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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건 ‘쿠바 혁명 2.0’

시동 건 ‘쿠바 혁명 2.0’

디아스카넬 신임 국가평의회 의장이 라울 카스트로의 경제개혁을 완성할 수 있을까
미겔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개혁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정치다. / 사진:AP-NEWSIS
쿠바의 국가수반인 새 국가평의회 의장에 ‘혁명 후 세대’인 미겔 디아스카넬(57)이 공식 선출됐다. 쿠바 의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권력회는 지난 4월 19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단독 후보로 추천된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을 인준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카스트로 집안이 아니며 ‘혁명 후 세대’가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된 것은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 이후 59년 만의 일이다.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은 쿠바 혁명 이듬해인 1960년 4월 20일 태어났고 개혁·개방에 긍정적이며 실용주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33세 때인 1993년 공산당에 가입해 2009년 고등교육부 장관을 역임하고 2013년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에 임명됐다.

‘정치적 오른팔’인 디아스카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공산당 총서기직만 갖게 된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은 “때가 되면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이 공산당 총서기직도 물려받을 수 있다”며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은 최대한 5년 임기를 두 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은 2006년 지병으로 47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난 형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뒤 지난 12년간 쿠바를 이끌어왔다. 그는 통치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오는 2021년까지 공산당 총서기직을 맡기 때문에 퇴진 이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은 취임 연설에서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 형제가 이끌어온 사회주의 혁명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민이 부여한 명령은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쿠바 혁명의 연속성을 지키라는 것이다. 쿠바의 지도층은 인민에 대한 헌신을 1초라도 잊을 수 없다.”
쿠바의 일반인은 민간 부문의 급속한 성장이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 사진:AP-NEWSIS
특히 2011년 옛 소련식 중앙계획 경제를 대체하기 위해 시작한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의 미완성 ‘경제 업데이트’가 그 핵심이다. ‘쿠바식 시장자본주의’의 도입을 말한다. 만약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이 성공한다면 그의 개혁은 피델 카스트로가 60년 전 정권을 잡은 이래 쿠바에 가장 심대한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라울 카스트로는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의 개혁이 “번창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주의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은 쿠바 통치권을 넘겨받으면서 강한 정치 역풍을 만났다. 그는 완강히 저항하는 관료 집단을 상대로 경제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혁명 1세대로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도 하지 못한 일이다. 또 그는 분열된 정치 엘리트층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들은 자칫하면 통제불능 상태에 빠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경제개혁을 어느 정도로, 얼마나 빨리 밀어붙여야 하는지를 두고 분열상을 보인다. 아울러 생활수준 개선과 정치 참여를 갈수록 더 큰 목소리로 요구하는 국민에게도 구체적인 성과를 제시해야 한다.

정권의 비전 계승이 이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동안 경제개혁의 진전은 아주 느렸다. 2011년 쿠바 공산당은 313개의 구체적인 경제개혁 항목을 승인했다. 2016년까지 목표를 이룬 것은 그중 4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개혁 계획은 국영업체들이 시장 가격에 따라야 하고 효율적인 경영으로 수익을 올려야 하며, 민간 부문은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의 세입을 올릴 수 있도록 활성화돼야 하며, 외국인 직접 투자로 성장에 필요한 자본이 수혈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개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기득권·특전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관료들과 시장경제와 사유재산, 외국인 투자를 재도입하면 여태껏 자신들이 싸웠던 혁명 가치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우려하는 공산당 원로 지도부의 저항 때문이다.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은 그들의 태도를 두고 “수십 년 동안 지속된 가부장주의에 기초한 구식 사고방식”이라고 비난했다.

외국인 투자자도 나서기를 꺼렸다. 로드리고 말미에르카 대외무역·투자 장관은 쿠바에 외국인 직접투자를 연간 25억 달러 유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쿠바가 매력적인 양보안을 담은 새로운 투자법을 제정한 이래 3년 동안 외국인 투자 유치는 34억 달러에 그쳤다. 쿠바의 불투명하고 무심한 관료주의 때문에 가장 겁없는 외국 기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쿠바에 진출하려 들지 않는다.

