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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파의 화려한 귀환

매파의 화려한 귀환

미국의 신임 안보·외교 라인에 포진한 강경 보수주의자들이 이란·시리아와 긴장 고조시켜
지나 해스펠 CIA 국장 내정자는 테러 용의자들의 ‘물고문’을 지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 사진:AP-NEWSIS
2016년 4월 말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는 후보 지명이 유력시되는 상황에서 워싱턴의 한 연회장에 지도층 인사들을 모아놓고 그의 표현대로 “미국 외교정책에서 녹을 벗겨내기 위한” 새로운 제안을 발표했다.

늘어선 성조기를 배경으로 그는 수십 년에 걸친 공화당의 정통 외교정책,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국가건설 정책을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원거리 전쟁을 피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일관된 외교정책”을 채택하겠다고 다짐했다. “경력은 화려하지만 실패한 정책과 지속적인 패전의 오랜 역사에 대한 책임 외에는 자랑할 게 없는 인물로 내 주변을 둘러싸기보다 실용적인 접근법과 발상을 가진 재능 있는 전문가들을 참모로 기용하겠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인물을 물색해야 할 때다.”

그러나 이제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시리아와 이란을 상대로 각각의 고조되는 긴장에 직면했다. 그러면서 지금 그는 후보 시절 그토록 거세게 비난했던 ‘구시대 인물’들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마이크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으로, 지나 해스펠을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지명했다.

볼턴 신임 외교안보보좌관은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과 군축담당 차관,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등을 역임했다. 부시 정부 시절의 외교관으로 이란과 북한을 공습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특히 방송 출연이나 공개강연에서 북한의 위협을 부각하면서 대북 군사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한 초강경파다.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은 공화당 내 풀뿌리 보수주의 운동 ‘티파티’에 소속된 하원의원 출신으로 이라크전을 적극 지지했다.

비판자들은 폼페이오 신임 장관이 반이슬람 단체와 가깝다는 점에도 우려를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반이슬람 목소리가 예전보다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폼페이오는 그전부터 반이슬람 단체와 가까웠다. CIA에 33년간 근무한 해스펠 내정자는 해외비밀공작 전문가로 지난해 2월 CIA 사상 첫 여성 부국장으로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지만 2002년 태국에서 ‘고양이 눈’이라는 암호명의 비밀감옥을 운영했으며 9·11 직후엔 알카에다 소속 테러 용의자들을 상대로 한 ‘물고문’(워터보딩)을 지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안보·외교 라인 인사는 보수주의 매파들의 극적인 제2막처럼 보인다. 양당 의원들(특히 민주당)은 그들의 재 등장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 시절을 비난하면서 반드시 피하겠다고 약속한 실수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브라이언 샤츠 상원의원(민주당·하와이)은 뉴스위크에 “옛 밴드 멤버들의 재결합”이라며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국가의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초강경팀이라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존 볼턴 신임 외교안보보좌관은 이란과 북한을 공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AP-NEWSIS
이번 인사는 미국 외교정책의 중대한 시점에 이뤄졌다. 오는 6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머지않아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두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싱가포르에서 만나 담판 지을 계획이다. 또 지난 5월 8일엔 2015년 체결한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고 경제제재를 부활하기로 결정했다. 이란 핵협정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5년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독일 6개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된 것으로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6개국은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의 핵협정은 이란의 비핵화나 테러리즘 지원 활동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며 미국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몇몇 의원들은 이번에 발탁된 새로운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과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일 정보보고서 읽기도 거부한다. 대신 그는 선별된 이슈에 관해 참모들로부터 구두 보고를 받는 데 의존한다.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리처드 블루멘털(민주당·코네티컷)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국방 정책의 주요 결정 중 다수를 외교와 국방 사이의 균형과 관련해 왜곡된 견해를 가진 소수의 인사에게 위임하는 듯 보이기 때문에 미래가 상당히 걱정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 다수와 일부 공화당 인사가 가장 우려하는 인물은 볼턴 신임 보좌관이다. 그는 이번에 새로 지명된 인사 중 가장 매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보수 방송 폭스 뉴스에서 거침없는 논평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샀으며, 지난 2월 국가안보보좌관직을 수락하기 전에 북한 선제 공격을 주장했다. 그러다가 최근 그는 다른 대북한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가 부시 정부에서 리비아를 상대로 사용한 것과 비슷한 방법이다. 볼턴이 주장하는 리비아식 해법은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 후 보상하는 방식이다. 카다피는 2003년 핵포기에 합의하고 미국 테네시주로 모든 핵 장비를 보냈다. 이후 미국은 원유 수출 제재를 해제하고 국교 정상화를 해줬다.

