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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디오픈의 명승부 10장면] 세계 랭킹 396위 언더독, 그린의 반란

[역대 디오픈의 명승부 10장면] 세계 랭킹 396위 언더독, 그린의 반란

2003년 대회서 첫 출전한 벤 커티스, 우즈 꺾고 우승... 1997년 그렉 노먼의 267타 기록 깨지지 않아
세인트앤드루스를 상징하는 스윌컨 다리 위에서 모자를 벗어 흔들고 있는 톰 왓슨. 그는 2009년 턴베리에서 열린 138회 대회에서 환갑의 나이에도 4라운드 내내 우승 경쟁을 펼쳐 준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145회 디오픈은 한 편의 멋진 듀오 스토리가 담긴 매치 플레이였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골프 게임인 디오픈을 돌아보면 멋진 명승부, 주목받지 못했던 언더독의 드라마틱한 반전의 드라마가 나온다. 디오픈 역사의 명승부 10개 장면을 다시 돌아본다.
 1860년 프레스트윅, 막 오른 디오픈
1860년 10월 17일 수요일, 스코틀랜드 프레스트윅에서 8명의 선수가 1만여 명의 갤러리 사이에서 겨룬 대회가 첫 번째 디오픈이다. 20년간 영국 골프계를 군림하던 앨런 로버트슨이 사망한 후 누가 최고의 골퍼인지를 가리는 이벤트였다. 첫해 참가 자격은 프로에만 국한했고 상금은 없었다. 대신 이 골프장의 회원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수여되던 모로코 가죽으로 만든 붉은색 챔피언 벨트를 수여하기로 했다. 유력한 우승 후보는 앨런의 그늘에 가려졌던 수제자 올드톰 모리스와 윌리 파크였다. 파크는 앨런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젊은 골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실제로 파크는 앨런 생전에 수없이 도전장을 냈었다. 비록 성사되지 않았지만 윌리는 그만큼 떠오르는 별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중심인 머슬버러골프장 헤드 프로이던 파크는 당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경기는 단 하루, 12홀을 3번 도는 36홀 스트로크 방식이었다. 앨런의 수제자 모리스는 자신이 만들고 10년간 다듬은 골프장에서 대회를 주최하는 이득을 누렸다. 12홀의 첫 라운드를 끝냈을 때 파크는 55타를 쳐, 58타를 친 모리스에게 3타나 앞섰다. 3라운드가 시작됐을 때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됐다. 39세의 모리스는 27세의 파크를 상대하기에는 벅찼다. 모리스는 59타를 쳤지만, 파크에게 한 타를 따라잡은 데 만족해야 했다. 모리스는 58-59-59(176)타를 쳤고, 파크는 55-59-60(174)타로 2타를 앞섰다. 골프 지존의 자존심이 걸린 제1회 디오픈은 윌리 파크의 승리로 끝이 났고, 영광의 첫 번째 벨트는 파크의 허리춤에 채워졌다. 향후 수년 간 두 사람의 자존심 대결은 2대에 걸쳐 이어졌다. 모리스는 결국 디오픈에서 총 4번을 우승해, 3승에 그친 파크를 제치고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1872년 프레스트윅, 톰 모리스 2세의 4연패
1868년 최연소(19세)로 디오픈에서 우승한 톰 모리스 2세는 11회 대회인 1870년 149타를 쳐서 R. 커크, D. 스트라스를 꺾고 디오픈 3연패를 달성했다. 이에 따라 그는 세계 최초의 트로피인 붉은 벨트를 10년 만에 영구 소장한 선수가 됐다. 디오픈 주최 측은 다음해인 1871년 트로피를 만들 돈이 없어 대회를 열지 못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모리스 2세는 이듬해인 1872년에도 우승하면서 가장 먼저 클라렛저그를 들어올린 첫 번째 챔피언이 됐다. 그의 아버지 톰 모리스도 2, 3, 5회에 걸쳐 3승을 거두었다. J. 앤더슨, R. 퍼거슨도 초창기에 3연패씩 달성했다. 하지만 145년 역사의 디오픈을 4번 연속 제패한 이는 톰 모리스 2세가 유일하다.

 1914년 프레스트윅, 해리 바든 6승 달성
‘바든 그립’의 창시자로 알려진 해리 바든은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제임스 블레이드, J. H. 테일러와 함께 ‘삼총사’로 불린 디오픈의 다승왕이다. 세 사람이 1894년부터 20년간 16승을 거뒀고, 그중에서 6승을 거둔 최다승왕이 바든이다. 1896년 뮤어필드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해리 바든은 4라운드 316타를 쳐서 J. H. 테일러와 동타가 됐다. 당시 연장전은 18홀을 두 번 도는 36홀 승부였는데 바든이 2타차로 우승했다. 이후로 그는 1898~99년, 1903년, 1911년, 1914년까지 총 6번을 우승한다. 프레스트윅에서 열린 1914년 디오픈에서 바든은 306타를 치면서 J. H. 테일러를 제치고 우승한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이듬해부터 1919년까지 5년간 대회가 열리지 못했고, 삼총사의 우승 드라마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후로 톰 왓슨, 남아공의 피터 톰슨이 5승을 쌓았으나 6승의 기록은 불멸일 듯하다.

