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민간 주택에도 후분양제 도입한다는데] 주택시장 교란 ‘분양권 투기’ 뿌리 뽑힐까

[민간 주택에도 후분양제 도입한다는데] 주택시장 교란 ‘분양권 투기’ 뿌리 뽑힐까

금융비용 증가로 분양가 되레 상승 우려…후분양도 부실 시공 막기 힘들어
2016년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에서 분양한 한 아파트의 견본주택 앞에는 이른바 ‘분양권 야시장’이 열렸다. 자정 청약 당첨자 발표 이후 분양권을 사고팔기 위해 청약 당첨자, 중개업자 등이 새벽에 몰려든 것이다. 분양권 투기는 선분양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자 주택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는 보유세 강화와 함께 14년째 제자리걸음인 아파트 등 주택 후(後)분양제 확대도 본격 추진한다. 정부는 6월 중 내놓을 ‘제2차 장기주거종합계획(2013~2022년)’ 수정안에 후분양제 시행 방안을 포함키로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분양하는 아파트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민간 부문에는 주택도시기금 대출 이자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앞세워 자율 참여하는 방향으로 후분양제를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최종 목표는 모든 주택에 후분양제를 의무 도입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올 1월 ‘2018년 주요정책 추진계획’을 통해 올해 상반기까지 공공 부문의 단계적 후분양제 시행과 민간 부문 후분양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후분양제를 확대하려는 것은 양도소득세 중과세, 보유세 강화 등 주택시장 규제와 맥을 같이 한다. 주택시장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주택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꼽히는 ‘분양권 투기’를 뿌리 뽑겠다는 의도다. 분양권은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 증서에 불과하지만, 분양 계약 이후 입주 때까지 통상 3년이라는 시차가 발생하는 게 문제다. 3년 후의 미래가치를 분양권에 반영해 사고팔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대표적인 선(先)분양제의 부작용으로 꼽힌다.

가령 3억원에 분양된 아파트라면, 입주 시점인 3년 후에는 아파트값이 4억원이 될 것으로 보고 3억원에 1억원의 웃돈을 붙여 거래하는 식이다. 그런데 분양권 투기는 분양권 전매금지 강화 등을 통해서도 완전히 뿌리 뽑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시세차익이 확실하다면 전매금지 기간이라도 얼마든지 사고팔 수 있다”며 “선분양제에서는 이 같은 분양권 투기를 막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가 후분양제를 늘려 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분양제에서는 계약 직후 입주하게 되므로 분양권이라는 투기 대상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분양가 상승을 억제하고, 아파트 부실 시공을 막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국토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후분양제에서는 분양 시점이 입주 시점이 되므로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터무니 없이 비싸게 책정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계약자가 집을 보고 살 수 있기 때문에 부실 시공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주택·건설 업계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으므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민간 부문으로 후분양제를 확대하면 주택 공급 물량을 확 줄일 수밖에 없다”며 “주택 공급이 줄어들면 결국 기존 집값만 올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후분양제에선 분양권 개념 사라져
주택 후분양제는 아파트를 착공하기 전 분양하는 선분양과 달리 아파트 건설이 60~80% 이상 진행됐을 때 입주자를 모집하는 제도다. 현행법에서는 선분양이나 후분양이 의무화된 것은 아니다. 주택건설회사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라 공급하는 주택의 입주자 선정 때 선분양을 할지, 후분양을 할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주택 공급이 부족했던 1970년대부터 보편적으로 선분양을 해왔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대규모 공동주택은 거의 대부분 선분양을 했다. 신규 주택 분양 물량이 사상 최고 수준이었던 2016년만 해도 주택건설회사 선분양을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분양보증을 받은 주택은 35만 가구에 이른다. 이와 달리 후분양 주택자금 대출 규모는 2000가구 수준에 그쳤다. 선분양이 대세로 자리를 잡은 건 주택 공급의 구조적인 영향이 크다. 대규모 주택 공급을 위해서는 그만큼 사업비가 많이 드는데, 선분양은 주택건설회사가 사업비를 마련하는 데 편리한 방식이다. 아파트 공사비를 통상 전체 분양가의 10~20%인 계약금과 공사 완료 시점까지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중도금(분양가의 40~60%)으로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자 즉, 소비자로부터 미리 돈을 받아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는 구조다. 이 덕에 자금력을 갖춘 대형 주택건설회사뿐 아니라 자금력이 약한 중소 주택건설회사도 적지 않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었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던 시절 정부가 선분양을 장려한 영향도 있다. 착공 전이라도 분양 자체만으로 시장에 주택 공급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부의 주택 공급 실적은 ‘완공 물량’이 아니라 ‘분양 물량’ 기준으로 삼는다. 또 사업비 마련이 쉽기 때문에 한 주택건설회사가 동시에 여러 군데서 주택을 공급할 수 있고, 정부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공급 물량을 확 늘려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선분양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계약 이후 입주 때까지의 시차가 있다 보니 분양권이 주택시장 교란의 주범이 됐다. 아파트 품질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물건(완공된 아파트)을 직접 보고 사는 게 아니어서 깜깜이 분양이나 부실 시공, 품질 논란이 계속됐다. 최근에는 수도권의 한 대규모 신도시에서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가 물이 새는 등 부실 시공 논란이 일면서 선분양제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택건설회사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미래가치를 부풀린 후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를 턱없이 비싸게 책정하는 예도 적지 않았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분양권 투기를 막고 주택 품질 향상을 위해 2003년 단계적 후분양제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중단됐다. 이후 잠잠하던 후분양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건 지난해 수도권 신도시의 한 아파트 부실 시공 논란 이후다. 특히 국토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현미 장관이 LH의 공공분양 아파트부터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시민사회단체는 즉각적인 시행을 촉구한다. 참여연대·경실련·주거권네트워크 등은 6·13 지방선거를 맞아 내놓은 ‘주거시민단체들의 8대 주거정책 요구안’에서 ‘지자체 산하 도시공사 후분양제 시행’을 포함시켰다. 지자체 산하 공사의 경우,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후분양을 실시 할 수 있는 만큼 선분양을 중단하고 후분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국회도 압박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정동영 의원(민주평화당) 등이 각각 대표발의한 ‘주택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이 개정안들은 주택 건축 공정을 60~80% 이상 진행한 후에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하는 후분양 전면 도입이 골자다.
 “자금 흐름 막혀 공급 줄 것”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지어진 아파트를 보고 계약하므로 허위·과장 광고에 속아 계약하는 일은 사라질 전망이다. 직접 층·향·동을 확인한 후 분양 신청을 하는 만큼 ‘깜깜이 분양’ 폐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분양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므로 분양권 투기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단계적 도입이 아닌 전면 도입은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 주택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 만만찮다. 우선 주택건설회사의 자금조달 비용 증가분이 소비자에게 전가돼 되레 분양가가 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후분양제와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는 분양가상한제를 동시에 적용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분양가상한제는 기본적으로 토지가격에 건설·금융비용과 적정 마진 등을 감안해 책정한다. 결국 후분양에 따른 주택건설회사의 금융비용 상승분을 분양가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다.

