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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초야에 생긴 일

신혼여행 초야에 생긴 일

이언 매큐언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체실 비치에서’, 연기파 시얼샤 로넌이 주연 맡아
시얼샤 로넌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영화화한 최신 작품에서 신혼여행 중 초야를 망치는 젊은 신부의 역할을 잘 소화했다. / 사진:ROBERT VIGLASKY/ BLEECKER STREET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는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이 2007년 발표한 중편 소설이다. 분량이 영어로 4만 단어도 안 되는 짧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 단어 하나하나는 영국 도싯 해안 지대를 따라 펼쳐진 약 30㎞ 길이의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조약돌만큼이나 정성 들여 다듬어져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 센티멘털하면서도 아름다운 체실 비치는 소설 속의 젊은 부부인 플로렌스 폰팅과 에드워드 메이휴가 1962년 신혼여행을 간 곳이다. 하지만 초야의 섹스가 엉망이 된 후 그들의 결혼은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다. 매큐언의 이 소설은 전개가 박진감 있고 대사는 적어도 독자에겐 종종 유머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주인공 부부인 폰팅과 메이휴에겐 그 이야기가 주체하기 힘든 치욕과 후회로 막을 내린다.

매큐언은 영화대본도 여러 편 썼지만 작업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짜증스러워 자신의 베스트셀러 소설들을 영화로 만들기 위한 대본 작업은 주로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어톤먼트’(Atonement, 2007), ‘사랑을 견뎌내기’(Enduring Love, 2004), ‘베니스의 열정’(The Comfort of Strangers, 1990)이 그런 작품이었다. 하지만 ‘체실 비치에서’ 만큼은 달랐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가 직접 대본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의 길이가 짧다는 사실이었다. 매큐언은 “장편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면 내용을 3분의 2나 잘라내야 하지만 이 작품은 분량이 적어 거의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언 매큐언은 원작 소설을 쓰고 영화 각본까지 맡았다. / 사진:AP-NEWSIS
감독은 연극에서 영화로 무대를 옮긴 도미닉 쿡이 맡았다. 쿡 감독이 폰팅 역에 시얼샤 로넌이 어떠냐고 제안했을 때 매큐언은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일랜드 출신인 로넌은 ‘어톤먼트’에서 13세의 브리오니 탤리스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로 2008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매큐언은 “그 나이에도 로넌은 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고 돌이켰다. “생기발랄한 아일랜드 여자아이에서 말투까지 완벽하게 바꾼 영국 상류층 소녀로 감쪽같이 변신했다. 그녀는 특유의 자기성찰과 억제할 수 없는 상상력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촬영장을 완전히 매료시키고 최면에 빠드리는 재주가 있었다.”

로넌 역시 매큐언의 또 다른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매큐언은 여성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탁월하다”며 “매 10년마다 그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극중인물인 폰팅과 메이휴는 공통점이 거의 없지만 두 사람 모두 침묵이 지배하는 억압된 세계 출신이다. 매큐언은 “로넌은 아무 말 없이 얼굴 표정만으로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배우”라고 칭찬했다. 폰팅의 어울리지 않는 남편 메이휴 역은 빌리 하울이 맡았다. ‘덩케르크’에 출연하면서 잘 알려지게 된 그는 곧 개봉하는 마이클 메이어 감독의 영화 ‘갈매기’(안톤 체호프의 희곡을 영화화했다)에도 로넌과 함께 출연했다.

폰팅은 22세의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다. 그녀의 어머니는 옥스퍼드대학 교수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딸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 매큐언은 “얼음 같이 차가운 분위기가 감도는 집안”이라고 설명했다. 폰팅은 현악 4중주단을 이끌며 활발한 활동을 하지만 결혼 초야에 두려움으로 고뇌하는 숫처녀다. 매큐언은 “로넌은 모든 소설가가 부러워할 정도로 극중인물의 감정을 재빨리 파악하는 재주가 있다”고 말했다. “이웃집의 평범한 여성이었다가 얼굴 표정과 머리를 젖히는 제스처 하나로 빼어난 상류층 미인으로 변신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높이 사는 건 그녀의 지적인 면이다.”

‘어톤먼트’ 개봉 후 ‘체실 비치에서’가 나오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매큐언은 그처럼 세월이 흘러도 로넌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그 사이 로넌은 2015년 ‘브루클린’과 지난해 ‘레이디 버드’에서도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됐다). “로넌은 인기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녀는 본연을 확고히 유지한다. 지금도 10대 소녀처럼 재미를 찾는 사랑스런 자아를 가졌다.”

- 메리 케이 실링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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