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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텍 문명 붕괴는 살모넬라균 때문?

믹스텍 문명 붕괴는 살모넬라균 때문?

독일 연구팀, 16세기 메소아메리카 원주민 대다수가 사망한 원인으로 식중독 박테리아 지목
연구팀은 2004년부터 멕시코 오악사카 주의 집단매장지에 묻힌 800구 이상의 유골 중 수십 구를 발굴해 사망 원인을 조사했다. / 사진:CHRISTINA WARINNER / THE TEPOSCOLULA-YUCUNDAA ARCHAEOLOGICAL PROJECT
메소아메리카(오늘날의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일대) 지역의 원주민 중 한 부족인 믹스텍은 과거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온 뒤 16세기 중엽 전염병의 창궐로 대다수가 목숨을 잃으면서 멸망했다. 그러나 그 전염병이 어떤 병이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지금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 과학자들은 그들 대다수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의 원인일 가능성이 큰 요인을 확인했다고 믿는다. 그 요인은 덜 익은 고기를 먹은 후 식중독을 유발하는 박테리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사연구소의 물리 인류학자 크리스텐 보스 박사와 동료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2004년부터 멕시코 오악사카 주 유적지 테포스콜룰라-유쿤다에 있는 교회묘지 부근의 집단매장지에 묻힌 800구 이상의 유골 중 수십 구를 발굴해 사망 원인을 조사했다. 그 결과 그 전염병이 돌던 시기에 사망한 사람들의 유골,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치아의 펄프 조직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 종의 DNA가 발견됐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진화’ 저널에 발표했다.

16세기 중반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돌았다. 그곳의 원주민은 고열과 두통, 눈·코·입의 출혈로 정신을 잃다가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5년 동안 약 1500만 명이 사망했는데 메소아메리카 지역 인구의 90%에 해당한다. 원주민은 이 전염병을 ‘코코리즈틀리(cocoliztli)’라고 불렀다. 코코리즈틀리는 ‘역병’을 의미한다. 하지만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500년 가까이 천연두나 홍역, 볼거리(유행성 이하선염), 독감 등이 원인으로 추측될 뿐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논문의 저자 중 한 명인 보스 박사는 “믹스텍 원주민 부족 전체에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로 인해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했다.”

연구팀은 DNA 염기서열이 완전히 분석된 박테리아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그들은 유골에서 추출한 옛 D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다음, ‘메이건 일치판별 도구(MALT)’로 불리는 기법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했다.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를 비교의 기초로 활용함으로써 고대인의 치아 속에 숨어 있던 미생물의 정체를 확인한 것이다. 그 결과 유골에서 발견된 DNA 염기서열이 현대 박테리아 중 하나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박테리아 중에선 살모넬라가 그 유일한 병원체였다.

연구팀은 그 병원체가 살모넬라라는 점을 재확인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DNA 증폭법을 사용해 지놈 전체를 재구성해야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놈을 재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DNA 분자는 오래 되면 분해된다. 따라서 발굴된 유골에서 나온 DNA는 짧은 조각으로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보스 박사는 “깨진 거울을 조각조각 맞춰 복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살모넬라에 초점을 맞춘 ‘미끼’를 이용해 지놈과 일치하는 조각을 찾았다. 그런 다음 현대 살모넬라 지놈을 틀로 사용해 그 조각들을 퍼즐처럼 짜맞췄다.이 고대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살모넬라 종은 오늘날 식중독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와 유전적으로 유사하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덜 익은 고기를 먹으면 치명적인 박테리아 유행병이 발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캐나다 맥매스터대학 고대 DNA 센터의 선임연구원 헨드릭 포이나(이번 연구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다)는 “작은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살모넬라의 모든 종은 비교적 상당히 비슷하다. 하지만 반드시 큰 변화가 있어야 치명적인 박테리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16세기 중반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정체불명의 전염병 때문에 5년 동안 약 1500만 명이 사망했다. / 사진:FROM TOP: FLICKR, WIKIPEDIA
보스 박사와 동료들이 확인한 박테리아는 살모넬라 엔테리카의 변종인 파라티피 C였다. 장티푸스와 비슷한 질명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균이다. 그 박테리아 DNA가 치아의 펄프 조직에 들어 있었다는 것은 이 박테리아가 혈류로 들어가 패혈증 반응을 일으켰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항생제가 흔히 사용되는 시대에선 보기 드문 현상이다. 연구팀은 감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퍼지는 살모넬라가 그 지역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이 데려온 가축들과 함께 퍼져나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살모넬라 엔테리카는 중세 유럽에서 존재했다고 알려졌다. 만약 그렇다면 원주민의 면역체계는 그 병원균을 막을 능력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연구는 과학자들이 신대륙의 옛 유골에서 박테리아가 미생물 감염을 일으킨 분자적 증거를 발견한 첫 번째 사례다. 보스 박사와 동료들이 사용한 새로운 기법은 과거 의문의 집단 사망을 가져온 질병들의 원인을 밝히는 데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보스 박사는 “이번 연구는 고대 질병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며 “특히 질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전형적인 고고학 사례 기록에 있는 많은 질병 매개체의 분자적 흔적을 살펴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물론 수백 년 전에 누군가를 죽게 만든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문제에서 DNA 염기서열 분석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때론 유골에 남아 있는 단서가 사망 원인을 알려줄 수 있다. 결핵과 천연두는 유전자 염기서열 없이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주된 원인 병원균의 유전적 흔적만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조사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예단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이나 연구원은 “특정 전염병을 찾다가 그것을 발견하면 다른 원인은 무시하고 그 전염병이 사인이라고 단정하기 쉽다”고 말했다.

게다가 원인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과거 포이나 연구원과 그의 팀은 얼굴에 발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중세 미라의 유골에서 천연두 DNA를 찾으려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는 “천연두의 DNA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우리는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신 그들이 발견한 것은 B형 간염 DNA였다. 전문가들은 그들에게 B형 간염도 어린이의 얼굴에 발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이나 연구원은 “형태학은 오해로 이어질 소지가 많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에 보스 박사가 사용한 연구기법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포이나 연구원과 그의 팀은 그 미라가 천연두가 아니라 B형 간염으로 사망한 시신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새로운 MALT 기반의 연구기법은 다른 증거로 고대인의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없을 때 특히 유용하다. 시신이나 역사책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질병이 많기 때문이다. 보스 박사는 “유골에 특징을 남기는 질병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망 원인이 A 질병 아니면 B 질병임을 시사하는 역사적 맥락을 찾을 수 있는 경우도 드물다.”

물론 이번 연구가 확정적인 건 아니다. 살모넬라 종이 유력한 후보이긴 하지만 다른 병원균이 검출되지 않았거나 현대의 우리가 완전히 모르는 박테리아가 믹스텍 원주민의 사망원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살모넬라 엔테리카가 믹스텍 원주민의 인구를 급감시킨 전염병의 유일한 원인이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 외에도 보스 박사 같은 고대 DNA 전문가들을 기다리는 고대 전염병이 수없이 많다. 보스 박사는 “그런 전염병이 너무 많아 내가 특정 전염병 전문가로 분류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이다.”

- 케이트 셰리던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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