후분양은 주택건설회사가 사업비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구조여서 주택 공급 물량이 확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서울·수도권에서 아파트 1000가구 단지를 건설하려면 최소 5000억원가량이 드는데, 계약·중도금 없이 사업비를 모두 주택건설회사가 부담해야 한다면 여러 곳에서 동시에 사업을 추진할 수 없게 된다. 한 주택건설회사 관계자는 “아무리 자금이 풍부한 주택건설회사라도 수천억원이 드는 아파트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기 어렵다”며 “사업비도 사업비지만 반드시 팔릴 만한 사업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급 물량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대형 주택건설회사는 보통 1년에 1~3만 가구를 분양하고 있다. 중견 주택건설회사는 5000~1만5000가구 정도다. 이 물량이 3분의 1, 4분의 1로 확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주택건설회사 관계자는 “선분양에서는 착공 전에 수요 파악이 가능해 수요가 없으면 중대형을 중소형으로 설계 변경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며 “하지만 후분양에서는 계획 수정이 불가하기 때문에 사업비가 있더라도 사업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공급이 확 줄어들면 결국 기존 아파트값만 오를 가능성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후분양에서는 부실 시공이나 하자를 어느 정도 줄이는 효과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애기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사를 80% 이상 진행한 이후에 분양한다고 해도 소비자가 철근 사용량 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택건설회사와 인허가 유착관계 혹은 건설 현장에서 감리가 제 역할을 못할 때 부실 시공이 발생한다”며 “공사가 60~80% 진행된 후 분양을 받는다고 해도 일반 소비자는 공사가 부실한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분양제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견 건설회사 관계자는 오히려 후분양제가 부실 시공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사업비를 빨리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사업기간을 단축하려고 할 것”이라며 “무리한 공기 단축은 부실 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기능 제고 통해 후분양제 보완해야
소비자는 계약금과 중도금·잔금을 지금은 3년 간 나눠 낼 수 있지만 후분양에서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내에 모두 부담해야 하므로 자금 부담이 커진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3년에 걸쳐 분양가를 나눠 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목돈 마련이 어려운 서민에게는 오히려 내 집 마련이 더 힘들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선·후 분양제에 대한 장·단점이나 부작용이 명확하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중소 주택건설회사는 물론 소비자도 부담이 되고, 일부 대형 건설사 위주로만 사업이 재편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후분양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그 시기와 방법은 공공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해 나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전신 굳어가지만…셀린디옹 “어떤 것도 날 멈추지 못해”

2검찰, ‘신림 등산로 살인’ 최윤종 2심도 사형 구형

3中알리, 자본금 334억원 증자…한국 공습 본격화하나

4CJ대한통운, 편의점 택배 가격 인상 연기…“국민 부담 고려”

5 일본 후쿠시마 원전, 정전으로 중단했던 오염수 방류 재개

6호텔 망고빙수, 또 최고가 경신…13만원짜리 등장

7지오엘리먼트, 제2공장 준공…공모자금 150억원 투자

8경북경찰, "음주운전 신고" 협박해 금품 갈취한 일당 검거

9영덕 물가자미축제, 내달 3일 축산항서 개최

실시간 뉴스

1전신 굳어가지만…셀린디옹 “어떤 것도 날 멈추지 못해”

2검찰, ‘신림 등산로 살인’ 최윤종 2심도 사형 구형

3中알리, 자본금 334억원 증자…한국 공습 본격화하나

4CJ대한통운, 편의점 택배 가격 인상 연기…“국민 부담 고려”

5 일본 후쿠시마 원전, 정전으로 중단했던 오염수 방류 재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