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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차르 푸틴은 뭘 믿고 큰소리치나] 국제유가 상승 덕에 외화 두둑이 벌어

[21세기 차르 푸틴은 뭘 믿고 큰소리치나] 국제유가 상승 덕에 외화 두둑이 벌어

전체 수출에서 원유·가스 비중 48.5% … 시리아 정부 지원하며 옛 소련 시절 위상 되찾아
블라디미르 푸틴(65)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월 19일 모스크바 북쪽 셀리게르 호수에서 러시아 정교회 축일(신현절)을 맞아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는 정화의식을 치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대중에게 강인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오토바이와 전투기 조종, 심지어 봅슬레이에 도전하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시리아 사태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다. 시리아 정부군이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의 반군 거점인 동구타 지역에 화학무기를 사용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반군과 반군을 지지하는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이 확실하다며 국제적인 제재나 보복공격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 증거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커져 유가 오름세
사태에 불을 지른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4월 11일 트윗이다. 트럼프는 트윗에 “러시아는 시리아에 발사되는 미사일을 모두 격추하겠다고 하고 있다. 러시아는 준비하고 있어라”는 내용을 올렸다. 누가 봐도 시리아에 대한 미군의 미사일 공습을 시시한 내용이다. 트럼프는 “러시아는 자국민을 가스로 살해하고 즐기는 짐승의 파트너가 돼선 안 된다”는 내용도 올렸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작심하고 날린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전날인 4월 10일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자시프킨 레바논 주재 대사는 헤즈볼라 매체 알마나르TV와 인터뷰를 하면서 “미군이 (시리아 정부군을) 공습한다면, 미사일은 요격당할 것이고, 발사 원점도 타격 당할 것”이라고 말하자 트럼프가 발끈해서 이런 트윗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위협적인 트윗을 날린 지 불과 수십분 뒤에 “러시아와 우리의 관계는 냉전시대를 포함, 과거 어느 때보다 악화했다. 그럴 이유가 없다”면서 “러시아는 경제 분야 지원에서 우리를 필요로 한다. 군비경쟁을 중단하는 게 어떠냐”는 트윗을 날렸다. 얼핏 봐서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트윗에서 시리아 공습을 시사한 직후 미국의 외교와 국방 라인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만나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매티스 장관은 “적절하다면 군사옵션을 제공할 준비가 됐다”며 트럼프를 거들었다.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차기 미 국무장관 지명자와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등도 백악관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나 트럼프가 외교와 국방 핵심 관계자를 불러 러시아에 대한 대응을 심각하게 논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해 시리아 위기를 논의했다. 이에 대해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으며 최종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고 유보적인 발언을 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미사일 공습이) 하나의 옵션이지만 유일한 옵션은 아니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할 유일한 사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의 위협성 발언에 능수능란하게 대응했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가 시리아 공습을 암시하는 듯한 트윗을 날린 바로 그날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러시아 주재 신임 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식이 이길 것”이라며 받아쳤다. 자신감이 보이는 부분이다. 푸틴은 “지금의 국제 현안들이 불안감을 자아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우리는 상식이 이기고 세계의 모든 시스템이 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제정세상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기 쉽지 않음을 지적한 셈이다.
 트럼프 위협에 푸틴 “상식이 이길 것” 반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7월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정상회담을 했다. / 사진:연합뉴스
러시아와 시리아의 관계는 돈독하다.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2011년 시리아 내란이 발발한 이후 딱 2차례 해외를 방문했는데 모두 러시아였다. 알아사드는 2015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뜨거운 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20일에는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러시아 흑해 연안 도시 소치를 찾아 푸틴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다. 소치는 옛 소련 시절의 휴양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옛 소련과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휴가를 보내거나 정치적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지도자들이 모여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로 애용됐다. 미국으로 치면 트럼프의 플로리다 휴양지 마라라고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나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나 것과 일맥상통한다. 시리아의 알아사드는 러시아의 푸틴과 그 정도로 친밀하고 협력적인 관계임을 과시한 셈이다. 푸틴은 알아사드를 이용해 중동에서 과거 소련 시절의 위세를 회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알아사드는 그런 푸틴의 비호 속에 7년 내전을 치르면서도 정권과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는 중장거리 미사일과 로봇 기갑무기, 폭격기, 특수부대 등 다양한 군사력을 시리아에 투입해왔다. 이를 통해 러시아산 무기의 성능을 실험하고 그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군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흑해에서 발사해 시리아의 목표물에 정확하게 타격했다. 게다가 기관포를 장착한 ‘우란 기갑로봇’을 비롯한 다양한 로봇 무기를 실전에 투입해 이 분야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러시아로선 시리아 사태가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옛 소련 수준으로 올려준 계기인 셈이다. 푸틴이 알아사드를 철저하게 비호하는 전략적 셈법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시리아 사태가 악화하면서 불똥이 국제사회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물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핵심 회원국인 영국과 프랑스도 나선 것이 그 핵심이다. 사실 이 두 나라는 역사적·외교적·경제적으로 중동 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 패전국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완전히 해체하고 오스만 영토이던 중동 지역에 새로운 국경선을 그은 나라다. 프랑스는 오스만 영토이던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을 1차 대전 후 위임 통치하며 이 두 나라를 독립시킨 뒤 오랫동안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이 지역 주민 중 프랑스에 이민온 사람도 적지 않고 현지에 살면서도 프랑스 이중국적을 보유한 사람도 상당수다. 더구나 영국은 자국에서 벌어진 옛 러시아 이중스파이 독살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와 날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에 대항해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전통적인 강국도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러시아로선 국제 외교의 운전석에 올라앉은 셈이다. 러시아를 빼놓고 국제 정세를 논할 수 없는 세상이 된 셈이다. 러시아는 새롭게 미국 중심의 서방 세계에 대항하는 핵심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푸틴에 의한 러시아의 화려한 부활이다.

