 그동안 남을 돌보지 않았다. 누구나 생애주기의 애환이 있다. 모두가 고독하다는 인식에 닿아, 나의 작은 사랑을 나눠보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

셋째, 시대정신을 읽자. 시대정신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념과 태도다. 시대정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현재가 지나가야 과거의 시대정신을 깨닫게 된다. 시대정신은 끊임없이 변한다. 과거 산업시대는 권위주의와 수직조직을 특징으로 했다. 지배·종속의 관계이고, 상사가 해답을 가졌다. 현대 지식정보시대는 자유주의와 수평조직을 특징으로 한다. 상호 존중의 관계이고, 부하가 해답을 가진다. 리더가 되려면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 똑똑한 리더라도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면 부하로부터 외면당한다.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시대정신을 자신의 의식으로 삼는 자만이 역사를 선도할 수 있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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