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김재현의 차이나 인사이드] 미국이 자동차의 나라라면 중국은 모바일 인터넷 나라

[김재현의 차이나 인사이드] 미국이 자동차의 나라라면 중국은 모바일 인터넷 나라

세계 인터넷 기업 시가총액 10위 안에 중국 기업 절반 … 사후 규제로 기업·산업 키워
중국에선 모바일 페이가 대세다. 음식을 파는 중국의 노점상은 위생 문제를 이유로 현금 결제보다 위챗페이나 알리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를 선호한다.
중국에서 자주 듣게 되는 단어 중 하나가 ‘BAT’다. 중국 인터넷 업계 기업인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의 영문 이름 첫 글자를 따서 모은 말이다. 검색 업체인 바이두는 영향력이 줄었지만,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중국 대표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하며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인터넷 기업 시가총액 1~3위는 미국 기업인 구글·아마존·페이스북이다. 인터넷 분야에서 미국의 주도적인 위치를 상징하는 기업들이다. 그런데 중국 기업의 추격이 만만찮다. 알리 0억바바와 텐센트가 각각 4위와 5위를 차지하며 이들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바이두·징동닷컴·왕이도 10위 안에 들었다. 세계 인터넷 기업 시가총액 10위 안에 중국 인터넷 기업만 5개다.

미래를 대표할 인터넷 기업이 될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중에도 중국 기업의 비중이 크다. 올해 200개가 넘는 유니콘 기업 중 중국 기업의 비중이 약 30%, 미국 기업이 절반, 그리고 나머지 국가가 약 20%를 차지했다. 미래의 인터넷 선도기업도 미국 아니면 중국에서 나올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중국 인터넷 기업이 급성장하자 글로벌 컨설팅 업체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최근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알리바바·바이두·디디추싱 등 중국 인터넷 기업과 공동으로 중국 인터넷산업을 연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바로 ‘중국 인터넷의 특징 분석’이다. 이 보고서를 한번 살펴보자.
 알리바바 총거래 규모 월마트 뛰어넘어
우선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인터넷산업의 성장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여럿 있다. 2013년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총거래 규모는 2480억 달러로 아마존과 이베이의 총거래 규모를 더한 금액보다 많았다. 2015년 알리바바의 총거래 규모는 4900억 달러로 월마트를 뛰어넘는 세계 최대 유통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같은 해 중국 P2P(개인 간 거래) 대출 업체의 대출 규모는 669억 달러로 미국의 4배에 달했다. 2016년에는 더 큰 변화가 있었다. 모바이크 같은 스타트업이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공유자전거 같은 서비스를 출시하며 인터넷 트렌드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또한 모바일 결제 거래가 8조5000억 달러로 급증하며 미국의 70배 이상으로 커졌다. 2017년 4월 기준 알리바바 계열사인 앤트파이낸셜이 운영하는 위어바오는 운용자산 1656억 달러로 JP모건을 제치고 세계 최대 머니마켓펀드(MMF)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 인터넷 기업이 급성장하면서 미국이 이끌던 인터넷 산업을 미·중 양국이 이끌기 시작하는 추세다. 특히 모바일 인터넷 시대로 진입한 후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미국이 자동차의 나라라면 중국은 인터넷과 모바일 단말기의 나라”라는 한마디로 중국 모바일 인터넷의 영향력을 표현했다.

중국 인터넷산업의 특징은 역시 규모다. 2016년 말 기준, 중국 네티즌 수는 7억1000만 명에 달했다. 인도와 미국 네티즌을 합친 규모와 맞먹을 뿐 아니라, 세계 네티즌 수의 20%를 차지하는 규모다. 중국의 인터넷 소비 규모 역시 막대하다. 지난해 9670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중국 인터넷산업 규모보다 놀라운 것은 ‘차이나 스피드’다. 중국 네티즌 수는 지난 15년 간 연평균 25% 넘게 늘었고 인터넷 소비 규모도 매년 32%씩 커졌다. 특히 아직도 인터넷 보급률이 52%에 불과한 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대목은 중국 네티즌의 특징이다. 중국 네티즌은 연령대와 학력 수준이 미국보다 낮으며 모바일 인터넷 이용 비중이 크다. 중국 네티즌 평균 연령은 28세로 미국의 42세에 비해 14살 어리다. 중국인의 평균 연령이 낮기도 하지만, 중국 노년층 중에 인터넷 미사용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학력도 낮다. 중국에서 전문대 졸업 이상 학력의 네티즌 비중은 21%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64%에 달했다. 중국 네티즌 절반 이상이 고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었다.

