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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외교학] 식사 메뉴는 정상회담 콘텐트의 상징물

[음식 외교학] 식사 메뉴는 정상회담 콘텐트의 상징물

“관계 발전을 위한 가장 오래된 외교 도구”… 만나고, 대화하고, 함께 식사해야 이해도 높여
부산의 대표적인 생선인 달고기 요리(왼쪽)는 유럽에서도 고급 생선으로 분류되며 북한 해역에서는 잡히지 않는 고기로 알려져 있다.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문재인 대통령의 기억과 유럽 스위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정은 위원장의 기억이 공감할 수 있는 음식이다. 스위스식 감자요리인 뢰스티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감자전은 스위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정은 위원장을 위해 마련했다. / 사진:청와대
정상회담을 비롯한 외교적·정치적 회담은 글로벌 지도자들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주게 마련이다. 그 압박은 ‘혹사’라는 단어로도 표현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정상회담은 몇 날, 몇 주, 몇 달에 걸쳐 길고 지루한 사전준비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장시간 근무나 과로는 예사다. 난마처럼 꼬인 사안을 들고 해결책을 마련하느라 끙끙거리기 일쑤다. 스태프들과 끝없이 회의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목소리도 들어봐야 한다. 상대방과 협상하고 타협하는 것도 피를 말리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혹시나 일이 꼬일까봐 항상 노심초사하게 마련이다. 밤을 새는 날이나 잠 못 이뤄 뒤척이는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닐 것이다. 회담 당일은 스트레스의 절정이다. 관계자들과 미디어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사자들까지 마주보며 기 싸움과 눈 싸움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정상들은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으로 메시지도 주고받아야 한다. 먹는 시간도 정상들에겐 중요한 일과다. 그래서 정상 앞에 내밀 밥상의 메뉴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 메뉴에 자신들의 생각을 담고 새길 수밖에 없다. 그래야 정상들이 밥상을 눈앞에 놓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서도 회담 의제나 만남의 의미에 골몰하게 된다. 정상회담에 수반되는 식사는 회담의 연장이며, 그 메뉴는 회담의 콘텐트를 요약하는 상징물이다.
 음식으로 메시지 주고받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4월 23일부터 사흘 간 미국을 방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을 국빈 방문한 첫 정상이다. 트럼프는 국빈 만찬에서 약간의 프랑스식을 가미한 최고의 미국식 저녁 메뉴를 선보였다. 프랑스라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문화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나타낸다. 시리아 폭격 등에서 미국과 함께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 양 정상이 음식으로 대화를 한 셈이다. 참으로 외교적인 식사다.

4월 27일의 남북 정상회담 메뉴 구성도 마찬가지로 외교적이다. 일부는 내부 정치적인 색채가 짙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신경을 쓴 것은 사실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달고기(물고기의 한 종류) 구이와 뢰스티(전 모양으로 부친 감자채)다. 달고기 구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성장하고 변호사로서 일했던 부산을 떠올리게 해서 골랐다고 한다. 달고기는 물고기의 몸체 옆구리에 있는 흑색의 동그란 반점이 달 모양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부산에선 달고기라는 이름이 생소한 편이다. 대신 ‘맛도’ 또는 ‘마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물고기의 일본어 이름 ‘마토다이’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선 물고기의 몸체 옆구리의 반점을 궁도에서 쓰는 과녁과 비슷하다고 해서 마토다이라고 부른다. 부산에선 전감으로 많이 쓰이는 생선이다.

