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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젊은이도 미국 이민이 꿈?

이스라엘 젊은이도 미국 이민이 꿈?

이스라엘은 IT 창업 천국으로 알려졌지만 비싼 물가, 낮은 임금, 정치 불안으로 두뇌유출 가속화
사진:AP-NEWSIS
지난 4월 이스라엘 중부에 사는 부모가 건국 기념일을 축하할 준비를 했을 때 라헬 호할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모든 이스라엘인의 꿈’을 실현할 준비를 마쳤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미국 시민이 되는 의식에 참석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이 최소 100만 명에 이른다. 인구 880만 명인 이스라엘이 국가 개조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이스라엘인이 호할처럼 해외로 나가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질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5월 14일로 건국 70주년을 맞았다(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한다고 발표한 후 미국은 이날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이스라엘 국경일을 축하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지지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지금 국가의 존립이 위협 받는 실존적 위기에 처했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나 팔레스타인인의 봉기와는 관련 없는 위기다. 비싼 물가와 생활비, 낮은 임금, 정치적·인구적 불안 추세에 낙담한 이스라엘인 중 다수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나라를 떠나고 있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 젊은 이스라엘인 대다수가 이주하는 미국 도시도 물가가 비싸긴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적어도 미국에선 더 나은 삶을 얻을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건국 70주년을 맞았지만 두뇌유출로 존립이 위협 받는 실존적 위기에 처했다. / 사진:AP-NEWSIS
분석가들은 데이터가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06~2016년 이스라엘인 8만7000명 이상이 미국 시민이 되거나 영주권을 얻었다. 1995~2005년의 6만6000명에서 상당히 증가한 수치다. 게다가 여기엔 합법적인 경로를 밟아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받는 이스라엘인만 포함됐다(많은 이스라엘인이 일시 체류를 허용하는 관광·학생·취업 비자를 받아 미국에 도착한 뒤 눌러앉는다고 알려졌다). 미국 외에 유럽, 캐나다 등 다른 곳으로 이주한 이스라엘인도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이스라엘 이민국이 밝혔다.

이스라엘의 두뇌유출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의 뛰어난 학자와 연구자 다수가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임금이 훨씬 높고 명문대학에 일자리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의 경제학자 단 벤-다비드 교수에 따르면 이스라엘 과학자의 해외 이주율이 서방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반 젊은이도 그 대열에 합류하는 추세다. 과거 해외로 이주한 이스라엘인 중 다수는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 강하지만 요즘의 이주자는 이스라엘에선 아예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스타트업 천국’으로 알려졌다.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일인당 기술 신생업체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일반인은 그런 번창하는 부문과 거의 관련 없다.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첨단기술 부문에 종사하는 이스라엘인은 인구의 8%에 불과하다. 그들의 월 소득은 국가 평균인 2765달러(세전 액수, 약 300만원)의 7배에 이른다.
지난 5월 14일 미국은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이스라엘 지지를 표명했다. / 사진:XINHUA-NEWSIS
이스라엘은 서방 세계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고, 소득 불균등이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다. 다른 한편으로 생활비는 가장 비싼 편에 든다. 텔아비브는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 중 9위로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보다 높다. 물가가 너무 비싸다 보니 이스라엘 성인의 87%(그중 자녀를 가진 사람이 많다)가 상당한 금액의 생활비를 부모에게서 지속적으로 보조 받는다.

2011년 여름 이런 경제 압력이 거리로 분출됐다. 젊은 이스라엘인 약 50만 명이 몇 달 동안 높은 생활비와 낙후된 의료·교육 시스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이래 이스라엘 지도부는 해외로 이주한 고학력자들의 귀국을 유도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나 전문가 평가에 따르면 예산 낭비였다. 2011년 이스라엘 정부는 3억6000만 달러를 들여 I-CORE를 시작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이스라엘 학자를 자국 대학으로 데려오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실적이 너무 저조해 3년만에 폐지됐다. 예루살렘 소재 히브리대학의 바라크 메디나 총장은 박사 과정 유학을 떠난 이스라엘인 중 20%만이 귀국해 이스라엘 대학에서 일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에선 급여가 낮고 생활비는 비싸기 때문이다. 귀국한 교수가 얼마 안 가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간 경우도 적지 않다고 메디나 총장은 덧붙였다. “그들이 이스라엘에서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한 것과 실제로 얻는 것 사이에 차이가 컸다.”

2013년 이스라엘 정부는 ‘두뇌유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해외 거주 이스라엘 인재들을 확인하고 그들이 이스라엘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그들의 귀국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정부 기구인 이스라엘 혁신청의 사회도전부를 이끄는 나오미 크리거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9개월만에 중단됐다. 그런 노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벤-다비드 교수는 “학자나 이런저런 단체를 이스라엘로 데려오려는 정부의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고 말했다. “예산만 많이 드는 그런 프로그램보다는 나라 전반을 확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4일 가자 지구에서 시위를 벌이는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 사진:AP-NEWSIS
예루살렘 출신인 리노이(21, 성은 밝히지 않았다)도 같은 생각이다. 이스라엘에서 의무 군복무를 마친 그녀는 지난해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일단 관광 비자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뒤 미국인과 결혼하고 지금 영주권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녀는 만약 이스라엘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어머니처럼 되기 십상이라고 생각한다. 47세인 그녀 어머니는 지금도 월세 아파트에 살며 생계를 겨우 꾸려간다. 리노이는 “난 조국 이스라엘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가 우리 나라에서 삶을 설계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놨다. 젊은 세대가 이스라엘을 떠날 생각만 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서글프다. 나도 언젠가는 조국에서 떳떳하게 자녀를 키우고 싶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라헬 오할과 남편 아미르 오할도 리노이와 똑같은 생각이다. 5년 전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살았다. 두 자녀를 두고 맞벌이를 했다(그녀는 은행 직원이었고, 남편은 통신회사 고객지원부서에서 일했다). 월 소득은 두 사람이 합해 4000달러(세후, 약 430만원)에 약간 못 미쳤다. 그 정도 수입으로는 네 식구가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다. 하지만 2013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그들은 단 3년만에 침실 4개짜리 주택을 구입할 수 있었다.

