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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전 일본 대장성 차관] “美 긴축으로 중남미 위기 발생할 수도”

[‘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전 일본 대장성 차관] “美 긴축으로 중남미 위기 발생할 수도”

한국은 저성장 아닌 경제 성숙기 접어들어…아시아 신흥국 7%대 성장 이어갈 것
1990년대 세계 외환시장을 주무르는 3대 인물로 꼽혔던 사카기바라 전 일본 대장성 차관은 미국의 긴축 기조로 중남미 신흥국의 핫머니가 이탈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은 7% 안팎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1995년 일본 경제는 충격에 빠졌다. 엔화 가치가 급격히 올라 4월 엔화 환율은 달러당 80.63엔으로 떨어졌다. 일본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곤두박질쳤고 수출 기업의 주가 역시 폭락했다. 1991년 버블 붕괴와 1995년 1월 고베 대지진으로 시름하던 일본 경제는 그야말로 대공황을 맞았다. 이때 대장성(현 재무성) 국제금융국장이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77)가 나서 엔고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했다. 주요 7개국(G7)을 오가며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를 억제하는 내용의 ‘역플라자합의’를 이끌어내는 한편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던 로버트 루빈을 설득해 엔화 가치를 달러당 100엔으로 끌어내렸다. 사카키바라는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루빈 전 장관과 더불어 세계 외환시장을 주무르는 3대 인물로 꼽혔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사카키바라에게 ‘미스터 엔(円)’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세계경제연구원(원장 송경진) 강연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사카기바라 교수를 5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2010년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의 특별교수로 초빙돼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신흥국에 몰린 핫머니가 대거 이탈할 수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보호무역 전쟁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경제에 엔화 가치가 높은 것보다 낮은 편이 더 좋은가.


“양적완화를 통한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 경제에 긍정적이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은 증가한다. 수출이 늘면 기업 주가도 오른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엔화 약세는 어디까지나 양적완화 정책의 결과 중 하나일 뿐, 통화정책의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베노믹스가 최근 일본 경제 회복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나.


“아베노믹스는 양적완화에 중심을 뒀다. 이를 통해 수출 증가 등의 효과가 있었으니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90년부터 30년 가까이 연 1% 안팎에 머물고 있다. 2017회계연도에는 1.5% 성장했으니 일단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경제적 성숙 국가다. 1% 전후의 성장률이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1인당 목표 GDP인 4만~5만 달러도 높은 수준이다.”



일본의 성장률은 회복됐지만 여전히 가계소득은 정체돼 있지 않나.


“일본 근로자의 평균 급여가 하락하는 것은 고용의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과거 비정규직 근로자가 많지 않았지만 현재 40%에 달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한 평균 급여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일본의 정규직 사원의 급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비정규직·파트타임·파견직 근로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앞으로 호경기를 이어갈까.


“1% 안팎의 성장률만 유지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인구 감소는 큰 문제다. 일본의 평균 수명은 세계에서 가장 긴 데 비해 출산율은 최저 수준이다. 다만 아직 비관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엔화 약세는 통화정책의 부산물, 아베노믹스 성공적”


미 연준의 긴축 기조가 신흥국 자금 이탈로 이어질 수 있나.


“지금은 미국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시기다. 신흥국 자금이 빠진다는 얘기다. 최근 아르헨티나가 문제가 되고 있듯 신흥국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로 남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이에 비해 아시아 국가들은 펀더멘털이 비교적 튼튼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일각의 의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이 한국·일본 등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환율조작국 공세가 계속될까.


“미국의 환율조작 공격은 불합리하다. 일본의 경우 엔화 가치 하락은 통화정책의 결과일 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양적완화를 펼쳤기 때문에 통화 가치 하락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위선적인 공격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세계적으로 확산될까.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펼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을 상대로 한 일시적인 정책이라고 본다. 보호무역주의가 세계로 확산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무난히 성사될 것이다. TPP에는 현재 11개국이 참여했는데 미국도 뒤늦게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엔·달러 환율 전망은.


“완만한 엔화 가치 강세(엔 환율 하락)가 나타날 것이다. 현재 미 달러화 가치가 고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또 최근 들어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데, 이 경우 안전 자산인 엔화 표시 자산에 돈이 몰린다. 물론 급속한 변화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현재 달러당 107~110엔인 엔화 가치는 천천히 100엔을 향해 갈 것이다.”