뢰스티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대 때 스위스에 유학할 당시 접했을 것으로 보이는 음식이다. 영국 BBC방송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찬 메뉴를 소개하면서 음식 외교학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의 부교수로 요리 외교 분야의 전문가인 조한나 멘델슨포먼은 “이 스위스 음식(뢰스티)에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여보려는 의도가 담겼다”라고 풀이했다. 음식 외교 분야 컨설턴트인 샘 소콜은 “메뉴 전제는 아주 매력적”이라며 “정상회담장의 음식은 그야말로 긍정적인 대화 분위기를 위해 준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의 메뉴는 남북한 모두에 있는 여러 지역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통일 메뉴’라고 평가할 수 있다”라며 “이러한 메뉴 선정의 목적은 식탁에서의 통일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소콜은 “이 메뉴를 구성한 디자이너는 김 위원장이 한때 스위스에 살았음을 전제로 하고 뢰스티를 식탁에 올렸을 것”이라며 “하지만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가 스위스에서 거주했다고 확인한 적이 없기에 이는 약간은 도박성”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뢰스티는 스위스의 대중 음식이라는 점이다. 소콜은 “김 위원장이 뢰스티를 먹어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며 “그는 퐁듀(치즈를 녹여 빵을 찍어 먹는 스위스 요리)나 라클레트(우유로 만든 라클레트 치즈를 녹여 감자 등과 곁들여 먹는 요리)를 더 선호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입맛이 까다로울 것이라는 추측도 있는데 근거는 스위스 치즈와 와인을 즐긴다는 보도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은 2014년 9월 김 위원장이 에멘탈 치즈를 비롯한 스위스 치즈와 유럽산 와인을 즐긴다고 전했다. 특히 그해 초 제대로 맛을 내는 치즈 생산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프랑스에 전문가 파견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총리 관저 만찬 도중 졸도한 부시
음식 외교는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에서 흔히 이뤄진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음식을 두고 “관계 발전을 위한 가장 오래된 외교 도구”라고 말했을 정도다. 실제로 전 세계 많은 나라는 상호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려는 희망 속에서 성찬을 차리고, 메뉴에 의미를 담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외교에서 음식과 관련한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93, 재임 1989~1993)이 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일본을 찾았던 1992년 1월 8일의 사고가 그중 하나다. 도쿄의 일본 총리 관저에서 열렸던 국빈 만찬이 시작된 지 30분쯤 후인 오후 8시 19분. 코스의 2번째 요리인 ‘캐비어를 올린 연어회’와 3번째인 ‘후추 소스를 끼얹은 쇠고기 구이’ 사이였다. 부시 대통령은 갑자기 미야자와 기이치(1919~2007년, 재임 1991년 11월~1993년 8월) 일본 총리의 바지에 구토를 하며 졸도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경호원들이 식탁을 밟고 넘어와 대통령의 기도가 음식에 막히지 않도록 응급처치를 했다. 영부인 바버라 부시(1925~2018)는 넋을 잃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67세이던 부시 대통령은 곧 일어나 스스로 만찬장에서 걸어 나갔으며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영빈관으로 돌아갔다. 당시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과 위문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유행성 감기에 따른 위염으로 졸도했으며 곧 회복했다”라고 해명했다. 다음 날 오후로 예정됐던 제2차 미·일 정상회담은 오후 1시30분으로 연기돼 진행됐지만 이날 오후 3시30분으로 예정됐던 공동기자회견과 저녁의 일왕주최 만찬은 예정대로 이뤄졌다. 미국과 일본의 코미디언들은 이 사건을 두고두고 코미디 소재로 우려먹었다. 다행히 화는 면했지만 이 사건으로 부시 대통령은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남겼다. 그 여파였는지 1992년 11월 3일의 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소속의 현역 대통령인 부시는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배했다. 확보한 선거인단 숫자가 168명 대 370명인 압도적인 패배였다.

사실 부시는 일본 방문 이전까지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1990년 8월 2일부터 1991년 2월 28일까지 ‘사막의 폭풍 작전’을 벌이면서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을 누르고 군사적으로 압승한 것이 인기의 바탕이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부시는 34개국으로 이뤄진 다국적 연합군을 구성해 쿠웨이트 탈환과 이라크군 축출에 나섰다. 전쟁 목표를 달성하자 신속하게 진군을 멈추고 전쟁을 종결해 국민적 지지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일본 국빈만찬장에서 벌어진 이 사건으로 건강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하면서 부시의 정치적인 인기는 급속히 식어갔다. 물론 경제 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아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민심이 떠난 것이 최대의 문제라는 평가도 있다. 클린턴의 선거운동 본부가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캠페인 문구를 들고 나온 것도 한몫했다.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지만 국빈 만찬에 나온 음식이 정치적인 비수가 된 적도 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64, 재임 2012년 5월~2017년 5월)이 그런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2014년 2월 미국을 국빈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57, 재임 2009 2월~2017 2월)과 정상회담을 했다. 프랑스 대통령이 1996년 이후 18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한 것이니 만큼 백악관은 융숭하게 대접했다.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오바마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에서 생산된 고급 음식 재료인 캐비아(철갑상어 알)를 내놓았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캐비아가 나온 순간 올랑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속으로는 질겁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올랑드의 사회당 정권은 프랑스에서 ‘캐비어 좌파’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캐비어 좌파는 값비싼 음식인 캐비어나 먹으면서 사회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주로 정치적 태도는 진보적이면서도 돈을 벌거나 소비생활을 하는 방식은 부르주아적인 인물을 비꼴 때 쓴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인물도 포함된다. 재산이 많거나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돈을 벌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좌파를 지지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기도 한다. ‘샴페인 좌파’ ‘리무진 좌파’ 등으로도 부른다. ‘살롱 좌파’나 ‘세미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용어와 같은 갈래다. 한국의 ‘강남 좌파’ ‘패션 좌파’라는 용어와 일맥상통한다.
 ‘캐비어 좌파’로 비난받던 올랑드에게 캐비어 요리 대접
4월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건배하고 있다. 트럼프는 국빈 만찬에서 약간의 프랑스식을 가미한 최고의 미국식 저녁 메뉴를 선보였다. / 사진:연합뉴스
사실 올랑드 정권은 출범 이후 ‘캐비어 좌파’라는 비아냥에 시달려왔다. 올랑드 정권은 2013년 4월 사상 처음으로 각료 38명의 재산을 공개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 직전에 제롬 카위작 예산장관이 탈세를 위해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보유한 사실이 드러나 사퇴하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각료 재산공개를 하게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프랑스의 정치 엘리트들은 유럽에서 가장 덜 엄격한 재산공개 체제를 즐겨왔다. 그런 상황에서 여론 무마용으로 이례적인 각료공개를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사회당 정권 각료들의 재신이 공개되면서 여론은 오히려 더욱 차가워졌다. 사회주의 정권의 각료들이 일반 서민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보유한 부자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공개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인물은 390만 유로의 부동산, 120만 유로의 주식, 기타 자산 63만 유로 등 모두 573만 유로(약 83억5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로랑 파비위스 외무장관이었다. 그는 거기에다 미술품 딜러를 하던 선친으로부터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예술작품도 상당수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재산은 더 많다는 이야기다. 미셸 들로네 노인장관이 560만 유로(약 81억6000만원)의 재산으로 뒤를 이었다. 장마르크 애로 총리도 155만 유로(약 22억6000만원)를 신고해 상위권에 들었다. 올랑드는 대통령 취임 당시 117만 유로의 재산을 신고했다. 여기에는 프랑스 남부 리비에라에 있는 자택과 칸에 있는 아파트 두 채의 지분 80만 유로도 포함됐다. 올랑드와 연고가 적은 휴양지의 부동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일 ‘캐비어 좌파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던 올랑드가 미국을 국빈 방문해 백악관에서 국빈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캐비어가 식탁에 올랐으나 기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올랑드는 낮은 지지율로 고심하고 있었다. 그해 2월 미국을 방문할 당시 지지율이 20%에 머물렀을 정도였다. 하지만 미국을 다녀온 후 그해 4월 조사에선 18%로 떨어졌으며 그해 11월 12%까지 추락했다. 백악관 국빈만찬에 등장한 캐비어는 두고두고 올랑드를 놀리는 소재로 이용됐다. 결국 올랑드는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이 됐다. 2016년 11월에는 기록적으로 낮은 4%의 지지율로 차기 대선 출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4% 대통령’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으로 불렸다. 물론 경제 실정과 긴축 재정으로 우파와 좌파 모두를 실망시킨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캐비어는 그에 대한 정치적인 비아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동력을 제공한 것은 맞아 보인다.

