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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살리는 ‘숄더 로빙’

카리스마 살리는 ‘숄더 로빙’

요즘 멋 좀 부리는 사람이라면 겉옷을 입는 대신 어깨에 걸친다. 걸치기만 해도 패션피플이 된다. 어깨에 겉옷을 걸쳐 입는 ‘숄더 로빙’ 스타일에 대해 분석했다.
패션피플이라면 겉옷을 어깨에 걸치는 ‘숄더 로빙’패션이 익숙하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 ‘피티워모’ 참가자들. / 사진 : 김성룡 기자
숄더 로빙(shoulder robing) 패션에서 로브(robe)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길고 넉넉한 가운을 말하는 것으로, 숄더 로빙은 이런 가운을 어깨에 두르듯 옷을 입는 방법이란 의미다. 국내에서는 ‘어깨에 걸친 코트’란 말을 줄여 ‘어코 패션’이란 이름이 붙었다.

과거 이런 스타일은 패션에 민감한 여배우나 디자이너, 혹은 미국판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 같은 셀러브리티(셀럽)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여배우나 패션쇼 프론트 로(맨 앞줄 좌석)에 앉는 패션계 거물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스타일링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하면 안 된다고 하진 않았지만 지나치게 ‘멋 부린다’는 이미지를 풍길까봐 선뜻 시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양상이 달라졌다. 숄더 로빙은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패션이 됐다. TV 속에선 물론이고 거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생각해보라. 한여름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에어콘의 찬 기운을 막기 위해 얇은 재킷이나 카디건을 어깨에 슬쩍 걸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2016년 미국 대선 후보 방송 토론회에 등장한 멜라니아 트럼프. 겉옷을 어깨에 걸친 숄더 로빙 패션이다.
최근 숄더 로빙 패션으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인물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가디언이 멜라니아의 숄더 로빙 패션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보냈을 정도로 그는 여러 공식 석상에서 다양한 숄더 로빙 패션을 보여줬다. 가령 빨간색 원피스 위에 같은 색 재킷을 어깨 위에 걸치거나, 몸에 딱 달라붙는 흰색 원피스 위에 카멜색 군복 코트를 걸치는 식으로 말이다. 지난 7월5~10일 독일에서 열린 G20 행사에서도 어김없이 숄더 로빙을 뽐내며 등장했다. 마지막 날 있었던 퍼스트레이디·퍼스트맨의 오찬 행사에서 회색 원피스 위에 오렌지색 코트를 걸친 멜라니아는 ‘패셔너블’의 정석과도 같았다.

숄더 로빙 패션의 정확한 기원이나 유래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뉴욕·런던·파리 등 세계 패션위크를 다녀온 업계 인사들에 따르면 숄더 로빙이란 용어가 패션업계에 등장한 것은 2010년 이후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두 번째 줄 가운데)가 7월8일 오전 독일 함부르크 시청에서 열린 영부인들과의 오찬 행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역시 숄더 로빙 패션이다. / 사진 : 피티워모 홈페이지 제공
패션잡지 기자 출신으로 스타일리스트 등으로 활동하는 성범수 씨는 “2010년을 기점으로 패션위크에 겉옷을 어깨에 걸치고 오는 패션 피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후 가디언과 패션지 <코스모폴리탄> 에서는 ‘숄더 로빙’으로, 보그에서는 ‘코트 슬링잉’(coat slinging, 코트를 휙 던진다는 의미)로 명명하면서 하나의 착장법으로 자리잡았다. 이를 따라 다수 매체들이 앞다퉈 패션 관련 신조어로 ‘숄더 로빙’을 소개하면서 용어는 하나로 통일됐다.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스며든 건 그로부터 3~4년 지난 뒤였다. 2014~2015년 발렌시아가·에트로·발망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컬렉션에 어깨에 큼직한 코트와 재킷을 걸친 모델들이 등장한 게 계기가 됐다.
 남성복 페어 ‘피티워모’를 장악한 숄더 로빙
유명 디자이너의 컬렉션에서 선보인 숄더 로빙 패션(에트로). / 사진 : 에트로 제공
여자만의 패션도 아니었다. 그즈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남성복 페어 ‘피티워모’엔 어깨에 겉옷을 걸친 남성 참가자들이 무더기로 등장했다.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는 “유행이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누군가 콕 짚어주고 이를 대중이 따라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낄 때 일어나는데, 주요 컬렉션이 그 역할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국내에선 언제부터 낯익은 패션이 됐을까. 업계가 기점으로 꼽는 건 2013년 초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다. 극중 패션기업 회장 사모님 역을 맡은 배우 소이현이 어깨에 재킷을 걸치고 자주 등장하면서 청담동 곳곳에 이를 따라한 여성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셀린느의 김정민 마케팅 담당 대리는 “할리우드 스타들만 입었을 법한 숄더 로빙 패션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청담동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당시엔 딱히 부르는 용어 없이 ‘청담동 룩’ 혹은 ‘소이현 패션’으로만 불렸다.