그러나 몇몇 분석가들은 북핵 해결 방식을 리비아식과 비교하는 그런 발상이 예정된 북미 회담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비아의 경우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이 핵프로그램을 폐기한 지 8년 후 미국의 군사공격을 받았다. 민중 봉기(‘재스민 혁명’)에서 카다피의 민간인 학살을 막기 위한 공격이었다. 카다피는 권좌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반군에 의해 살해됐다. 북한 관리들은 그 사건을 두고 핵무장을 추진하는 다른 나라들에 주는 “엄중한 교훈”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리비이식 해법에 거부감이 많다는 뜻이다.

이란 문제와 관련해선 비판자들은 충직한 보수주의자인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협정 파기 결정을 부채질했다고 본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이란이 핵협정을 협상하는 동안 핵무기 프로그램을 숨겨뒀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정보기관 모사드가 이란에서 훔쳐온 다량의 문건을 바탕으로 그렇게 주장했다). 다수의 전·현직 정보관리들이 그 문건으로 이란이 협정을 위반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은 이라크전을 적극 지지했다. / 사진:AP-NEWSIS
해스펠 CIA 국장 내정자는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부시 정부 시절의 물고문 논란과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 그녀는 “CIA를 강압적 심문 관행으로 되돌릴 생각이 없다”며 일부 의원들을 안심시켰다고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 뉴스가 보도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그녀가 테러 용의자들을 물고문할 것을 촉구한 대통령을 모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 새로운 팀이 더욱 공격적인 외교정책으로 기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블루멘털 의원은 뉴스위크에 “이번에 외교·안보 라인 요직에 지명된 인물들은 군사력 사용을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우선 옵션으로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 최악의 본능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아주 위험한 외교정책 추세다.”

랜드 폴 상원의원(공화당·켄터키)도 비슷한 우려를 제기하며 한동안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명에 반대했다. 그는 CNN 방송에 출연해 “전쟁을 열망하는 사람이 국무부 수장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으로부터 지금은 이라크전이 실수였다고 생각한다는 확답을 받았다며 폼페이오 장관의 지명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번 인사가 정책의 변화를 시사하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국가안보팀은 대통령의 보좌관 역할을 할 뿐이며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책의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한다”고 밝혔다. 볼턴 신임 보좌관도 자신의 임무는 대통령에 대한 “정직한 중개인”이 되는 것이라면서 “대통령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을 대통령이 내리도록 모든 옵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신은 백악관과 대통령 결정을 이행하는 기관 사이에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무튼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그가 2년 전 약속한 “일관된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명분 아래 고립주의와 개입주의 사이를 오갔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응징하기 위한 두 번째 공습을 발표하며 “미국은 시리아 정권이 금지된 화학무기 사용을 중단할 때까지 이런 대응을 지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로 몇 분 뒤 그는 미국의 중동 개입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고쳐 말했다. “미국은 파트너와 친구가 될 뿐이며, 특정 국가의 운명은 그 나라 국민의 손에 달렸다.”

그런 변덕은 트럼프 정부 내의 매파와 좀 더 온건한 인물들(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조셉 던포드 합참의장 등) 사이에 불화를 부추길 수 있다. 클레어 맥캐스킬 상원의원(미주리)을 포함한 일부 민주당 인사는 특히 매티스 장관이 새로운 매파에 맞서는 보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공화당 의원 대다수는 이들 매파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밥 코커 의원(공화당·테네시)은 뉴스위크에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약간 더 현실적이고 부드러워질 것으로 보인다”며 “아무튼 좋은 정책은 다양한 견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샤츠 같은 다른 민주당 의원들은 좀 더 비관적으로 내다본다. “이제 우리가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 맷 라슬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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