실제로 군사적 측면에서는 미국과 나토 동맹국은 시리아 공격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이미 4월 11일 구축함 도널드 쿡함을 지중해 동부 해상에 배치한 데 이어 구축함 포터도 시리아에 수일 안에 인근 해상으로 이동시킬 예정이라고 CNN 등 미국 미디어가 전했다. 미국의 구축함은 만재배수량 8400~9200t의 얼레이버크급 한 종류로 통일돼 있다. 미 해군은 모두 62척의 얼레이버크급 구축함을 운용 중인데 모두 이지스 전투 시스템과 대공 미사일을 장착해 전투기는 물론 미사일 공격도 방어할 수 있다. Mk41수직 발사기를 장착해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국 이어 영국·프랑스도 시리아 공격 준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은 시리아 위기에 대해 미국과 군사적인 보조를 맞추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4월 12일 긴급 각료회의를 열고 미국과 프랑스가 시리아에 군사적 대응을 할 경우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국 정부 관계자들은 메이 총리가 복잡한 의회의 승인을 피해 시리아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력 투입보다 공군기를 동원해 전략적 목표물을 공습을 하는 등의 제한적 참여를 할 것으로 전했다고 FT는 보도했다.

영국은 지중해 동부인 키프로스에 공군기지를 설치해 운용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시리아에서 멀지 않다. 키프로스 공군기지에 영국군은 토네이도 GR4 전폭기 8대와 공중급유기 보이저 1대 등을 배치하고 있으며 인근 해역에는 영국 구축함 1대가 나토군의 일부로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신속하게 시리아에 공군기를 이용한 폭격이나 구축함을 동원한 미사일 공격이 가능한 상태다. 메이 총리는 지중해에서 작전 중인 영국 잠수함에 시리아까지 잠수함 발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거리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영국은 구축함 잠수함에서 시리아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물론 키프로스에 주둔 중인 공군력을 이용해 알아사드 정권의 요충지를 폭격할 수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도 적극적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월 12일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인 TF1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염소가스 등 화학무기가 알아사드 정권에 의해 사용됐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에서 최근 독가스를 사용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알아사드 정권과 러시아에 정면으로 받아친 셈이다. 마크롱은 “트럼프 대통령과 매일 같이 시리아 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며 적절한 절차를 거쳐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는 시점에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시리아에서의 (군사적) 목표는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능력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해 미국과 보조를 맞춰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을 군사적으로 응징할 준비를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마크롱은 특히 “프랑스는 지역 안정을 해치는 긴장 고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화학무기 사용 같은) 최악의 방법으로 국제법을 위반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를 압박했다.
 시리아 위기는 러시아 위상 높일 절호의 기회
프랑스는 과거 시리아 공습에 핵추진 항공모함인 샤를드골함를 동원해 함재기인 라팔 전폭기를 출동시켰다. 하지만 샤를드골함은 현재 대대적인 수리와 성능 개선 작업 중이라 출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지중해 동부에 배치한 구축함 아키텐함을 활용해 시리아를 공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미사일 구축함이다. 프랑스는 공군 공습보다 미사일 공격을 우선시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제유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러시아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북해산 브렌트유의 경우 4월 12일 71.73달러에 이르렀다. 지난 5년 새 국제유가는 요동쳤다.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하면 2013년 8월 28일 116.61달러로 최고가를 친 이후 큰 폭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3년 간 계속 하락장을 겪으면서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불확실성이 러시아 경제를 뒤흔들었다. 2015년 초반에 45달러 선까지 떨어졌다가 중반에는 70달러 선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하반기 다시 하락하기 시작해 연말에는 40달러 이하까지 추락했다. 2016년 1월 20일 27.8달러까지 떨어졌다. 러시아 경제는 일대 위기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27.8달러는 바닥이었다. 바닥을 친 유가는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가는 꾸준히 40~60달러 선을 오락가락하다 2017년 연말 60달러를 넘은 이래 올해 들어 계속 60달러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시리아 위기로 중동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70달러 선을 넘어선 것이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이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석유와 가스는 러시아 경제의 핵심이다. 국제유가 인상은 러시아로선 더욱 많은 외화를 얻을 수 있는 기회다.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원유와 가스 수출은 러시아 전체 수출의 48.5%에 이른다. 시리아 위기로 유가가 오르는 것은 러시아로선 천재 일우의 기회다. 러시아로선, 푸틴으로선 시리아 위기가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러시아는 옛 소련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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