중국 경제가 고성장을 멈췄는데,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중국은 고도성장기를 마치고 안정성장기로 접어들었다. 10%대였던 경제성장률이 6%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계 경제에 부정적일 수는 있지만 그 여파는 크지 않으며, 특히 한국·일본 등 주변국 경제에도 심대한 타격은 없을 것이다. 과거 10%대로 성장할 때보다 경제 규모가 커졌으니 6.5%의 성장률은 여전히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미 보호무역주의 정책 일시적, 자유무역 확대될 것”


한국은 가계부채 증가로 고민하고 있는데 해결책은 없나.


“부채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부채 증가를 일정 수준에서 잡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어느 시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출구를 찾아야 한다. 일단 미국은 양적완화를 중단했고, 유럽도 완화적 통화정책을 멈추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양적완화를 시행 중이다.”



한국 재벌의 경제적 역할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일본의 경우 태평양 전쟁 전에는 재벌의 힘이 강했지만, 전후 민주화 과정에서 모두 해체됐다. 재벌 체제가 한국 경제의 성장 원동력 중 하나였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땅콩 회항’ 등의 사건처럼 한국 내에서 재벌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인다면 기업 경영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재벌에 의한 기업 지배 고착화는 좋지 않다고 본다.”



한국 경제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데 이를 극복할 방안은.


“한국·일본 등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 모두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숙해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성숙한 경제는 내수를 키우기 어려운데, 결국 해외 진출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해외의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에서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며, 그에 맞춰 기업도 세계화 돼야 한다.”



중국·인도·동남아시아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 성장세가 순조롭고 진출의 기회가 많아서다. 이들 나라는 대체로 7% 정도의 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자원이 많고 내수시장도 크다.

2050년 세계에서 GDP가 가장 큰 나라는 중국, 2위는 인도가 될 것이며, 인도네시아도 4~5위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체제 붕괴 위험 느낀 북한, 정치 체제 유지하며 개방할 듯”


북한의 개방 노선이 주변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북한도 현재 경제시스템으로는 체제 유지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실제 한국·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차원에서 개방 정책을 취하는 것으로 본다.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키우는 중국·베트남식 성장 모델을 택할 것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낮아지고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측면에서 아시아 전체로도 좋은 일이다.”



‘일본에 고령화가 올 줄 알았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고령화 대책은 없는 것인가.


“젊은층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경제 전체적으로 좋은 일이 아니다. 정부 정책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 가장 성공적인 모델은 프랑스다. 출산율이 1.6명으로 떨어졌는데, 20~30년에 걸쳐 최근 2명을 회복했다. 3명 이상의 자녀를 낳으면 세금을 면제해주고, 출산·육아 비용을 지원해 주는 등의 복지정책을 미테랑 대통령 때부터 시행했다. 일본의 경우 복지정책이 연금·의료 등 고령자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프랑스는 교육·출산·육아 지원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프랑스 정부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4차 산업혁명이 세계 경제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까.


“여러 산업 중에서 정보기술(IT) 산업이 성장하는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다. 정보의 방향과 취득 방식이 크게 달라지겠지만 세계 경제를 바꾸고 뒤흔들 힘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세계 경제의 앞날을 예측한다면.


“선진국은 1% 안팎의 완만한 성장률 속에 인플레이션도 안정된 상태가 이어질 것이다. 중국·인도, 동남아시아·중동 등 신흥국은 성장세를 이어가며 세계 경제 성장의 중심이 될 것이다. 아시아의 성장세가 서쪽(유럽)으로 퍼지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유럽의 경우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부채·재정 문제가 상시화 될 것이며, 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 체제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유럽 경제는 북유럽과 독일이 이끌 것이다.”

※ 사카키바라 교수는 - 1941년 가나가와현 출신으로 도쿄대 경제학부를 거쳐 미시건대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1990년대 중후반 일본 대장성 재무관을 역임한 정통 경제관료다. 특히 1995년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달러당 80엔 수준까지 급등했던 엔화 가치를 약세로 뒤집는 데 성공해 ‘미스터 엔(Mr. Ye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9년 관직에서 물러나 학계에서 글로벌 경제 연구와 경제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로 외환시장과 중국·인도 등 신흥국 경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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