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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근로자의 복지는 누가 책임지나

비정규직 근로자의 복지는 누가 책임지나

미국도 산재·실업보험 등의 기본적인 보장뿐 아니라 건강보험, 병가수당이나 퇴직연금 혜택을 받지 못해
미국인의 무려 40%가 일일 노동자, 사내하청 근로자로 간주되거나 파트타임 또는 임시직으로 일한다. / 사진:ALAN DIAZ-AP-NEWSIS
새미 앱두는 상당히 만족스럽게 느낄 법하다. 10년 넘게 근근이 생계를 이어오다가 주요 네트워크 방송사에서 몇 시즌째 계속 이어지는 장수 에미상 수상작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TV 부문을 이끈다.

그러나 그는 “내겐 경제적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 올해 총수입을 9만 달러 정도로 예상하면서도 계속 은행 잔고를 들여다보며 내년 소득이 뚝 떨어지지 않을까 마음을 놓지 못한다. “지금은 분명 운이 따르지만 눈깜짝할 새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앱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에코 파크 동네의 소규모 커피숍에 앉아 두툼하고 네모난 안경을 쓰고 맥북을 응시하며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리고 있다. 일거리가 들어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방송사에서 돈이 나오지 않아 좌불안석이다.

저축한 돈이나 퇴직연금이 거의 없는 그에게 집 장만은 언감생심이다.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을 모두 내가 납부한다납부한다”며 “내 나이 32세에 사회보험 혜택을 받은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런 사람은 앱두만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대격변을 겪은 전통적인 노사관계가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2015년 미국 회계감사원(GAO) 조사에서 미국인의 무려 40%가 독립 계약근로자, 일일 노동자, 사내하청 근로자로 간주되거나 파트타임 또는 임시직으로 일한다. 2005~2015년 미국경제의 순고용 증가는 모두 이런 임시고용 일자리에서 나왔다. 프린스턴대학의 앨런 크루거와 하버드대학 로런스 카트 교수의 지난해 조사 결과다. 이들 비전통적인 근로자 중 일부는 산재보험·실업보험 같은 기본적인 보장을 받지 못하며 대다수가 건강보험, 병가수당이나 퇴직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서비스근로자국제조합의 데이비드 롤프 부회장은 올해 초 벤처투자자 닉 해나우어와 공동 기고한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잡지 기사에서 미국 경제성장의 혜택을 배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많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의 한 가지 해결책은 이른바 이동식 사회보험(portable benefits)이다. 모든 근로자가 일자리를 옮길 때마다 건강보험·퇴직연금·병가수당 같은 보장제도가 따라다니도록 하는 방식이다. 롤프 부회장과 해나우어는 “안정적인 풀타임 고용의 지속적인 감소로 인한 공백을 상당부분 메우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년 전부터 미국 근로자 대상의 새로운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당시 이례적으로 손잡은 노사동맹이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갖거나 일회성 일자리를 전전하는 근로자 대상의 더 탄력적인 사회보험을 촉구했다.

예컨대 운전기사의 경우 하루에 우버와 리프트 2곳의 승차공유 서비스에서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단기 일자리 중개 서비스 태스크래빗에 등록해 주택 보수 일을 해도 그 플랫폼으로부터 비례 배분된 사회보험을 받게 된다. 근로자가 리스트 중에서 사회보험을 선택하며 비영리단체·직업협회·신용조합 또는 노동조합이 전체 시스템을 관리하게 된다.

리프트의 창업자들과 돌보미 서비스 케어닷컴(Care.com)의 CEO는 모든 미국인을 대상으로 그런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일회성 근로인력을 동원해 수백만~수십억 달러 벤처를 일구는 다른 IT 기업가들이 이들에 동조했다.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하스 비즈니스스쿨의 벤 맹건 강사는 “그중 다수는 이 문제가 정말로 윤리적·경제적·사회적·정치적으로 위험을 제기한다고 본다”며 “그들은 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희소식은 경제적 몰락의 위기에 몰린 사람들을 구해낼 만큼의 여력은 미국에 충분히 있다는 점이라고 진보적 싱크탱크 루스벨트 연구소의 넬 애버내티 부소장은 말한다. 현재 미국인의 절반 가까이가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지난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조사에서 400달러(약 45만원)의 비상금도 없는 미국인이 46%에 달했다. 회사에 속하지 않더라도 기본 사회보험을 제공하는 21세기의 새로운 사회계약이 그 문제를 개선하며 그와 함께 사회 보장의 구명 뗏목을 제공할 수 있다고 애버내티 부소장은 말했다. 소비지출은 분명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건강·아동발달·창업정신도 향상된다는 증거가 있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선 농촌 근로자, 작가와 기타 창작 관련 종사자들을 포함해 수백만 명이 삶의 일상이 된 자금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애버내티 부소장은 말했다. “윤리적 측면의 근거도 있지만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면 국가적으로도 플러스가 된다는 경제 논리도 있다.”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의 켄 제이컵스 노동교육연구소 소장은 아직 속단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동식 사회보험과 그에 따르는 근로안정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동식 사회보험 지지자 다수가 주장하는 것보다 문제의 범위가 더 제한적이라고 본다. 경제적 불안정이 실재하며 전통적인 직종 종사자까지 포함한 많은 사람이 기본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계약근로 경제(gig economy, 일거리 중심의 시간제 하청 근로 시스템)의 성장 속도가 크게 과장됐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그 근로자가 많은 것은 고용주가 그들을 회사 종업원과 달리 ‘독립 계약근로자’로 부르며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을 계약근로자로 부를 수 있는지를 둘러싼 법적 투쟁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2년 전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의 결정에선 계약근로자가 전적으로 그들을 고용한 사업주 책임인 듯했다. 그러나 그 뒤 이어진 상급심의 후속 재판에선 노동위원회의 결론에 대한 반박과 지지 판결이 엇갈렸다.

