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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꽃피는 그들만의 장소

사랑이 꽃피는 그들만의 장소

남성 동성애자가 공중 화장실에서 섹스 상대 찾는 ‘게이 크루징’의 역사 조명하는 전시회 독일에서 열려1998년 영국 팝 스타 조지 마이클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의 공중 화장실에서 ‘음란한 행위’를 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 일로 그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을 부끄럽게 여겨 숨기기보다 자신의 다음 싱글 곡 ‘Outside’의 뮤직 비디오에 활용했다. 화장실이 등장하고 마이클이 섹시한 경찰관으로 나오는 이 비디오는 게이와 관련된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주류로 끌어냈다.

하지만 ‘크루징’(cruising, 남성 동성애자가 공중 화장실에서 섹스 상대를 찾는 행위)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프랑스 사진가 마르크 마르탱은 최근 크루징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공중 화장실은 데이팅 앱과 게이 클럽이 등장하기 전 남성 동성애자가 섹스 상대를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다.

독일 베를린의 슈불레스 박물관에서 열리는 ‘공중 화장실, 사적인 업무(Public Toilets, Private Affairs) 전’(2월 5일까지)은 공중 화장실의 게이 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아이템을 전시한다. 성적인 낙서로 뒤덮이고 ‘글로리 홀’(glory hole, 공중 화장실 칸막이에 남자 성기가 들어갈 만큼의 크기로 뚫린 구멍)이 있는 화장실 칸막이부터 경찰 풍기사범 단속반의 기록, ‘게이는 크루징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문구가 쓰인 뉴요커 잡지의 표지까지. IB타임스가 마르탱을 만나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게이는 크루징을 왜 부끄럽게 여기나?


오늘날의 게이 대다수는 이 유산을 잊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성애가 오랫동안 법으로 금지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 데이팅 앱과 디지털 크루징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본능에 따라 살고자 하는 게이가 찾을 만한 곳은 공중 화장실밖에 없었다. 지저분하고 음침하고 악취 나는 그곳은 사회 계층 구분없이 뒤섞이는 장소였다. 연령대와 문화·종교적 배경이 다양한 사회 각계각층의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공중 화장실에서 일어난 비행의 흔적은 경찰의 풍기단속 기록에 남아 있다. 이번 전시회는 그늘에 가려졌던 이 잊혀진 미팅 장소에 색깔과 생명을 불어넣는다.



전시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남자 동성애자들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프랑스 파리에 사는 마르셀로 현재 98세다. 1937년 태어난 경찰 출신의 동성애자도 만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소도시에 살았는데 당시 다른 동성애자를 만나려면 정체가 드러나 비난 받을 위험을 감수하고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라인더’ 같은 편리한 게이 데이팅 앱이 등장한 요즘 세상에 이 전시회가 어떤 면에서 중요성을 갖나?


오늘날 젊은 동성애자는 구식 크루징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섹스 상대를 찾는다. 하지만 온라인에 올라 있는 프로필을 보고 취향에 맞춰 파트너를 고르는 젊은 세대의 데이트 방식에는 자연스러움과 즉흥성이 결여됐다. 공중 화장실에서는 의외성(the unexpected)과 미지성(the unknown)이 성적 흥분의 중요한 요소였다. 상대에게 다가가는 직접적인 접촉이 필수적이었다. 혼자만의 환상에 젖기보다는 상대와 경험을 공유하고 교환했다. 자신의 성기를 내보이는 데는 조심스러움이 따랐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는 상대를 만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온라인 프로필에 공개한다. 솔직히 말해 그런 데서 흥분을 느끼기는 어렵다.



화장실은 트랜스젠더의 권한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 문제와 관련한 이 전시회의 입장은?


베를린에서는 ‘오바마 트랜스젠더 화장실 칙령’(2016년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의 각급 공립학교에 트랜스젠더가 자기가 원하는 성별의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하라는 공문을 보내면서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연방지원금을 끊겠다고 말했다)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트랜스젠더를 위한 화장실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이 남성을 위해 디자인한 이런 시설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일부 여성은 화장실에서의 성평등을 주장하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지 마이클이 ‘Outside’에서 묘사한 크루징을 어떻게 생각하나?


공중 화장실에서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남성은 망신당하고 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경찰의 풍기단속 기록에서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일부는 유명한 공인이었다. 19세기 파리 샹젤리제 부근의 공중 화장실에서 경찰 풍기단속반에 체포된 왕정파 인사부터 프랑스 제4공화국(1946년 10월~1958년 10월)의 정보부 장관까지 상세한 사연들이 적혀 있다. 마이클은 베벌리 힐스의 공중 화장실에서 사복 경찰에게 성기를 노출한 채 구애하다 체포돼 어쩔 수 없이 커밍아웃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풍자해 기막힌 뮤직 비디오를 제작해서 꺼져가던 가수로서의 위상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경의를 표할 만하지 않은가?

- 캐시미라 갠더 아이비타임즈 기자

[뉴스위크 한국판 2018년 2월 5일자에 실린 기사를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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