 1977년 턴베리, 왓슨과 니클라우스의 백주의 대결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턴베리에서 1977년 최초로 열린 디오픈에서 두 선수는 마지막 홀까지 가는 엎치락뒤치락 명승부를 연출했다. 두 선수의 2라운드까지 스코어는 같았고, 한 조를 이룬 3라운드에서도 둘은 똑같이 65타를 기록했다. 37세의 니클라우스는 14번의 메이저 우승 기록을 가진 베테랑이었고, 왓슨은 28세의 나이로 그해 마스터스에서 니클라우스를 제압한 뛰어난 신인이었다. 4라운드 12번 홀까지는 니클라우스가 2타 앞서 있었지만 왓슨은 13, 15번 홀에서 각각 버디를 잡아 동타를 만들었다. 15번 홀에서는 무려 60야드 지점에서 퍼터로 굴린 볼이 굴곡을 타고 서너 번 오르내리면서 깃대를 맞추는가 싶더니 홀로 사라지는 순간은 연극의 카타르시스를 연상시켰다. 대결이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9번홀 페어웨이의 로프가 무너지고 일부 갤러리가 넘어지는 해프닝도 생겼다. 그중에 클라이맥스는 파5 17번 홀이었다. 둘 다 볼을 페어웨이에 잘 올려놓은 상황에서 왓슨은 3번 아이언 샷을 그린에 올렸다. 러프에 빠진 니클라우스의 볼은 3번 만에 그린에 올랐으나 홀 120cm 지점이어서 버디는 가능해 보였다. 왓슨은 편안하게 투 퍼트로 버디를 잡아 처음으로 한 타 앞섰다. 니클라우스는 짧은 거리에서 버디를 놓친 후 한동안 땅만 보고 있었다. 18번 홀에서 왓슨은 1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하고 7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홀 60cm에 떨어뜨렸다. 러프에서 8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한 니클라우스는 홀 10m 거리에서 신기에 가까운 버디 퍼트를 구겨 넣어 마지막 퍼트까지 긴장감이 이어졌다. 둘의 성적은 3위 허버트 그린과는 무려 10타 차였다. 이 경기는 ‘백주의 대결(Duel in the Sun)’로 불리게 됐다.

 1984년 세인트앤드루스, 세베 바예스테로스의 대역전
디오픈을 다섯 번 우승한 톰 왓슨은 1984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113회 대회에서 흥행 아이콘이었다. 미국 출신으로 이 대회만 3연패이자 통산 6승에 도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묘하게도 3라운드까지 이안 베이커 핀치와 11언더파로 공동 선두였다. 하지만 2타 뒤에서 스페인의 골프 천재 세베 바예스테로스가 2승을 향해 맹추격 중이었다. 미국 선수가 바든의 최다승과 타이를 이룰 수 있을까에 골프팬의 관심은 컸다. 마지막 조인 왓슨이 버디를 잡으면 바로 앞 조인 바예스테로스는 함성 소리를 들으며 자신도 버디를 잡으려 신경을 곤두세웠다. 클라렛저그를 향한 두 선수의 팽팽한 기 싸움은 갤러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세베는 가장 어렵다는 17번 홀에서 파를 지켜내면서 공동 선두로 뛰어올랐다. 바로 뒤에서 경기한 왓슨이 파를 지켜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왓슨의 두 번째 샷은 도로 옆 벽을 맞고 들어오면서 결국 보기를 적어냈다. 마지막 홀에서 바예스테로스는 홀 6m 지점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고는 마치 투우사처럼 세리머니를 했다. 한 손을 들어올린 인상적인 동작은 이후 바예스테로스의 모든 브랜드에 활용될 정도였다.