낮은 연령대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국 네티즌들은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강했다. 네티즌 마음을 사로잡는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인터넷 시장의 성격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실례로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는 2016년에도 미국 시장 침투율이 50%에 못 미쳤지만, 중국의 경쟁 업체인 디디추싱은 3년 만에 시장 침투율 50%를 달성했다.
 중국 네티즌, 새로운 서비스 적극 받아들여
인터넷 보급률은 중국이 미국보다 낮았지만, 모바일 인터넷 보급률은 중국이 90%로 미국(78%)보다 오히려 높았다. 앞서 마윈이 모바일을 강조했듯이 현재 발생중인 중국의 인터넷 혁명은 정확히 말하면 ‘모바일 인터넷’ 혁명이다. 2012년 샤오미가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등 가격 하락으로 중국에서 스마트폰의 범용화(Commodity)가 진행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스마트폰 보급과 모바일 인터넷 이용이 급증하면서 중국의 모바일 인터넷 혁명이 시작됐다.

인터넷산업의 세부섹터로 들어가면, 중국은 미국보다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와 인터넷 금융 비중이 크다. 매출액으로 볼 때, 중국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27%)보다 훨씬 높은 44%에 달한다. 인터넷 금융의 비중 역시 12%로 미국(5%)보다 높다.

중국 인터넷 업계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 인터넷 3강인 BAT가 각자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한편, 모바일 결제, 차량 공유 서비스 등 분야 별로 선두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에서 타오바오와 티몰을 육성하며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SNS에서는 텐센트의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의 영향력이 독보적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에서는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모두 투자한 디디추싱이 독점 업체로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여행사는 바이두가 투자한 씨트립이 눈에 띈다. BAT 외에 전자상거래 업체인 징동닷컴, 포탈·게임퍼블리싱 업체인 왕이도 자체 생태계 육성에 진력하고 있다.

중국에서 잘 쓰는 용어 중 하나가 ‘바람구멍(風口)’이다. 급격히 커지는 업종이나 기회를 뜻하는데, 최근 몇 년 간 중국 인터넷산업에는 몇 번의 큰 기회가 있었다. 소셜커머스, P2P대출, 인터넷 라이브방송이 대표적이다. 소셜커머스의 그루폰, P2P 대출의 렌딩클럽 등이 모두 미국 기업이었지만, 중국 시장에서 훨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경쟁도 치열했다.

2011년 소셜커머스가 한창 열풍일 때, 중국 소셜커머스 업체는 5000여개로 늘었다가 경쟁구도가 상위 업체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200여개로 감소했다. P2P대출 역시 마찬가지다. 2015년 P2P대출업체는 3400개까지 급증했다.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늘다가 금융 리스크를 우려한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가 시작되면서 P2P대출 업체가 줄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카카오와 일부 게임 업체 외에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탄생한 대형 인터넷 기업이 드물다. 그런데 중국은 다이내믹한 산업 분위기를 반영하듯 몇 년 사이 급성장한 스타 기업이 많다. 차량 공유 업체인 디디추싱은 500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평가 받고 있으며 소셜커머스 업체인 메이퇀의 기업가치도 180억 달러가 넘는다. 공유자전거로 화제가 된 모바이크는 20억 달러에 가까운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중국에서 인터넷 기업이 더 빨리 성장한다는 통계 수치도 있다. 중국 유니콘 기업은 설립된 지 평균 4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2년 안에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비중도 46%에 달했다. 이와 달리 미국 인터넷 기업은 유니콘 기업이 되기까지 평균 7년이 소요됐다.
 설립 2년 안에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비중 46%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미국이 자동차의 나라라면 중국은 인터넷과 모바일 단말기의 나라”라고 말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중국 인터넷산업의 발전 이유를 세 가지 꼽았다. 우호적인 거시경제 환경, 인터넷산업의 높은 투명성과 ‘도약 성장’이다. 우선, 우호적인 거시경제환경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평균 연령 33세에 불과한 중국의 13억 인구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중국 네티즌들이 빠르게 새로운 서비스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인터넷 기업의 급속한 성장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인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중국에서 매년 대학을 졸업하는 약 700만명 중 절반인 350만 명이 이공계 졸업생이다. 컴퓨터 관련 전공 졸업생도 40만 명에 이른다. 평균 임금은 미국 엔지니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의 인터넷 기반시설 확충도 호재로 작용했다. 중국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인 ‘12·5규획’, ‘13·5규획’과 ‘브로드밴드 중국’ 등을 통해서 초고속 인터넷망, 모바일 인터넷망과 클라우드 컴퓨팅 설비를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특히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12·5규획’ 기간 동안 통신업종에 2조 위안의 투자를 약속하는 등 정부가 앞장서서 투자하며 인터넷 보급률을 제고하고 인터넷 사업 환경을 개선했다. 김대중 정부가 만든 초고속 인터넷망이 IT산업 발전의 초석이 된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인터넷 산업의 높은 투명성이다. 즉, 인터넷의 정보 공개와 빠른 전달 속도를 뜻한다. 특히 인터넷의 ‘오픈소스(open source)’ 정신에 따라 공개된 코드를 이용해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중국에서 저가 스마트폰을 처음 내놓은 샤오미 역시 구글이 공개한 안드로이드 기반 오픈 소스코드를 이용해 1년 만에 초기 스마트폰의 연구개발을 끝냈다.