숄더 로빙이 아무리 익숙해졌다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왜 옷을 굳이 챙기고 나와서는 입지 않고 걸치기만 하느냐다. 전문가들은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패션”이라는 점을 가장 먼저 꼽는다. 여성복 브랜드 럭키 슈에뜨 디자이너 김재현 이사는 “강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을 때 패션에서는 어깨를 강조한다”며 “어깨에 옷을 얹은 것만으로도 자신의 실제 어깨보다 돋보이는데다 거기에 일부러 멋을 부리지 않은 것 같은 무심함이 더해져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컬렉션에서 선보인 숄더 로빙 패션(루이비통). / 사진 : 루이비통 제공
간호섭 홍익대 교수(패션디자인과)는 “요즘 트렌드인 80년대풍 패션과 겹쳐입기 스타일링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절묘한 방법”으로 분석했다. 80년대는 ‘과장의 시대’라 불릴 만큼 옷의 모든 요소와 장식들이 과도하리만큼 강조됐던 때다. 마이클 잭슨이 ‘스릴러’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거대한 어깨의 재킷이나 신디 로퍼의 가죽 재킷을 떠올려보라. 이렇게 어깨가 강조된 옷들이 다시 나타났고, 이런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기 위해서는 팔을 소매에 끼우지않고 그저 어깨에 걸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됐다는 의미다.
 카리스마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패션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 피렌체 ‘피티워모’행사장에서 만난 패션 피플. 숄더 로빙 패션이 돋보인다. / 사진 : 고훈철
같은 옷이라도 걸치는 순간 더 세련돼 보이기 때문이란 의견도 있다. 김정민 셀린느 대리는 “외투를 어깨에 걸쳐주면 팔을 넣고 입었을 때 보다 좀 더 우아하고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면서 “매장에서도 종종 추천하는 코디법”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옷이 팔뚝과 몸을 가려줘 날씬해 보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패션피플처럼 숄더 로빙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보다 당당한 태도가 필수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펴 당당한 자세가 우선이다. 혹여 겉옷이 떨어질까 구부정하게 걷거나 어깨를 움추리는 것은 금물. 몸을 세울수록 옷도 떨어지지 않고 잘 걸쳐 있다.

‘피티워모’행사장를 지나가는 패션 피플. / 사진 : 피티워모 홈페이지 제공
또 숄더 로빙에 어울리는 겉옷은 부드러운 것보다는 딱딱한 소재를 골라야 스타일이 산다.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는 “여름에는 린넨 소재 재킷을 활용하는 게 제일 좋다”고 추천했다. 소재에 힘이 있으면서 린넨 자체가 넉넉하게 입는 옷이다보니 어깨 위에 걸쳤을 때 가장 멋스럽다. 사이즈는 내 어깨보다 한 두사이즈 큰 것으로 선택할 것. 내 어깨에 꼭 맞거나 작은 옷을 어깨에 걸치면 머리가 커 보이거나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길이 또한 엉덩이 밑으로 살짝 내려오는 것을 고른다. 짧은 재킷은 자칫 망토를 두른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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