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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와 건축가의 맛있는 협업

요리사와 건축가의 맛있는 협업

노부 마츠히사와 데이비드 록웰, 뉴욕에 새 레스토랑 ‘노부 다운타운’ 선보여
뉴욕 금융지구에 문을 연 ‘노부 다운타운’ 레스토랑은 록웰과 노부의 창조적인 협업으로 탄생한 가장 최근의 작품이다.
미국 뉴욕의 금융지구에 새로 문을 연 레스토랑 ‘노부 다운타운’. 바쁜 점심 시간이 지난 뒤 건축가 데이비드 록웰이 자신의 작품을 살펴본다. 1층의 도리아식 대리석 기둥들은 약 9m 높이의 라운지 천장까지 이어진다. 바에서는 검정 물푸레나무 조각 작품이 눈길을 끈다. 메인 레스토랑의 기다란 소파 뒤쪽에는 맞춤 패브릭을 기모노처럼 늘어뜨렸다. 천장에는 오리가미(일본식 종이접기)에서 영감을 얻은 목재 캐노피(지붕 모양의 덮개)가 펼쳐져 있다. “이만하면 스시 요리사와 멕시코 출신 남자에게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록웰은 말했다.

이곳은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자란 록웰과 일본인 요리사 노부 마츠히사의 창조적 협업이 만들어낸 가장 최근의 결과물이다. 노부는 지난 20년 동안 카타르 도하부터 호주 멜버른, 홍콩,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까지 세계 곳곳에 22개의 레스토랑을 세웠다. “생각해 보면 노부는 오래 전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어 했고 난 늘 요리사를 꿈꿨던 것 같다”고 록웰은 말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유대감이 있다.” 노부는 “우리는 함께 성장해 왔다”고 맞장구쳤다.록웰과 노부가 1990년대에 뉴욕의 자선행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죽이 잘 맞았을지 상상이 간다. 두 사람 다 겸손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이다. 내가 뉴욕의 노부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 검정색 T셔츠를 입은 록웰이 식당 안을 구경시켜줬다. 한편 노부는 런던 파크레인에 있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나를 만났을 때 미소 지으며 반겨줬다. 두 사람 모두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유명인사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세심한 배려다.

노부 마츠히사(왼쪽)와 데이비드 록웰은 지난 23년 동안 많은 레스토랑과 호텔을 함께 디자인했다.
노부의 ‘노부 레스토랑’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록웰 그룹은 직원 250명을 둔 건축·디자인 회사로 W 호텔, 안다즈 하얏트 호텔, 로스앤젤레스(LA)와 뉴욕의 공동작업 공간 노이에하우스 등으로 역시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다.

노부 다운타운의 웅장한 디자인은 로어 맨해튼 트라이베카 지역에 있던 오리지널 노부 레스토랑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1994년 개업해 지난 3월 문을 닫은 이 레스토랑은 1990년대에 고급 식당의 개념을 재정의했다. 노부는 1970년대에 페루에서 일한 경험을 일본 전통 요리에 적용해 당시엔 생소했던 ‘퓨전’ 요리를 개발했다. 그는 1987년 LA 베벌리힐스에 첫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곳을 매우 좋아했던 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노부에게 뉴욕에 레스토랑을 열자고 제안했다. 그때 노부의 사업 파트너였던 레스토랑업자 드루 니포런트가 그에게 록웰을 소개했다.

노부와 록웰은 요식업계에서 새로운 뭔가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트라이베카의 노부 레스토랑은 다른 어떤 레스토랑과도 달라 보였고 음식도 달랐다”고 록웰은 말했다. 노부의 디자인은 캐주얼하면서도 격식을 갖춘 듯하고 동서양이 조화를 이루는 그 레스토랑의 음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전통적인 고급 식당은 새하얀 천으로 된 식탁보와 2시간 30분이 걸리는 식사 시간으로 대표됐다.

하지만 노부는 식탁보를 덮지 않은 나무 식탁을 그대로 사용했고 식사 시간을 1시간 30분 정도로 줄였다. 손님들이 나머지 1시간 동안 각자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한마디로 이 레스토랑은 고급 식당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파트너십에도 문제가 없진 않았다. 그들은 트라이베카 레스토랑의 계단을 놓고 벌인 언쟁을 회상했다. 록웰은 레스토랑의 공간 구분을 위해 한쪽에 단 하나를 더 올려 바닥 높이에 차이를 두려 했지만 노부는 그 계획에 반대했다. “난 바닥을 ‘평평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어느날 공사 현장에 가 보니 중간에 턱이 있어서 록웰과 한바탕 싸웠다”고 노부는 돌이켰다. 결국 노부가 이겨서 바닥을 평평하게 했다.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록웰은 말했다.협업은 록웰의 커리어에서 핵심적인 주제였다.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뉴욕 하이라인 파크와 LA 브로드 미술관을 건축한 회사)와 협업으로 진행하는 ‘셰드(Shed)’다.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에 건설 중인 시각예술과 공연, 음악을 아우르는 거대한 문화 예술 공간이다.