실제로 우버·아마존·그럽허브(음식배달 서비스) 같은 IT 기업 근로자 수천 명이 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에서 인정한 종업원 신분 그리고 그에 따르는 사회보험을 요구한다. 올해 초 리프트는 비슷한 소송에서 운전기사가 계속 독립 근로자 신분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2700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IT 기업 근로자 수천 명이 법에서 인정한 종업원 신분 그리고 그에 따르는 사회보험을 요구하며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 사진:5CHW4R7Z-FLICKR
이들 기그 근로자와 그 밖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안전망을 앗아간 경제 격변은 일정부분 기업이 지나치게 단기 이익에 치중한 데서 비롯됐다고 벤 맹건 강사는 말한다. 노동운동의 약화도 또 다른 요인이다(민간부문의 노조 가입률이 6%에 불과하다). 기업이 일거리를 전 세계 어디로든 아웃소싱할 수 있도록 하는 신기술의 부상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의 기술혁명은 100년 전 농장에서 공장으로 일터를 바꿔놓은 제조업 호황만큼이나 혁신적이라고 넬 애버내티 부소장은 말한다. 그리고 100년 전 그랬듯이 노동자 권익 운동가들은 변화하는 경제 속에서 근로자의 기본 보호장치를 정확히 어떻게 제공할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켄 제이컵스 소장은 건강보험과 퇴직연금은 국가에서 관리해야 하지만 병가 수당이나 휴가 같은 문제에선 노동자 운용 펀드를 지지한다고 말한다. 롤프 부회장이 지지하는 워싱턴 주의 법안에선 기업이 계약근로자 보수의 25%(시간당 최대 6달러)를 비영리 이동식 사회보험 펀드에 기여해 산재보험과 기타 퇴직연금·건강보험 또는 유급휴가 등의 사회보험에 사용하도록 한다.

뉴욕 주 의회에 상정된 비슷한 법안도 기그 근로자 고용업체 핸디닷컴의 지지를 받는다. 그 회사의 보수 근로자 등을 독립 계약근로자로 인정하는 조건으로 이동식 사회보험을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법안이라고 제이컵스 소장은 경고한다. “여기서는 세부사항이 중요하다. 이동식 사회보험을 받는 대가로 이들 기업이 원래 제공해야 할 사회보험을 면해주려 하는가?”

대규모의 연방 이동식 사회보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애버내티 부소장은 말한다. 그러나 현 정부와 의회에서 그런 프로그램이 통과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동식 사회보험은 지방과 주 정부 차원에서 지지를 얻을 확률이 더 높다고 롤프 부회장과 해나우어는 주장한다. 그들은 이 구상이 언젠가는 상부로 퍼져나가 국가적인 여론을 조성할 것으로 믿는다. 노동부의 자금지원과 Google.org(구글의 자선활동 조직)의 보조금으로 시범 운영 중인 소규모 시범 프로그램들도 있다. 마크 워너 상원의원(민주·버지니아)이 제출한 법안에선 이동식 사회보험 시범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그룹에 20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하게 된다.

그런 프로그램의 혜택을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은 고용 불안정을 일선에서 직접 겪는 보모와 가정집 청소원들이라고 미국 가정내노동자연합 산하 공정돌보미연구소(Fair Care Lab)의 팔락 샤 소장은 말한다. UX(사용자체험) 디자이너와 기타 IT 전문가 몇몇이 Google.org 보조금 150만 달러와 더 작은 액수의 노동부 지원금으로 마이앨리아(MyAlia.org)를 개설했다. 다수의 고용주가 주 단위 주택 청소 일거리 건당 근로자 한 명에게 5달러씩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즉시 청소원에게 병가수당이 제공되기 시작하며 생명·상해·장애 보험 같은 다른 사회보험도 추가할 수 있다(마이앨리아가 테스트 단계라서 그 플랫폼이나 이용자에 관한 데이터는 샤 소장이 공개하지 않았다). 샤 소장은 “가정내 근로자야말로 원조 기그 근로자”라며 “우리가 새로운 노동운동의 선발대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했다.

58세의 노마(성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도 그중의 한 명이다. 페루 출신인 그녀는 17년 동안 보모로 일했다. 9년 전 자신이 돌봐주는 두 자녀 중 하나가 태어나기 전 LA 남부해변 커뮤니티에서 현재의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사랑하며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망설임 없이 주장한다. 하지만 고용주 부부에게 자신의 사회보험을 부담하도록 설득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불과 12달러의 시급을 받지만 가정부에게 초과근무 수당을 주도록 한 캘리포니아법을 따르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지출은 엄격히 관리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노마는 고용주가 자신에 대한 지출을 늘리는 데 동의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경쟁자가 많다. 언제든 시급 10달러에 일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더 높은 보수를 받는 시장의 TV 연출자 앱두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고용주가 이젠 기념품도 주지 않고 쫑파티도 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루스벨트 연구소의 애버내티 부소장은 미래를 낙관한다. “모두 거쳐야 할 실험이며 모두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혁신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대다수 근로자의 생활 안정이 돼야 한다.”



※ [이 기사는 ‘주와 나라를 개혁할 수 있는 9개 빅 아이디어, 캘리포니아 게임 체인저(California Game Changers: Nine Big Ideas That Could Transform the State and Nation)’ 시리즈의 일환으로 온라인 매체 ‘캐피털 & 메인’과 공동으로 게재한다.]- 로빈 유레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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