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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자세’ 취한다고 슈퍼맨 되나

‘슈퍼맨 자세’ 취한다고 슈퍼맨 되나

면접 직전 자신감 북돋워준다는 ‘파워 포징’ 가설, 과학적 검증 연구에서 신빙성 없는 것으로 나와‘해리 포터’에 나오는 펠릭스 펠리시스는 완벽한 행운을 가져다 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워준다는 마법의 약이다. 그렇다면 마법의 세계가 아닌 우리의 현실에서 그와 가장 비슷한 게 뭘까? ‘슈퍼맨 또는 원더우먼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두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고 허리를 곧추세운다. 두 손을 허리춤에 놓고 가슴을 활짝 편다. 그러면 체내 호르몬 작용의 변화로 방전됐던 자신감이 급속 충전된다.

‘파워 포징(power posing)’으로 불리는 이 기법은 2010년 심리학 학술지에 처음 소개됐다. 그로부터 2년 뒤 그 논문의 공동저자인 에이미 커디 하버드대학 심리학 교수가 ‘당신의 신체 언어가 자신의 모습을 결정한다’란 제목의 TED 강연으로 연구 결과를 다시 강조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가슴을 내밀거나 손발을 내뻗는 신체 언어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커 보이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에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할 때든 연설에 나서기 직전이든 결의를 다지고 용기를 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중이 그 아이디어에 혹하기 전부터도 다른 사회심리학자들은 커디 교수의 주장에 회의적이었다.

과학계에선 특정 가설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 과학자들은 발표된 논문을 조목조목 비판해야 한다. 다른 과학자의 연구에서 취약점을 찾고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옳아 보이는 답이 실제로 옳다고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워 포징’의 경우 처음 논문이 발표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효과에 대한 확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증거를 종합해 보면 그 논문의 원저자들에게 상당히 불리한 듯하다. 이 논란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으려는 의도로 올해 초 발표된 새 논문 9편이 반박 증거를 뒷받침한다.

흔히 ‘눈길 끄는 연구 결과만이 학술지에 실린다’는 것이 논문 발표 절차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 변수나 요인 사이에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은 논문은 거의 발표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선 그런 문제를 사전에 피할 수 있는 접근법을 택했다. 그래야 첫 연구보다 더 탄탄한 과학적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시간주립대학의 심리학자 조셉 세사리오 교수는 ‘사전 등록(preregistration)’으로 불리는 논문 게재 절차를 따르는 학술지를 공동 편집한다. 완성된 논문을 검토해 해당 학술지에 실을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전 연구 계획을 바탕으로 미리 게재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세사리오 교수는 “흥미로운 문제를 다루는 건전한 과학적인 방식을 따르는지가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 척도”라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가 좀 더 돋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실험이나 분석의 기본 요소를 사후에 조절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연구자들이 논문 초안을 작성한 후가 아니라 아예 실험을 실시하기 전 단계부터 동료 과학자들의 반응을 감안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파워 포징’을 검증하는 객관적인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세사리오 교수는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 심리학자이며 커디 교수와 함께 원 논문의 공동저자였던 데이나 카니 교수를 리뷰팀에 영입했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실험에서 원래의 연구와 반복되는 부분이 정확히 일치하는지 여부를 카니 교수를 통해 확인 받을 수 있었다.

카니 교수는 처음으로 ‘파워 포징’ 논문을 공동 집필했지만 그 후로 그 가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 논문 발표 이래 그 분야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연구 결과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점을 보장하기 위해선 실험 대상이 몇 명 이상이 돼야 하는지에 관한 기준이 달라졌다. 아울러 같은 연구를 반복했을 때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얻기도 했지만 때로는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반복 연구는 원래의 실험을 완벽하게 복제하진 않았다. 따라서 가설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가 연구 방법의 미세한 차이 때문인지 ‘파워 포징’이 허구적인 현상 때문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사전 등록과 카니 교수의 자문(실험 방식이 원래 자신이 실시한 연구와 똑같은지 판단하는 자문 역할을 했다)으로 그런 불확실성이 제거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실험을 실시했고 그 결과를 제출했다. 카니 교수는 “논문이 전부 접수됐지만 좋은 소식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 편도 원래 연구 결과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낙담할 수밖에 없었지만 연구 결과가 그런 것을 어찌하겠는가?”

카니 교수는 원래의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증거가 이처럼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워 포징’이 실제적인 현상이라고 더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정도가 되면 자신의 믿음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녀는 원래 논문의 공저자인 커디 교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른다고 덧붙였다(뉴스위크는 커디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

카니 교수는 바로 이런 과정이 과학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면에선 아주 대단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파워 포징’의 경우 그 과정이 지나치게 가혹했다고 덧붙였다(커디 교수는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파워 포징’을 시도했을 때 실제로 뭔가를 느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카니 교수는 대중이 ‘파워 포징’ 현상에 빠져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나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 실제로 내 몸이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개인적이 경험은 입증되지 않는 일화적인 증거일 뿐 과학이 아니다.”

세사리오 교수는 ‘파워 포징’을 통해 자신감이 강해진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느낌이 실제 중요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협상 기술에도, 인지 능력에도, 취업 면접 시뮬레이션에도 ‘파워 포징’이 영향을 미쳤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세사리오 교수도 ‘파워 포징’의 유혹이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부족한 기술과 능력을 연마하고 발전시키기보다 단순히 당당한 자세를 잠시 취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런 매력 때문에 ‘파워 포징’ 문제에서 올바른 답을 찾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자신감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감은 실질적인 것, 다시 말해 진정한 기술과 능력에서 나올 때만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학은 단순한 ‘파워 포징’으로 신속하고도 쉽게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잘못이라고 말한다는 뜻이다.

- 메간 바텔스 뉴스위크 기자

※ 뉴스위크 한국판 10월 16일자에 실린 기사를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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