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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도 ‘잊혀질 권리’ 있다

어린이에게도 ‘잊혀질 권리’ 있다

부모가 온라인에 자녀의 정보 공유하는 ‘섀런팅’, 신상정보 유출로 위험에 처할 수 있어
요즘 영국에서는 2세 이전 온라인에 사진이 오르는 어린이가 전체의 80%를 웃돈다./ 사진 : GETTY IMAGES BANK
‘섀런팅(sharenting)’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섀런팅은 ‘share(공유하다)’와 ‘parenting(육아)’의 합성어로 자녀의 일상이나 사진을 온라인에 올려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 영국에서는 2세 이전 온라인에 사진이 오르는 어린이가 전체의 80%를 웃돈다. 섀런터(sharenter, 섀런팅을 하는 부모)는 자녀가 5번째 생일을 맞이할 때까지 인터넷에서 그들의 이미지를 평균 1500장 정도 공유한다.

그러나 영국 방송통신규제위원회(OFCOM)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많은 부모가 온라인에서 자녀의 이미지를 공유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부모도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56%). 섀런팅을 하지 않는 부모 대다수(87%)는 자녀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그런 선택을 한다.

섀런팅을 하는 부모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육아에 대한 정보 공유, 감정적·실질적 지지, 친척이나 친구들과의 연락 유지 등등. 하지만 공유의 정도가 지나치거나 부적절한 정보의 공유를 의미하는 ‘오버섀런팅(oversharenting)’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진다. 섀런팅 과정에서 해당 어린이의 집이나 보육기관, 놀이터의 위치 또는 어린이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신상정보가 드러날 수 있다.섀런터 대다수가 자신들의 행동이 미칠 잠재적 영향을 알고 있으며 섀런팅을 하기 전 자녀의 입장을 고려한다고 말하지만 영국 상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부모가 그런 건 아니다. ‘인터넷과 함께 성장하다(Growing up with the internet)’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일부 부모는 자녀가 알면 당황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녀의 정보를 공유하며 일부는 포스팅 전 자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CBBC(영국 BBC 방송의 어린이 채널)의 최근 조사에서는 부모에 의해 자신의 사진이나 정보가 인터넷에 오른 어린이의 4분의 1이 부모의 그런 행동에 당혹감이나 우려를 느꼈다고 답했다.

섀런터는 자녀가 5번째 생일을 맞이할 때까지 인터넷에서 그들의 이미지를 평균 1500장 정도 공유한다. / 사진 : GETTY IMAGES BANK
프랑스와 독일의 경찰은 구체적인 조치를 통해 섀런팅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페이스북에 경고문을 게재하고 부모에게 섀런팅의 위험을 알리고 어린이 사생활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국에서는 일부 학자들이 나서서 정부가 부모에게 자녀의 디지털 정체성 보호의 중요성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말 정부가 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정보를 언제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까지 간섭하며 시시콜콜 가족 생활을 통제해야 할까?

통제하기가 까다로운 분야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최근 영국 정부가 발표한 새 개인정보보호법안이 이 문제에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국 보수당은 올해 성명서에서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해 자신의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권리를 국민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의회 개원 연설에서도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 개혁에 대한 의지를 확실히 했다. 또 지난 8월에는 개혁의 세부사항을 제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소위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 또는 ‘삭제할 권리(right to erasure)’와 관련해 정부는 ‘개인이 자신의 사적인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용자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어린 시절 자신이 올린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소셜미디어 회사들이 특정 사용자의 포스트 전체를 삭제하도록 요청 받을 수도 있다.

이 개인정보보호법안의 주된 목적은 유럽연합(EU)의 새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영국 법 안으로 끌어들여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 법이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과 궤를 같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 기업이 유럽의 기업과 교역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 새 법안은 섀런터 부모를 둔 어린이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새 법은 개인이나 기관이 개인의 사적 정보를 공유하려면 본인의 동의 또는 다른 형태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도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 부모가 자녀의 정보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하려면 자녀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부모가 갑자기 어린 자녀에게 섀런팅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볼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의 동의를 얻지 못하거나 자녀가 나중에라도 온라인에 자신의 정보가 공유된 사실을 탐탁지 않게 여길 경우엔 새 법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자녀가 ‘삭제할 권리’를 이용해 소셜네트워크 회사나 해당 웹사이트에 공유된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이것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으로선 무분별한 오버섀런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이다.



※ [필자는 영국 뉴캐슬에 있는 노섬브리아대학 법학과 부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클레어 베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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