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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춘 듯 편안한 역할”

“몸에 맞춘 듯 편안한 역할”

넷플릭스의 마블 슈퍼히어로 시리즈 ‘제시카 존스’의 크리스틴 리터, 마음의 상처 안고 살아가는 슈퍼파워 사설탐정 역 훌륭히 소화해
‘제시카 존스’에서 크리스틴 리터는 “얼굴 표정으로 대사보다 심오한 뭔가를 표현해 낸다”는 평을 들었다 / 사진:NEWSIS
크리스틴 리터(36)는 2000년대 초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10년 가까이 그녀는 호감 가는 여주인공의 재미있고 똑똑한 절친(성은 없이 이름만 나온다) 역할을 단골로 맡았다. 드라마 ‘길모어 걸스’(2006)의 루시, 영화 ‘쇼퍼홀릭’(2009)의 수지, ‘내겐 너무 과분한 그녀’(2010)의 패티 등이다. 그녀는 비록 조연이었지만 여주인공에게 거칠면서도 사랑 어린 조언을 하며 장면마다 눈길을 끌었다.

2009년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시즌 2에서는 리커링 롤(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인 제인 마골리스 역으로 주목 받았고 2012년엔 TV 시트콤 ‘두 여자의 위험한 동거’에서 주인공 역을 따냈다.

그리고 2015년 넷플릭스의 마블 히어로 시리즈 중 하나인 ‘제시카 존스’ 시즌 1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다(지난 3월 8일 시즌 2가 공개됐다). 존스는 슈퍼파워를 지닌 사설탐정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자신의 감정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캐릭터다. 리터는 이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소화한다. “내게 존스 연기는 사탕처럼 달콤하고 요가의 사바사나(완전한 휴식 자세)처럼 편안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리터는 ‘두 여자의 위험한 동거’의 크리에이터 나나치카 칸 덕분에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칸은 한 가지 특성만 강조된 역할에서 날 해방시켰다. 그녀는 내가 코미디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작품은 또 그녀의 신체 연기를 돋보이게 했다.

‘제시카 존스’의 크리에이터 멜리사 로젠버그는 리터의 신체 연기에 상당히 의존하는 편이다. “리허설 때 대사를 잘라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로젠버그는 말했다. “리터가 몸의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으로 대사보다 더 심오한 뭔가를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그녀는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언제나 핵심을 파고든다.”제시카 존스는 코스튬을 입지 않는 마블 히어로다. 하지만 리터는 탈색된 진바지와 검정색 가죽 재킷을 이 캐릭터의 비공식적 유니폼으로 삼았다. “예전 작품에서는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입을 다물었다”고 리터는 말했다. “하지만 ‘제시카 존스’에선 ‘난 존스가 외모에 신경 쓰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스는 같은 여자들이 자신을 멋지다고 느끼거나 남자들이 섹시하다고 생각해주길 은근히 바라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패션 감각도 없고 매일 같은 옷을 입으며 화장도, 머리 손질도 하지 않는다. 반항심의 표시다.”

지난 3월 8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제시카 존스’ 시즌 2의 리터. / 사진:COURTESY OF NETFLIX
시즌 1에서 존스는 성폭행범 킬그레이브(데이비드 테넌트가 연기한 슈퍼 악당)와 싸운다. 킬그레이브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존스가 목을 부러뜨릴 때까지 뉴욕 시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존스는 넷플릭스 시리즈 ‘마블 디펜더스’에서 데어데블과 루크 케이지, 아이언 피스트와 함께 마블 슈퍼히어로 팀의 일원으로 등장했다.

“‘마블 디펜더스’를 촬영할 때는 솔직히 파티하는 기분이었다”고 리터는 말했다. “스턴트가 많았고 내가 좋아하는 젊은 남자 배우들과 함께해서 신났다. 어떤 날은 촬영 중 세트를 완전히 파괴한 뒤 한 시간 만에 다시 세우기도 했다. ‘제시카 존스’에서는 자리에 앉을 사이가 없다.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해 무척 바쁘다.”

‘제시카 존스’는 성폭력이나 마약중독처럼 슈퍼히어로 드라마에선 흔치 않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배우로서 신체적·정서적으로 견뎌내기가 힘들다. “시즌 1이 끝난 다음엔 몹시 우울했다”고 리터는 말했다. “난 밝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데 존스의 마음속은 아주 어둡다. 그래서 ‘시즌 2’를 제작할 때는 촬영 중간중간 뜨개질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마블 코믹스의 스토리에 따르면 존스의 가족은 그녀가 어릴 때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새 시즌에서는 그녀가 슈퍼파워를 갖게 된 장소인 병원을 수사한다. 이번 시즌의 악당은 영국 배우 재닛 맥티어가 맡았다. 또 다른 스토리라인에선 존스의 입양한 여동생 트리시가 성희롱당한다. 하지만 로젠버그는 시즌 2의 촬영이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기 이전에 완료됐다고 말했다.

이 운동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시즌 1에서 ‘제시카 존스’는 정서적 트라우마에 대한 여권주의적 입장으로 칭송 받았다. 로젠버그는 이 드라마가 여성에게 힘을 실어 준다니 고맙지만 여권주의를 내세울 의도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작품을 단순히 문화적 진보의 다음 단계로 본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하고 싶어 하는 대화”라고 로젠버그는 말했다. “캐서린 헵번부터 애니타 힐까지, 그리고 ‘델마와 루이스’부터 ‘뱀파이어 해결사’까지. 19세기 여성참정권자부터 1970년대의 여권운동가까지 오랜 시간을 두고 축적돼 온 것이다.”

시즌 2에서는 아이들을 비롯한 몇몇 캐릭터가 존스에게 그녀가 슈퍼히어로인지 아닌지를 묻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다. 로젠버그에게 그건 단순한 문제다. “난 ‘덱스터’에서 그 답을 얻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제시카 존스’에서 중요한 건 슈퍼파워나 사건 파일, 또는 악당이 아니라 존스라는 캐릭터다. 존스는 세계에 선한 의지를 심으려는 상처 받은 인간이다.

“팬들은 존스가 슈퍼히어로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리터는 말했다. “시즌 1이 끝난 뒤 거리에서 여성들을 만났다. 삶에 트라우마를 지닌 그 여성들은 울면서 ‘제시카 존스’는 자신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 에밀리 고데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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