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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들까

남자는 왜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들까

리베케 솔닛의 남성 설명강박증에 관한 에세이, ‘미투’ 운동으로 새 의미 부여 받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창비 펴냄)의 저자 리베타 솔닛은 페미니즘 운동이란 여성을 침묵과 무기력의 자리에 놓아두려는 이들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저술가이자 비평가, 역사가, 여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은 2008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라는 유명한 에세이를 썼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자들은 자꾸만 솔닛을 가르치려 든다.

최근 어느날 밤 솔닛은 뉴욕 쿠퍼유니언대학의 그레이트홀에 모인 청중 앞에서 그 에세이를 낭독했다. “남자들은 나를 비롯한 여자들을 자꾸 가르치려 든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말이다. 남자들이란!” (그녀는 막간에 “요즘엔 ‘#모든 남자가 그렇다는 얘긴 아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농담했다.)

솔닛은 그 남자들이 자신에게 아직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직 시간은 있다. 하지만 난 남자들의 사과를 받으려고 숨죽이고 마음을 졸이진 않는다.” 그녀는 잘난 체하는 한 남자가 인상 깊은 책이라며 바로 자신이 쓴 책에 관해 자랑스럽게 얘기할 때 그 에세이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돌이켰다. 그는 바로 앞에 있는 그녀가 그 책의 저자인지 몰랐던 것이다. 아니면 자신 앞에 있는 그녀는 그런 책을 쓸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솔닛의 그런 예리한 관찰은 ‘맨스플레이닝[mansplaining,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ing)를 붙인 표현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한다는 뜻이다]’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면서 신속히 21세기 페미니스트 정신에 뿌리 박았다(‘맨스플레이닝’은 2010년 ‘뉴욕타임스’가 꼽은 ‘올해의 단어’가 됐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도 등재됐다).

세계적으로 여성이 성폭력 폭로운동 ‘미투’에서 목소리를 찾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 공직에 많이 출마하는 등 문화적·정치적으로 흥분되는 시점에서 솔닛의 에세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세이 모음집의 제목이기도 하다)가 나온 지 10주년을 맞았다. 물론 ‘미투’ 운동은 큰 변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교묘한 성차별주의에 관한 솔닛의 지적이 더는 쓸모 없는 게 결코 아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올해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투’ 운동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운동 때문이다.

‘미투’ 운동의 시발점은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었다. 그는 ‘펄프 픽션’ ‘굿 윌 헌팅’ 등 히트작을 제작하며 문화 권력을 행사해왔지만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 신문에서 수십 년 동안 일삼아온 성폭력이 폭로되면서 할리우드에서 퇴출당했다. 웨인스타인에 대한 성폭력 고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미국과 영화계를 넘어 전 세계 모든 분야로 퍼졌다.

솔닛은 그 에세이를 어느날 아침 식탁에 앉아서 썼다고 밝혔다. 그녀 집에 찾아와 손님으로 하루를 묵은 페미니스트 저술가이자 학자인 마리나 시트린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솔닛은 마침내 종이에 글을 옮겨 적으면서 그 에세이가 ‘어서 트랙을 달리고 싶어 안달하는 경주마’ 같다고 느꼈다. 좀 더 일찍 썼어야 했다는 얘기다. 여성은 남성이 자신을 가르치려 들거나 얕잡아 보거나 믿으려 들지 않을 때 그것이 자신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못남’ 때문이 아니라 더 큰 조직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솔닛은 생각했다.

솔닛은 쿠퍼유니언대학에서 그 에세이를 낭독할 때, 이젠 하나의 상징이 된 그 남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려고 확신에 찬 바리톤으로 익살맞게 구연했다. 청중은 자연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만 지금은 그런 남자를 비웃으며 “그 책은 내가 썼거든요”라고 말하고 그 남자가 그랬듯이 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한결 더 쉽다. 솔닛 덕분에 여성은 ‘가부장제가 문제’라는 사실을 훨씬 더 잘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처럼 그들을 비웃기가 쉬워졌다고 해서 남자들의 그런 태도가 덜 사악해지는 건 아니다. 솔닛에 따르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여성은 기초 생존 도구인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기본적인 믿음 때문이다. 그녀는 에세이에서 잊지 못할 일화를 소개했다. 한 남자가 싱긋 웃으며 그녀에게 이웃집 여자에 관해 말했다. 그 여자가 어느날 밤 알몸으로 집에서 뛰쳐나오며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외쳤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솔닛에게 그 여자의 남편은 중산층의 강직한 구성원이라며, 따라서 그 여자의 말이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 우스운 광경이었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은 신뢰성과 생존 사이의 연관성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줬다. 특히 지난해 11월 웨인스타인이 자신에게 성폭력당했다고 밝힌 여성들을 추적하기 위해 사립탐정들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 출신들을 고용했다는 뉴스가 등장한 뒤로 그런 점이 더욱 뚜렷해졌다. 잡지 뉴요커는 그들을 ‘스파이 군단’이라고 불렀다. 웨인스타인은 또 그 여성들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그들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기사를 쓰도록 기자들을 회유하기도 했다. 사실 누가 그 막강한 백인 영화 거물보다 피해 여성들의 말을 믿으려 들었겠는가?

솔닛은 “5년 전만 해도 여성을 상대로 한 모든 폭력은 별개의 사건으로 취급됐다”고 말했다. “그 모든 폭력이 서로 연결되는 게 아니며 따라서 사회 문제로 취급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식이었다.”

솔닛에 따르면 ‘미투’ 운동은 그런 사고방식에 종지부를 찍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 운동 자체로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우리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물론 그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분명하다. 솔닛은 “이제 우리가 변명하지 않고 숨겨진 것을 들춰내 진단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은 여성이 말하는 도중 저지당하거나 밀리지 않고, 또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할 말을 전부 다 말할 수 있도록 남성이 그동안 입을 꾹 다물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지금도 여성들에게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솔닛은 그 에세이가 실린 책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책이 나온 뒤로 여성들은 이 책을 남성들 앞에서 흔들며 그들이 입을 다물도록 만든다. 이 책은 일종의 무기다.”

- 마리 솔리스 뉴스위크 기자

※ [뉴스위크 한국판 2018년 4월 2일자에 실린 기사를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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