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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내 세금(7) 국민개세주의] 전체 근로자 절반가량 근소세 0원

[나도 모르는 내 세금(7) 국민개세주의] 전체 근로자 절반가량 근소세 0원

영국·일본·호주 등보다 면세자 비율 훨씬 높아 과감한 정비로 고통 분담 필요 제안도
미국 독립과 건국의 주역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누구나 살면서 죽음과 세금만큼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근로소득자의 절반은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어서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증세 대상으로 ‘초고소득자·초대기업’을, 증세 제외 대상으로 ‘중산층·서민·중소기업’을 명시한 상황이라 ‘국민개세(皆稅)주의(모든 국민은 적은 액수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의 회복이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근소세 면세자 축소 문제는 현재 한국의 소득세 체계에서 큰 논쟁거리다. 2015년 기준으로 근소세 납부 대상은 모두 1733만 명인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810만 명(46.8%)이 근소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나마 2014년(48.1%)보다는 소폭 낮아진 비율이다. 영국(5.9%)·일본(15.4%)·호주(25.1%)·캐나다(33.5%)·미국(35.8%) 등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저소득 근로자만 면세인 게 아니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연 소득 3000만원 초과 4000만원 이하 근로자의 30.3%가, 4000만원 초과 5000만원 이하 근로자의 32.3%가 세금을 한 푼도 안 냈다. 2013년에만 해도 이 비율은 각각 4.6%와 2.9%에 그쳤다. 고소득층의 공제액을 줄이기 위해 2014년부터 근로소득에 대한 특별공제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 뒤 발생한 현상이다. 2013년에는 전체 근로자 중 근소세 면제자 비율이 32.2% 정도였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소득이 있다면 소액이라도 세금을 내는 게 원칙에도 맞고 근로자에게도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면세자 범위 축소는 결국 중산층·서민의 세 부담 증가로 귀결된다. 조세재정연구원이 7월 20일 ‘소득세 공제제도 개선방안’ 공청회에서 발표한 방안들에 따르면 표준세액공제 축소시 연급여 2000만원 이하 구간에서, 근로소득공제 축소시 1000만~4000만원 구간에서 면세자가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액공제 종합 한도 설정 시에는 2000만~6000만원 구간의 면세자가 급감했다. 어떤 형태라도 문재인 정부 증세 제외 대상인 중산층·서민의 세부담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보편적 증세, 다시 말해 모든 과세 대상자가 골고루 세 부담을 늘리도록 하는 정책의 논의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숨은 설계자’로 불리는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최근 펴낸 저서에서 “40년 간 10%로 고정돼 있는 부가가치세율을 2018년과 2020년 각각 2.5%포인트씩 올려 15%로 만들어야 한다”며 “이 경우 연간 25조8000억원씩의 세수 증가가 기대된다”고 서술했다. 초고소득자·초대기업에 대한 증세로 기대되는 연 3조원대의 추가 세수에 비해 훨씬 많은 금액이다. 하지만 소비세인 부가세는 고소득층이나 저소득층이나 같은 금액을 내기 때문에 ‘소득 역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세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넓은 세원’의 확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초고소득자 등에 대한 증세도 필요하지만 소득세 면세자 비율도 낮춰야 한다”며 “언젠가는 ‘온 국민이 고통을 나누자’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데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의 배국환 재정성과연구원장은 “근소세 부과 대상의 절반 가까운 사람이 세금을 안내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며 “과감히 정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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