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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화산의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

슈퍼화산의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

7만4000년 전 거대한 폭발로 수년 동안 혹독한 겨울 지속됐지만 아프리카 남단의 초기 인류는 멸종하지 않고 견뎌냈다는 단서 발견돼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의 아궁 화산이 분화를 시작하면서 폭발이 임박했다는 예측이 나와 주민들이 대피했다. / 사진:AP-NEWSIS
폭발할 때 분출하는 마그마와 화산재가 1000㎦ 이상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화산을 ‘슈퍼화산(supervolcano)’이라고 부른다. 슈퍼화산이 분화하면 그처럼 많은 양의 마그마와 화산재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 잔해는 대기에 오래 머물며 지구로 내려오는 햇빛을 가로막는다. 그러면 지구 전체가 긴 겨울철에 들어간다. 흔히 말하는 ‘핵겨울’(핵전쟁이 일어나면 도시와 삼림에서 대화재가 발생하면서 대량의 재와 먼지가 지구 고층대기까지 뒤덮어 햇볕을 흡수하고 이 때문에 지면에 도달하는 일사량이 줄어 기온이 크게 내려가는 현상을 일컫는다)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문제가 과학계에서도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우리가 아는 한 마지막 슈퍼화산 폭발은 약 2만6000년 전 뉴질랜드에서 발생했다. 한 슈퍼화산 현장에서 약 400m 두께의 화산재층이 발견됐지만 화산 폭발과 그 이후에 인간이 어떻게 됐는지에 관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유리 형태의 작은 파편이 그 잃어버린 고리를 채워줄지 모른다. 지난 3월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초기 인류 중 최소한 일부 그룹이 7만4000년 전 발생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쪽에 위치한 토바 화산의 거대한 폭발(지난 250만 년 동안 발생한 화산 폭발 중 최대 규모)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입증해 줄 수 있는 새 증거를 제시했다.

토바 화산은 수천 ㎦의 화산재와 마그마를 뿜어냈다. 그때 만들어진 칼데라(분화구로 만들어진 거대한 호수)는 1815년 격렬하게 폭발한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분화구보다 훨씬 크다. 탐보라 화산 폭발만해도 그해 여름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그에 따라 유럽 대륙까지 오랫동안 회색 연무에 뒤덮였다(영국 소설가 메리 셸리는 그런 암울한 하늘에 착안해 ‘프랑켄슈타인’을 썼다고 한다). 또 유라시아와 북미에서는 끔찍한 흉작이 발생해 기근과 대량 이주를 야기했다.
사진:PHYS.ORG
탐보라 화산 폭발이 그 정도 위력을 가졌다면 지질학자들은 그보다 10배가 규모가 큰 토바 화산의 폭발은 인근 지역의 완전한 초토화만이 아니라 수년 동안 지구 기온을 크게 낮췄을 수 있다고 본다(지구 전역에 걸쳐 기온이 16℃ 정도 하강하면서 빙하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보다도 더 추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기후조건이 악화되면 식량이 줄어들고 전염병이 창궐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류는 기근과 질병이라는 두 가지 재앙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멸종하고 특별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에 있던 인류만 살아남았을 것이다.

토바 화산은 초기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이동하기 시작한 시점에 폭발했다. 그 화산재가 아프리카 대륙까지 도달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과학자들은 초기 인류에게 그 경험이 어땠을지 오랫동안 궁금하게 생각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산재는 아마도 눈이 흩날리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하늘은 낮에는 회색빛을 띠고, 밤에는 붉게 빛났을 것이다. 꽃은 피지 않고, 나무들은 죽어갔을 것이다. 영양 같은 큰 포유동물은 마르고 굶어 이것들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 동물이나 인간 사냥꾼도 굶주리게 됐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해가 지나면서 이같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나날이 계속 반복됐을 것이다. 미국 네바다대학(라스베이거스 캠퍼스) 지질학자로 이 논문의 공동저자인 유진 스미스 교수는 “초기 인류가 이전에 본 적 없는 희한한 현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일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됐다. 작은 유리 파편이다. 급속히 냉각된 마그마에서 만들어진 조각이다. 화산이 폭발할 때 그런 작은 유리 파편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런 파편을 찾기는 한 삽의 모래 속에서 특정한 알갱이를 골라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스미스 교수는 “모래 알갱이 1만 개에 그런 파편 하나가 들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것도 현미경을 사용해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작다.

토바 화산에서 약 9000㎞ 떨어진 남아공 해변가 피너클 포인트의 구석기 시대 암혈 주거지 발굴 현장에서 바로 그런 파편이 발견됐다. 스미스 교수팀은 그 파편이 토바 화산이 폭발했을 때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그 파편이 바람을 타고 인도네시아에서 9000㎞를 날아와 남아공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아주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스미스 교수는 그 파편이 토바 화산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같은 화산에서도 그런 유리 파편엔 폭발할 때마다 각각 다른 형태의 화학적 ‘지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확한 측정 도구를 사용해 그 파편이 발견된 곳의 각종 유물을 추적한 결과 지질학자들은 피너클 포인트에 토바 화산이 폭발하기 전과 폭발 당시, 또 그 후에도 인류가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스미스 교수팀은 토바 화산 폭발 후의 춥고 어두운 조건에서 전반적으로 식량이 부족했겠지만 피너클 포인트는 그런 부족 현상을 심하게 겪지 않았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들은 그곳이 해변에 위치했기 때문에 해산물이 풍부한 것이 생존의 비결이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스미스 교수는 “그들은 멸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아주 힘들었겠지만 그런 상황을 상당히 잘 견뎌내고 살아남았다.”

- 메간 바텔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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