마지막은 ‘도약 성장’인데, 인터넷 발전 과정에서 중국과 다른 나라가 차이를 나타낸 결정적인 이유다. 선진국에서 인터넷 산업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진행됐으며 기존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역할이 컸다. 수백 년 동안 발전해온 기존 산업구조가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달랐다. 인터넷 시대로 진입할 무렵, 중국은 몇몇 산업의 미 성숙도가 높았다. 미성숙한 전통산업의 단점을 인터넷이 보완하면서 퀀텀점프를 만들어 냈다.

특히 유통업과 금융산업의 효율성이 낮아 중국인들의 불만이 컸는데, 알리바바 등이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 산업의 효율성과 소비자 편익을 크게 높였다. 결국 알리바바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했다.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았기 때문에 모바일 결제 규모를 확대할 때도 소비자 수요가 많았고 중국이 글로벌 최대 모바일 결제 시장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에서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금융의 비중이 미국보다 큰 이유다.

중국에서는 인터넷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C2C’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Copy to China’, 즉 미국에서 생긴 비즈니스 모델을 중국에서 카피한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 ‘C2C’ 과정에서 이룬 작은 혁신도 많았다. 알리바바가 이베이와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도 에스크로 서비스와 구매자와 판매자 간 메신저 서비스를 도입해 중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기업이 중국을 베끼는 시대가 올까?
미래에는 중국 인터넷 기업이 미국 기술주를 대표하는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처럼 인터넷 산업을 선도할 지도 모른다. ‘Copy to China’가 아니라 미국이 중국을 카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9월 18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대 미국: 누가 누구를 카피하는가?(China vs US: who is copying whom?)’라는 기사에서 중국 인터넷 기업이 이끌고 있는 트렌드를 보도했다. 바로 공유 자전거, QR 코드, SNS와 신유통이다. 특히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의 원조격인 왓츠앱이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의 공중계정(기업이나 단체의 위챗용 계정) 서비스를 도입했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우리가 중국 인터넷 기업의 성장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바로 규제 완화다. 중국은 계획경제 체제였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규제 역시 까다롭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터넷 기업에게는 저강도 규제정책을 도입했다. 제3자 결제 등 신규 분야는 처음에는 규제 프리 상태로 둔 후 인터넷 기업이 자유롭게 사업을 펼치도록 놔두고 나중에 꼭 필요한 부분만 사후 규제를 도입했다. 게임강국인 우리나라가 게임산업에 대한 전방위 규제로 골머리를 앓는 동안, 텐센트가 라이엇게임즈와 수퍼셀을 인수하며 글로벌 1위 게임 업체로 부상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김재현(zorba00@gmail.com) -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에서 MBA를, 상하이교통대에서 금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칼럼니스트로서 중국 경제·금융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 도대체 왜 한국을 오해하나], [파워 위안화: 벨 것인가 베일 것인가(공저)] 등이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윤 대통령, 이종섭 호주대사 면직안 재가

2행안부 “전국 26개 사전투표소 등 불법카메라 의심 장비 발견”

35대 저축은행 지난해 순이익 1311억원…전년比 81.2% 급감

4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

5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

6남양유업, 60년 ‘오너 시대’ 끝...한앤코 본격 경영

7하나은행, 은행권 최초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금 지급

8행안부 “전국 18개 투·개표소 불법카메라 의심 장치 발견”

9 "전국 18곳 사전투표소 등지서 '몰카' 의심 장치 발견"

실시간 뉴스

1윤 대통령, 이종섭 호주대사 면직안 재가

2행안부 “전국 26개 사전투표소 등 불법카메라 의심 장비 발견”

35대 저축은행 지난해 순이익 1311억원…전년比 81.2% 급감

4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

5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