록웰은 200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리즈 딜러를 만났을 때 벨리니 칵테일을 마시면서 이 건물을 처음 구상했다. 두 사람은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나 디자인부터 콘텐트까지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지만 록웰은 딜러와 자신이 원래 썩 잘 어울리는 파트너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딜러는 학자다. 그녀는 이론으로, 난 실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록웰은 말했다. 그러나 록웰은 노부와의 관계에서처럼 자신과 판이한 상대방의 배경에 재미를 느꼈다. “협업은 두 사람이 같은 것에 집착할 때 효과를 보는 게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록웰의 건축학적 접근 방식에는 융통성이 있다. 이런 융통성은 연극과 안무, 공연에 대한 그의 관심에서 나오는 듯하다. 최근 록웰은 ‘팔세토’ ‘헤어스프레이’ ‘쉬 러브즈미’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무대를 디자인했다(‘쉬 러브즈 미’로 토니상을 받았다). 올여름에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공연되는 셰익스피어 연극 2편의 야외 무대를 디자인한다. 그가 신나서 휴대전화를 꺼내 절반쯤 완성된 ‘줄리어스 시저’의 무대 사진을 보여주는 걸 보면서 연극 무대 디자인에 대한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그의 웹사이트 경력란에도 토니상 수상이 다른 어떤 상보다 먼저 언급됐다.

록웰이 애초에 노부와의 협업에 끌린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노부의 레스토랑에서는 스시 바가 무대고 노부가 역동적인 주인공이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록웰은 ‘노부’라는 연극의 연출이다. 그가 2013년 라스베이거스에 지은 노부 호텔 1호점의 디자인에서 그런 느낌이 확연히 다가온다.

록웰은 단순한 아시아식 디자인과 천연 재료를 이용해 노부의 전통 일본식 손님 맞이[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직원들이 한 목소리로 ‘이라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외친다]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화로운 카지노와는 대조적이다. 그는 또 공용 공간과 객실에 걸 그림도 노부가 선택하도록 했다. “포시즌즈나 만다린 오리엔탈 등 다른 고급 호텔에서는 소유주의 개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록웰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노부의 개성이 최대한 드러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계약 같은 건 없다. 올해 곳곳의 노부 호텔에서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런던과 사우디의 리야드, 스페인 이비사 섬 등에 새 호텔이 문을 연다. 그리고 향후 12개월 안에 몇몇 호텔이 더 개점한다. 하지만 록웰은 이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의 파트너십에 문제가 생긴 걸까?

“난 우리 관계에 대해 확신이 있다”고 록웰은 말했다. “다만 경제적·지리적·시간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한다.” 노부 역시 록웰을 배우자처럼 묘사한다. “처음엔 서로 모든 게 좋지만 몇 년 지나면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고 노부는 말했다. “하지만 창작가인 록웰은 늘 새로운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 관계가 좋은 이유다.” 그들의 창조적인 협업 관계는 23년째 빛을 발하고 있다.
 [박스기사] 영국 런던의 ‘노부 호텔 쇼어디치’
올해는 노부 브랜드에 굉장한 한 해다. 오는 7월 초엔 영국 런던에 ‘노부 호텔 쇼어디치’가 문을 연다. 객실 150개에 240석 규모의 노부 레스토랑이 포함된 이 호텔은 건축가 론 애럿과 벤 애덤스가 함께 디자인했다. 시티 지역과 북부 쇼어디치의 중간쯤 되는 올드 스트리트 로터리 근처의 비교적 한가한 곳에 있다.

기존의 노부 호텔 2곳이 위치한 런던 서부의 메이페어 지역과는 꽤 떨어져 있다. 하지만 노부 마츠히사는 한가한 곳이라도 호텔을 지어놓으면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다. 6개 대륙에 흩어져 있는 노부 브랜드에서 2000명의 직원이 일한다. 우리 고객은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객들이다. 그들은 우리 음식과 품질을 신뢰한다.” 노부 호텔 쇼어디치는 노부 그룹의 다섯 번째 호텔이며 앞으로 12개월 동안 이 그룹은 6개 도시에서 새 호텔을 개점한다.

- 톰 모리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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