음식에 대한 통제로 정상회담을 유리하게 이끈 사례도 있다. 영국 정치 분석가 마리아 발레즈 드 벌리너는 BBC방송에 “음식은 엄청나게 강력한 도구”라며 “음식에 대한 접근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일이 벌어지는 공간을 지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1979년 마거릿 대처((1925~2013년, 재임 1979년 5월~1990년 11월) 영국 총리의 일화가 입증해준다. 당시 유럽이사회(유럽정상회의)에서 대처를 만나 회담을 하던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92, 재임 1974년 8월~1981년 5월) 대통령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회담을 일시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처는 결론을 내기 전에 회담을 중단할 수 없다며 저녁 식사용 휴식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날 저녁 지스카르데스탱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허기지고 지쳐갔다. 그는 대처 앞에 강하게 나설 수가 없었다. 회담이 계속되면서 대처는 자신에 제안과 관련해 지스카르데스탱의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란 핵협상 때 함께 식사한 후 협상 급물살
음식이 협상의 윤활유 구실을 한 사례도 있다. 멘델슨포먼은 “외교 무대에서 음식은 장애물을 부수는 능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음식은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적수를 인간적으로 만들어 대화와 협상이 쉽게 도와주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2013년 10월 15일 회담을 시작해 2015년 7월 14일 타결까지 21개월 간 지루하게 이뤄진 이란 핵협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시사잡지 뉴요커에 따르면 2015년 협상이 막바지에 이를 당시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감정이 격해진 양측이 서로 심각하게 대립하면서 협상은 5차례나 중단 위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던 중 극적인 돌파구가 생겼다. 매개 역할을 한 것은 음식이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이란 측과 서방측은 늘 따로 식사를 했다. 그러던 중 미국 독립 기념일인 7월 4일이 되자 이란인들은 잠시 휴회하고 식사를 할 때 서방 측도 초청해 함께 이란 빵을 먹었다. 아마 라바쉬라는 이란의 얇은 빵에 고기나 채소를 싸먹는 식사였을 것이다. 식사 도중에는 협상과 관련한 말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이전까지 상호불신의 벽이 높았던 이란과 미국의 협상가들은 서로 상대방을 달리 보게 됐다. 이전까지 서로 상대방을 협상가로만 여겼지만 이를 계기로 서로 인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후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불과 10일 만에 최종 타결에 이르렀다. 양쪽 협상 전문가들은 당시 양측이 함께 식사를 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된 것으로 여긴다. 뭔가를 함께 먹는 경험이 서로 친밀한 관계를 이끌고 협상에 윤활유로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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