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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신냉전에서 밀리고 있다”

“미국은 신냉전에서 밀리고 있다”

러시아가 대선 개입 등으로 호시탐탐 미국 민주주의를 공격해도 트럼프 정부는 적절히 대처하지 않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과 세르게이 키슬랴크 전 주미 러시아 대사의 예방을 받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가운데). / 사진 : AP-NEWSIS
1989년 스파이 한 명이 뉴욕시의 아버지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는 주미 소련 대사관에 배속된 장교라며 아버지와 같이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인 아버지는 미국 정부에 도서와 조사 자료를 공급하는 소규모 방위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버지의 사무실에 소련인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비정상적인 일이었지만 그가 ‘사업’을 하자며 노골적으로 요청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핵 확산 방지에 관한 기밀 정보였다.

그 소련인이 떠난 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 2명이 아버지의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조금 전에 찾아온 소련인의 진짜 정체를 말해줬다. 그런 다음 그들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가 그 소련인과 계속 거래하면서 그에게서 얻은 정보를 FBI에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과 FBI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돼 2009년까지 이어졌다.

그 기간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도 우리 가족의 ‘사업’에 참여해 3년 이상 FBI를 위해 이중첩자 노릇을 하면서 러시아 군사정보를 수집해 넘겼다. 내가 지난 6개월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의 결탁 의혹에 관한 조사를 주의 깊게 지켜본 것도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전·현직 방첩 전문가들에게 사적으로 물었다. “러시아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누가 막고 있나?” 답변은 늘 같았다. “나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것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냉전 시대 미국의 적이었던 러시아를 트럼프 정부나 정보기관의 누군가가 확실히 감시한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이런 위협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결코 아니다. 그들이 미국을 상대로 펼친 작전이 멋지게 성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작전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오래 전부터 시작됐을 수 있다. 러시아인은 트럼프의 측근들 사이에 침투했고 SNS를 사용해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미국 투표 시스템을 해킹했을 가능성도 크다.

이런 악의적인 공격에도 미국은 그런 작전을 좌절시키기 위한 방어망 강화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미국을 공격하는 러시아 등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정보기관의 예산을 증액하라는 요구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인 대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쫓아내기만 하면 러시아는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건 위험한 생각이다.

아버지는 소련이 미국에 제기하는 정보 위협을 직접 목격했다. 그뿐이 아니라 소련은 붕괴했지만 러시아의 첩보 게임은 거의 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소련 붕괴 후에도 주미 러시아 대사관의 정보 장교들은 곧바로 우리 가족의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버지를 찾아온 첫 소련 스파이가 원했던 것과 똑같은 정보를 얻으려 했다. 그들에게 미국은 여전히 적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보기관들은 러시아를 약간 달리 생각했다. 내가 2005년 FBI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를 담당한 요원들과 나는 러시아 스파이에 전력 집중했다. 그러나 우리는 예외에 속했다. 나머지 미국인은 전부 테러와 알카에다에 초점을 맞췄다.

나를 담당한 FBI 요원들은 미국의 애국자였고 프로였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고 가용한 자원도 없었다. 나는 종종 그들이 모는 중고차를 두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들은 미국인이 끝났다고 생각한 전투를 계속 치열하게 치르고 있었다. 그 직전 미국은 9·11 테러로 알카에다라는 치명적인 새로운 적의 공격을 받았고 그 싸움에 예산과 가용한 자원의 거의 전부를 쏟아부었다.

그러면서 방첩 임무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내가 대러시아 방첩 작전에 참여한 동안 어느 외국 대사관의 무관이 나를 초대했다. 내가 맨해튼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앉아 차를 마시는 동안 그는 나와 앞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 만한 사람을 워싱턴 D.C.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 흥미로운 조짐이었다.

나는 그런 정보를 FBI에 보고한 뒤 지시를 기다렸다. FBI에선 몇 주 동안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한 요원이 낙담한 듯이 내게 말했다. “그 나라를 담당하는 우리 요원이 나의 요청에 회신을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군.” 그 무관을 다시 만나지 못하면서 워싱턴 D.C.에서 내가 접촉하기로 돼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아주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정보 요원들은 우리와 달리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거의 놓치지 않는다. 나는 러시아 정보 장교와 만날 때마다 바짝 긴장했다. 그들은 철두철미했고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의심했다. 무엇이든 절대로 쉽게 믿는 법이 없었다. 그들이 FBI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은 간단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우리가 접선했을 때 그들은 메뉴나 다른 식당의 명함을 내게 건네는 것으로 만남을 끝내곤 했다.

그 후 약 일주일 뒤 그들은 전화로 나를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그 만남이 끝나면 같은 과정이 반복됐다. 전화나 이메일로 ‘사업’을 의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실질적인 대화는 전부 직접 만나서 한다는 그들의 철저한 보안의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FBI는 내가 그들을 어디서 만나는지 모를 경우 우리의 접선을 감시하기 어려웠다. 러시아인은 계속 그런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FBI는 계속 뒷북만 쳤다.

2009년 나는 러시아 정탐 임무를 끝내면서 이런 불균형을 더욱 우려하게 됐다. 탈냉전 세계에서 방첩 활동에 드는 비용을 정당화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국 FBI의 방첩 활동이 시들해지면서 러시아는 미국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미국 대선을 계기로 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이 분명히 있었는 데도 미국은 아직 방첩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고 앞으로 그런 공격에 대비하려는 적절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두고 미국 대통령이 ‘거짓말’이며 ‘가짜뉴스’라고 계속 부르는 한 러시아가 미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이용한 약점은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을 보면서 나는 미국이 FBI의 방첩 활동을 1989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FBI 요원들이 아버지의 사무실에 처음 들이닥쳤을 때를 말한다. 그때만 해도 FBI는 단 20분만에 러시아의 포섭 노력을 탐지하고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 [필자는 자신이 FBI를 위해 은밀히 이중첩자로 활동한 경험을 회고한 책 ‘러시아 스파이 잡기(How to Catch a Russian Spy)’를 최근 펴냈다. 그는 미국 해군 예비군에서 정보 장교로 일하는 동시에 미국 외교정책연구원(FPRI)에서 국가안보 프로그램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한다.]- 나비드 자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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