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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한국 사회 뒤흔드는 미투 운동 - 정치학] 제도 개선 넘어 인식·행태 변화 끌어내야

[‘각학각색(各學各色)’ | 한국 사회 뒤흔드는 미투 운동 - 정치학] 제도 개선 넘어 인식·행태 변화 끌어내야

일상의 권력 구조에 문제 제기…여성운동으로만 그쳐서는 곤란
민주주의의 역사는 시민권 확대의 과정이다. 시민권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인격적 자유, 표현·사상·집회의 자유에서 출발해, 권력 행사 참여의 정치적 권리를 거쳐, 복지 등 사회적 권리로 이어지면서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 여성운동 역시 여성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시작됐다. 교육권·노동권 확보를 위해 시작된 여성운동은 여성 대표성을 위한 참정권 획득 운동으로 이어졌고,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제도 개선, 생활양식의 변화로까지 발전했다.

2018년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성차별·성희롱·성폭력 등 피해 사실을 드러내거나 폭로해 공감 확보와 연대를 통해 사회를 변화 시키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미투 운동은 기존의 여성운동의 연속 선상에 있다. 1990년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이후 직장 내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상으로 한 직장 내 성문제가 쟁점화됐고, 2016년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표적이 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이 공론화됐다.

미투 운동은 기존 여성운동과 연결되면서도 범위와 내용에서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미투 운동은 성문제가 여성 개인의 문제 혹은 ‘내 잘못’이 아닌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시켜 공감대를 확보하면서, 사적 영역의 문제를 가장 큰 규모로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관행과 상식, 의도적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다수의 묵인 하에 이뤄졌던 ‘일상의 권력구조’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기존 운동과 차별성을 지닌다.

일상화된 힘과 권력은 인지하기 쉽지 않다. 기존 질서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용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인식·인지를 형성해 불만을 품지 않도록 만드는 권력행사는 가장 음흉한 방식의 권력 행사다. 이런 권력행사는 물리적 힘뿐만 아니라 가치관을 형성하는 문화에 영향을 미쳐 상대방의 무의식적이고 암묵적인 동의를 이끌어내게 된다. 남성에게는 당연시 여겨졌던 행동양식, 예를 들어, 마초, 로맨티스트, 츤데레 등에는 모두 권력이 작용하고 있다. 일상과 생활양식에서 권력의 작용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다 보니 불평등 문화가 고착화되고, 재생산된 것이다.

국가 정부 역시 이런 불평등이 뿌리내리는 데 기여했다. 정부의 역할은 경제·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통해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적 약자인 여성 관련 의제는 정책 결정의 우선순위로 다뤄지지 않았다. 더구나 여성정책은 여성에 대해 ‘이중잣대’를 적용했다. 노동 인력으로서의 여성과 재생산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해 이중 역할이 강조됐다. 여성정책은 성중립적이지 않았고, 여성 문제를 사적 영역에만 머물게 만들었다.

젠더 불평등 문화가 고착화되고, 국가가 여성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사이 피해자는 더욱 증가했다. 이런 문제가 폭발한 것이 미투 운동이다. 미투 운동은 자신이 가해자 혹은 피해자임을 인지하지 못했던 일반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생활양식, 관행, 상식,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The personal is political)’임을 일깨우면서, 일상의 권력구조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게 만들었다.

미투 운동이 불평등으로부터 비롯된 여성운동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여성의 대표성 증진이나 역량 강화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사적 문제가 공적 문제로 공론화된 이상, 공적 논의를 거쳐 제도를 개선하고, 모든 개인의 인식과 행태 변화도 수반돼야 한다. 모든 사회에는 불가피하게 다수와 소수, 주류와 비주류,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 승자와 패자가 공존한다. 다수·주류·강자·가해자가 늘 승자가 된다면, 그곳은 민주사회의 자격이 없다.

※ 정하윤 교수는…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리더십센터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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