지금 아미르 오할은 로스앤젤레스에서 건축 도급업체를 운영한다. 이스라엘에서 하고 싶어 했지만 어려웠던 일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선 소수의 막강한 가문이 건축업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스라엘 마피아와 연계됐다는 소문도 나돈다). 지금 그의 수입은 이스라엘에 있을 때의 약 10배다. 아내가 일할 필요가 없는 것만 해도 그들에겐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그녀는 “이스라엘에선 나도 늘 일을 해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엄마 노릇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기선 하루 종일 아이들과 같이 지낼 수 있다.”
비싼 생활비, 낮은 임금, 정치적·인구적 불안 추세에 낙담한 이스라엘인의 미국 이민이 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시민권을 받은 라헬 오할. / 사진:COURTESY OF RACHEL OHALXINHUA-NEWSIS
물론 미국으로 이주한 모든 이스라엘인이 그들처럼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인이 미국으로 이주하려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경제적 기회가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을 위해 2007년 이스라엘-미국 위원회를 설립한 아담 밀스타인은 지금 그곳에 도착하는 이스라엘인의 생각이 1980년 자신이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당시 우리는 늘 짐을 꾸린 상태에서 언제라도 귀국할 준비를 한 채 살았다. 하지만 요즘 미국에 도착하는 이스라엘인은 더 젊고 재능도 훨씬 많다. 그들은 서둘러 귀국할 생각이 없다.”

이민을 택하는 많은 이스라엘인이 꼽는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이 종교 국가가 아닌 유대인 민주국가라는 근본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금 이스라엘엔 독실한 유대인이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 이스라엘 사회의 모든 면에 그런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 정치만이 아니라 교육도 그렇다. 유대교 관련 과목이 교과 과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텔아비브 출신으로 내년 남편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할 계획인 카르미트(30)는 “우리 나라가 유대교 국가이기에 앞서 민주국가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실한 유대교 신앙이 강조되면서 이스라엘은 더욱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을 떠나는 사람은 보통 좀 더 진보적이다. 이스라엘 중앙통계국에 따르면 현재 극단적인 초정통파 유대교 신자가 이스라엘 인구의 12%를 차지하지만 2065년이 되면 그 비율이 4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초정통파 유대교 신자 인구의 증가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들의 공립 학교는 수학·과학·영어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벤-다비드 교수는 “이스라엘 어린이의 절반은 제3세계 교육을 받는다”고 말했다.
초정통파 유대인 결혼식. 현재 그들은 이스라엘 인구의 12%를 차지하지만 2065년이 되면 그 비율이 4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사진:XINHUA-NEWSIS
게다가 초정통파 유대교 신자 다수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소득이 적기 때문이다. 유대 근본주의를 믿는 그들을 ‘하레디’라고 부른다. 하레디는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고 유대 율법과 전통을 고수한다. 남자에게 주어진 최고의 소명이 고대 유대교 경전과 율법 등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하레디 남성은 일도 하지 않는다. 아내가 벌어오는 소득과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 아이들의 용돈에 철저히 의존해 살며 국가가 지원하는 유대교 율법 학습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보수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며 남성은 검은 모자에 19세기 동유럽풍의 흰 셔츠, 검정 바지 저고리 차림에 귀밑으로 돌돌 말린 양갈래 머리모양을 한다. 결혼한 여성은 목과 팔다리, 머리를 가리는 복장을 한다.

이스라엘 발전의 이면엔 내부 분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 사진:AP-NEWSIS
그 결과 이스라엘은 사실상 두 개의 나라로 쪼개졌다고 벤-다비드 교수는 말했다. “한쪽은 번쩍거리는 스타트업 이스라엘이고 다른 한쪽은 현대 경제에서 살아갈 도구가 없는 암울한 이스라엘이다.” 그 두 집단의 격차가 급속히 벌어진다. 게다가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이란(레바논과 시리아의 이란 대리 세력 포함)과의 긴장도 계속 고조되는 상황이다. 벤-다비드 교수는 현상태로는 국가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3세계의 경제는 제1세계의 군을 지탱할 수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인 이스라엘에 제1세계의 군이 없으면 국가의 존립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해낼 수 있으며, 또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제 미국 시민이 된 오할 부부도 벤-다비드 교수의 생각에 동의한다. 아미르 오할은 “난 부자가 될 생각이 없다”며 “진정코 우리가 귀국하기를 바란다면 정부가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 야데나 슈바르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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