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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지 않는 개’에 주목하라

‘짖지 않는 개’에 주목하라

지난해 일어나지 않은 ‘경기후퇴’ ‘미-중 무역전쟁’ 올해도 없다면 주가 떨어지지 않을 듯아서 코난 도일 경의 1892년 저서 ‘셜록 홈즈의 회상록’에서 그 유명한 탐정은 ‘짖지 않는 개’에 초점을 맞춰 사라지는 경주마의 미스터리를 해결한다. 홈즈는 말이 도둑에게 끌려나갈 때 감시견이 침묵을 지키는 건 도둑과 안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지난해 글로벌 증시의 눈부신 실적을 이해하고자 하는 투자자들도 필시 지난해 일어나지 않은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할 듯하다. 그리고 침묵했던 것들 중 하나가 올해 움직일 경우 그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난해는 가만히 있었던 개가 올해는 짖을지도 모르니까.

지난해 일어나지 않은 일 첫째는 경기후퇴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이후 경제가 곤두박질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됐던 영국에서 가장 가능성이 컸다. 지난해 성장이 분명 둔화되고 영국은 선진국 세계 경제 차트의 정상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지만 플러스 성장을 유지했으며 올해 이후에도 그런 추세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경제도 우려한 것보다 더 잘 버텨냈으며 미국의 지속적인 상승세도 막힘없이 이어졌다. 글로벌 경기상승은 갈수록 동기화하는 듯하다. 경기침체 또는 최소한 곧 경기가 꺾일 것이라는 근거 있는 우려 없이 하락장이 도래하는 예는 거의 없다. 따라서 금융위기 이후의 장기적인 경기 회복세가 올해 주가를 계속 떠받칠 듯하다.

투자자들이 우려했지만 현실화하지 않은 또 한 가지는 미-중 무역 전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첫해는 말만 앞서고 행동이 따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지만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트럼프의 캠페인 공약은 실질적인 경제전략이라기보다는 허세에 더 가까웠다. 같은 맥락에서 멕시코 접경을 따라 장벽을 세우겠다는 계획이 트위터에서는 많이 거론됐지만 가시적인 결과물은 없는 것과 비슷했다. 2018년을 전망할 때 중간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이 같은 과시적인 조치들이 열매를 맺을 확률은 분명 줄어들 듯하다.

지난해 침묵을 지킨 세 번째 개는 정치였다. 연초 유럽 우파의 부활이 투자자의 가장 큰 우려로 손꼽혔다.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의 엘리제궁 입성 전망에 투자자들이 질겁했다. 그런 점을 보면 선거에서 주류 후보들이 잇따라 우위를 차지하면서 유럽 시장 분위기가 꾸준히 호전된 것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올해의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독일은 국정을 이끌어나갈 연정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탈리아는 반유럽 정서가 고조된 분위기에서 선거를 치른다. 중동에서는 이란의 상황이 불길해 보이며 한반도는 여전히 중대한 지정학적 위험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2017년에는 상식이 승리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판단이 옳았다. 올해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는 그 밖에도 두 가지 관련 악재가 실현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이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그에 따라 통화정책 정상화가 많은 사람이 우려했던 것보다 더 평탄한 길을 따랐다. 예상대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한 미국에서도 시장이 통화긴축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지난해 이렇다 할 시장조정이 없었던 데는 재닛 옐린 전 FRB 의장의 시장기대 관리가 절제됐던 공이 크다. 2013년 벤 버냉키의 통화긴축 암시에 따른 긴축발작(taper tantrum, 긴축정책 전환으로 금융시장이 겪는 충격)에 비해 옐린의 고별사에 대한 반응은 차분했다. 오는 2월에 취임하는 제롬 파월 체제에서도 이런 추세가 계속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에 관한 문제에선 투자자들이 앞으로도 같은 반응을 보일 듯하다.

따라서 2017년 짓지 않은 개들이 올해도 침묵한다면 어떤 변수가 돌출해 투자자들이 공들여 세워놓은 계획을 망쳐 놓을까? 앞으로 투자자는 무엇을 걱정해야 할까?

첫째는 올해 자산 배분자들의 견해가 비교적 천편일률적이라는 사실이 투자자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우려된다. 올 들어 미국 시장이 과대평가돼 있으며 유럽·일본 그리고 나머지 아시아 지역의 저가 라이벌 시장보다 상승률이 낮을 수 있다는 믿음이 너무 보편화돼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다시 우리 모두의 허를 찌를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영국 시장을 경시하는 시각이 널리 퍼져 있는데 이런 분위기도 올해 역발상 투자자들에게 수익 기회를 제공할지 모른다. 브렉시트 회담의 결렬이나 노동당 정부의 집권 가능성 확대도 파운드화 폭락으로 영국 FTSE 100 지수의 많은 수출기업과 해외 소득자가 혜택을 볼 경우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올해 유럽 지역이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일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여기에는 불확실한 부분이 너무 많아 분산투자가 잘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만 수익 전망이 있을 듯하다.

두 번째로는 근년 들어 수동적 투자(passive investments, 주요 지수 움직임을 따르는 투자)로 유입된 수십억 달러의 투자자금이 올해는 횡보장세에 갇히게 되리라고 본다.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할 때는 능동적 투자(active investment, 공정수익률 이상의 수익을 겨냥한 투자)가 유리하다. 횡보장세는 흔한데도 사람들이 대체로 예상하지 않는다. 악재와 호재가 동시에 작용할 때 지수를 따라봤자 수익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때는 철저한 종목 위주 투자가 최선의 접근법이다.

끝으로 올해는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음을 투자자들이 깨닫는 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과거엔 주가 사이클의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저평가 종목을 헐값에 주워담는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고전적인 역발상 투자법이다.

판갈이 기술혁신(대표적으로 소매유통 업계의 아마존)으로 이 같은 역발상 투자법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올해 그리고 앞으로 얼마 동안은 투자에 성공하려면 투자 대상 종목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과연 미래가 있는 회사인가? 요즘에는 가치함정(value traps)이 훨씬 더 많아졌다. 저평가된 것으로 보이지만 필시 앞으로 더 주가가 내려갈 종목들이다.

셜록 홈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2018년 투자는 파이프 담배를 두 번 채워야 할 만큼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two-pipe problem)다.

- 톰 스티븐슨



※ [필자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개인투자 사업부문 투자 팀장이다. 앞서 ‘인디펜던트’ ‘더 텔레그래프’ 같은 신문의 금융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뉴스위크 한국판 2018년 2월 5일자에 실린 기사를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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