 1999년 카누스티, 장 방 드 벨드의 불운
스코틀랜드 동쪽 해안 카누스티에서 열린 1999년 디오픈은 프랑스의 장 방 드 벨드가 마지막 날 마지막 홀까지만 해도 3타 앞서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흐름이었다. 벨드는 첫 번째 프랑스인 우승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홀에서 로리의 두 번째 샷이 개울에 빠지게 되고 거기서 벌타를 받고 한 샷이 다시 벙커에 빠지면서 결국 트리플 보기를 적어내 연장전에 끌려가게 됐다. 벨드의 참사로 인해 연장전 승부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선수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메이저 첫 우승을 차지한 30세의 폴 로리다. 그는 일요일에 67타를 치면서 290타로 마쳐 저스틴 레너드와 함께 4홀 연장전에 나가게 됐다. 이 대회 이전에도 로리는 42위 이상 올라간 적이 없었으니 그의 이 대회 우승은 행운의 산물이었다. 18번 홀에서 클라렛저그에 벨드의 이름을 새기던 세공사는 급히 지우고 새로운 이름을 새겼다.
 2000년 세인트앤드루스, 타이거 우즈 최다차 우승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2000년 디오픈에서 첫 우승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2000년 디오픈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처음으로 우승하면서 자신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대회였다. 어니 엘스와 토마스 비욘이 11언더파로 공동 2등이었고, 우즈는 19언더파 269타로 8타차의 압승이었다. 우즈는 첫날 67타로 선두권에 오른 후 66-67-69타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기력을 보였다. 한 달 전 페블비치에서 열린 US오픈에서 기록한 15타 차의 압도적인 우승에 이어 링크스 코스에서도 우즈의 가공할 위력이 입증됐다. 우즈의 4라운드 타수는 1993년 그렉 노먼이 로열세인트조지스에서 세운 역대 디오픈 최저타 267타에 2타 뒤진 기록이지만 2위와의 타수 차는 가장 큰 우승이었다.
 2003년 로열세인트조지스, 신예 벤 커티스의 이변
2003년 로열세인트조지스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당시 세계 골프랭킹 396위에 불과한 신예 벤 커티스가 타이거 우즈 등을 제치는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켰다.
세계 골프랭킹 396위에 불과한 미국 오하이오 출신의 26세 벤 커티스는 로열세인트조지스에서 열린 대회에서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켰다. PGA투어 루키로 이전까지 10위에 든 적이 없었고, 메이저 대회는 첫 출전이었다. 디오픈 바로 전의 웨스턴오픈에서 13위를 하면서 디오픈 출전권을 얻었을 정도다. 대회 3라운드까지만 해도 선두에 2타차로 뒤져 있었다. 마지막 날 세계 1위 타이거 우즈와 동타에서 시작하자 모든 언론은 우즈의 스코어에만 관심을 가졌다. 커티스는 그날 69타를 쳤다. 최종 스코어 1언더파 283타로 유일하게 언더파를 친 선수가 되면서 클라렛저그를 들어올렸다. 한 타 차 공동 2위로 베테랑 비제이 싱, 토마스 비욘을 눌렀고, 전성기의 우즈마저도 공동 4위로 마쳤다. 우승 후 그의 세계 랭킹은 35위로 급상승했다.
 2009년 턴베리, 환갑 톰 왓슨의 열정
턴베리에서 열린 138회 대회에서 톰 왓슨은 환갑의 나이에도 4라운드 내내 우승 경쟁을 펼쳤다. 첫날 5언더파 65타를 치면서 선두로 나선 왓슨은 이어서 70-71타를 쳐서 마지막 날 선두로 시작했다. 17번 홀까지 1타차 단독 선두였던 왓슨은 18번홀 티샷도 페어웨이로 잘 보냈다. 뒷바람에서 두 번째 샷을 했는데 그린을 넘어가 엣지에 멈췄다. 퍼트로 어프로치를 했는데 핀을 2.4m 지나쳤다. 우승이라는 생각에 긴장했는지 파 퍼트는 들어가지 못했다. 연장전으로 끌려나갔지만 다리가 풀린 왓슨은 아들 뻘 스튜어트 싱크와의 4개 홀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넘겨야 했고, 싱크는 갤러리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왓슨은 경기를 다 마치고 기자실로 들어왔다. 우울해하는 취재진을 향해 “이게 내 장례식은 아니지 않나”라는 유머를 던지기도 했다. 최고령 메이저 우승을 눈앞에 뒀던 왓슨은 통산 39승에 그쳤으나 전 세계 시니어 골프팬으로부터 열띤 응원을 받았다.
 2016년 로열트룬, 63타 맞수 스텐손과 미켈슨
지난해 스코틀랜드 로열트룬에서 열린 145회 디오픈은 156명이 출전했으나 스웨덴의 헨릭 스텐손, 미국의 필 미켈슨 두 선수만 돋보였던 대회였다. 1라운드는 미켈슨이 8언더파 63타를 치면서 선두로 내달렸다. 63타는 메이저 대회에서의 최저타 타이 기록이다. 8m 거리의 마지막 퍼트가 홀을 훑고 나오자 캐디인 짐 매케이는 그린 뒤로 누워버리기까지 했다. 다음 날 스텐손이 6언더파 65타로 뒤쫓으면서 두 사람의 매치가 형성됐다. 3라운드는 스텐손이 3언더파 68타를 치면서 한 타를 줄인 데 그친 미켈슨을 제치고 한 타차 선두로 올라섰다. 이미 3위권 선수들은 저만치 뒤에서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마지막 날 두 선수는 다시 빛났다. 스텐손이 최저타 타이인 8언더파 63타를 치면서 미켈슨의 보기없는 6언더파 65타를 3타차로 제쳤다. 3위인 J. B. 홈즈는 미켈슨보다 11타나 뒤에 있었다. 스텐손은 우승컵인 클라렛저그를 들고 “좋은 플레이를 함께 한 미켈슨에게 감사한다”고 경의를 표했다. 이날 경기는 3년 전인 2013년 디오픈에서 미켈슨이 3타차로 스텐손을 제압하고 우승했던 순간을 연상시켰다. 스텐손은 마지막 날 버디 10개(보기 2개)로 8타를 줄이면서 대회 최저타수(20언더파 264타)로 우승했다. 무결점 플레이로 맞선 미켈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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