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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함께 쓰지 마세요”

“화장품 함께 쓰지 마세요”

립스틱 테스터·메이컵 브러시 등 통해 병원균 감염 … 1회용 도구 사용해야
마스카라 솔과 아이라이너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로 인한 염증과 결막염을 유발할 수 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한 미국 여성이 화장품점의 립스틱 테스터(시험용 제품)를 쓰고난 뒤 헤르페스(포진)에 감염됐다고 상점을 고소했다.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의아하게 생각되는가? 미생물학자로서 답하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게다가 화장품으로 옮길 수 있는 질병은 헤르페스뿐만이 아니다. 여기선 우선 헤르페스부터 살펴보자.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주로 키스와 섹스 등 피부 접촉으로 전염된다. 하지만 수건이나 컵, 포크·나이프, 립스틱 등에 남아 있던 감염자의 침방울로도 전염된다. 세계적으로 헤르페스 심플렉스 바이러스(HSV-1) 감염자 수는 전체의 약 67%에 이른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어도 가시적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HSV-1은 얼굴 조직 안에 살다가 떨어져나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 감염 즉시 피부에 수포가 생기지 않고 몇 개월 동안 잠복해 있다가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앞서 말한 미국 여성이 그 화장품점의 테스터를 통해 헤르페스에 감염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헤르페스에 감염되면 입술과 입 주변에 수포가 생겨 길게는 10일까지 가기도 한다. 얼굴의 이 부위에 닿는 립스틱과 메이크업 브러시 등이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확산시킬 수 있다. 다행히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힘이 약하고 인체에서 떨어져나오면 보통 10초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땀에 젖은 옷이나 수건 등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는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또한 플라스틱과 크롬, 물에서는 2~4시간까지 살 수 있어 바이러스가 확산될 여지는 많다. 헤르페스 감염에는 근본적인 치료책이 없고 다만 감염 기간을 줄이는 처치만 가능하다.
화장품점의 립스틱 테스터를 이용할 때 다른 사람의 피부에 살고 있던 헤르페스(포진) 바이러스 등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미생물학자들은 1940년대 중반 파상풍균에 오염된 땀띠약을 바른 신생아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미용제품과 병원균의 연관성에 주목해 왔다. 1960년대 이후 세계 곳곳의 미생물학자들이 살모넬라와 폐렴간균, 녹농균 등의 병원균과 연관된 감염 사례를 보고했다.

화장품에는 미생물의 성장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는 방부제가 들어 있지만 살균되지 않은 도구나 손가락을 사용해 바를 때 오염될 수 있다. 또한 제품을 욕실처럼 따뜻하고 습한 곳에 두는 등 잘못 다루거나 보관할 때도 오염된다.

메이크업 브러시 역시 박테리아의 온상이 될 수 있다. 뷰티 블렌더(메이크업 스펀지)와 브러시는 파운데이션이나 아이섀도우를 바르기 쉽게 하려고 물에 적셔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 습한 환경이 박테리아의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

2015년에는 27세의 호주 여성이 항생제 내성 세균(MRSA)에 감염된 후 균이 척추에 침입해 전신이 마비된 사례가 보고됐다. 이 여성은 얼굴에 포도상구균이 감염된 친구의 메이크업 브러시를 사용한 후 감염을 일으켰다. 포도상구균은 보통 피부나 콧속에 살며 좀처럼 해를 끼치지 않는 흔한 박테리아다. 하지만 MRSA는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포도상구균이다.

마스카라 솔과 아이라이너는 눈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지만 박테리아나 HSV-1 등 바이러스로 인한 염증과 결막염을 유발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 솔의 43%가 오염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친구의 마스카라를 빌려 쓰거나 오래된 마스카라를 사용한 뒤 결막염에 걸린 친구들을 많이 봤다. 결막염의 증상에는 충혈과 분비물 증가 등이 포함되며 심한 경우엔 영구 실명을 초래하기도 한다.

속눈썹은 눈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먼지와 박테리아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 따라서 먼지나 박테리아가 묻어 있는 속눈썹에 화장품을 사용할 경우 화장품이 오염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장품 용기 안에서 박테리아가 증식해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눈 감염의 위험이 높아진다.

이런 위험성을 감안할 때 화장품점에서는 물론 친구 사이에서도 화장품을 함께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사람의 피부가 어떤 병원균에 감염됐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화장품을 청결하게 관리하고 가능하면 1회용 도구를 이용해 바르는 게 좋다. 칫솔은 낯선 사람과 같이 쓰지 않으면서 화장품엔 왜 그런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가?

- 암린 바시르



※ [ 필자는 영국 애스턴대학 의생명과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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