게다가 대다수 국영 기업은 원가회계의 개념이 없다. 그들에게 그런 원가계산 시스템을 도입하고 수익을 내도록 요구하지만 일의 진척은 극히 느리다. 지금도 국가 예산의 약 20%는 경영난에 허덕이는 국영 기업의 적자 보전에 사용된다. 그러나 그런 기업을 대규모로 폐쇄하는 것은 엄청난 실업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정부로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쿠바 정부는 지금까지 민간기업 58만 개에 사업 면허장을 발급했다. 2010년 이래 5배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농업 부문은 거의 전부 개인 농장과 협동조합으로 구성된다. 전체적으로 민간부문은 현재 쿠바 인력의 29%를 고용한다.

그러나 일부 쿠바인의 눈에 민간기업의 성공은 도를 넘었다. 민간기업 다수는 비현실적인 국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법을 우회한다. 도매시장이 없어 암시장에서 재료와 부품을 구입하고, 세율이 터무니없이 높아 세금을 포탈하며, 허가되는 사업 범위가 너무 좁아 불법이 횡행한다.
전임자 라울 카스트로(오른쪽)는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왼쪽)의 개혁이 “번창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주의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AP-NEWSIS
공산당 내부의 보수파는 이런 상황을 초기 자본주의의 고삐 풀린 상태로 본다. 또 일반인은 민간 부문의 급속한 성장이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10여 년 전과 달리 지금은 최신 유행 패션을 즐기고 고급 식당을 찾으며 과거 외국인 전용이던 관광호텔을 이용하는 쿠바인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다른 한편으로 대다수 쿠바인은 국가가 지급하는 쥐꼬리만한 임금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간다.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은 시장개혁이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개혁에 따른 변화가 생산성을 높이고 성장을 자극하며 모든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여줌으로써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누그러뜨려지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관료 조직이 변화에 강하게 저항했고, 성장 실적이 미미해 개혁의 정치적 당위성이 손상됐다. 정부에 자문을 제공하는 한 쿠바 경제학자에 따르면 쿠바 지도부는 국가 경제를 견실하게 만들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잘 알지만 정치적 위험 부담이 너무 커 적극 나서지 못한다.

쿠바가 두 가지 통화를 병용하는 이유도 그로써 설명된다. 하나는 쿠바 페소, 다른 하나는 쿠바 태환 페소(페소 콘베르티블레, 미국 달러화와 가치가 같다)다. 환율도 매우 다양하다. 해외 거주 쿠바인의 송금을 장려하기 위해 1990년대 도입한 이런 병용 통화제도는 현실적인 원가계산을 거의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통화 통일은 아주 복잡한 과정이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경제에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늘 부족하고 국제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쿠바는 자력으로 통화를 통일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가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의 시급한 과제지만 사실은 정치 문제가 더 크다. 쿠바에서 실시된 독립적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제와 관련한 국민의 불만이 만연하며, 정부의 경제 개선 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2016년 시카고대학 산하 NORC(미국여론조사센터의 후신)의 조사에서 쿠바인 70%는 국가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경제를 꼽았고, 절반은 불평등이 너무 커졌다고 생각했다. 1960~70년대 혁명 황금기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로 갈수록 불만은 더 크다.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은 이처럼 위험한 길에서 국가를 이끌어야 하는 동시에 내부의 반발도 경계해야 한다. 쿠바 최고 지도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지만 경제개혁만이 아니라 인터넷의 보편화에 따라 커지는 민중의 불만 표현에 대응하는 방식을 두고도 분열상을 보인다는 조짐이 있다.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은 혁명 1세대이자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으로서 갖는 권위 때문에 이런 불협화음에도 별탈 없이 엘리트층의 결집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은 그런 이점을 누릴 수 없다.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은 지난 30년 동안 정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노련한 정치인이지만 그가 공산당 제1서기를 지낸 2개 주를 제외하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형편은 아니다.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이 여전히 공산당 지도자를 맡고 있으며 그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은 꼭두각시는 아니다. 그는 철저히 계산된 권력 이양을 통해 명실상부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또 그에겐 독자적으로 헤쳐나가야 할 어려운 과제가 있다.

- 윌리엄 M. 레오그란데



※ [필자는 미국 아메리칸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쿠바 전문가다. 그는 2015년 미국 국가안보문서보관소의 피터 콘블러 연구원과 함께 ‘쿠바와의 비밀 채널: 미국과 쿠바의 협상 비사’(Back Channel to Cuba: The Hidden History of Negotiations Between Washington and Havana)’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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