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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가 만난 사람(7)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비전은 발효에 강한 바이오 기업

[이필재가 만난 사람(7)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비전은 발효에 강한 바이오 기업

최장수 식품 브랜드…“독보적 제품 연두로만 연 매출 1조 시대 열 것”
박진선 대표가 서울 충무로 샘표식품 본사 10층의 샘표 헤리티지 스페이스에서 옛 제품 옆에 섰다. / 사진:전민규 기자
"샘표식품이 장차 바이오 기업이 될 수도 있겠죠. 샘표의 강점이 발효인데 이게 미생물(효모)을 다루는 기술로 바이오 기술의 한 분파거든요.”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은 “효모를 이용하면 닭에 의존하지 않고도 달걀 흰자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공장식 사육을 통하지 않고 달걀 흰자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장식 사육에 따르는 동물 학대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노른자를 생산할 필요 없어 달걀 노른자 폐기에 따르는 환경 문제도 예방할 수 있다. 박진선 사장은 대표적인 장수 CEO다. 오너 3세 경영인으로 사장에 취임한 지 21년 됐다. 1950년생이니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다.
 취임 21년째인 대표적인 장수 CEO
샘표식품은 72년 된 한국의 간판 식품 기업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발효식품인 장류를 기반으로 착실히 성장했다. 지난해 제1회 올해의 중견기업 대상 장수기업 부문 대상을 받았다. 샘표 간장은 베스트 앤 스테디 셀러다. 국내 시장점유율이 60%에 이른다. 애초에 50%로 출발했고 지금도 상승세다. 이 효자 덕에 샘표는 연구·개발(R&D) 투자를 대대적으로 한다. 이 회사는 매출액의 4~5%를 R&D에 투자한다. 정부 지원 R&D 프로젝트 예산은 뺀 것이다. 대부분의 식품 기업은 매출의 1% 미만을 R&D에 쓴다. 평균 0.4% 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사실 R&D라기보다 품질관리 비용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샘표식품의 R&D 인력 비중도 압도적이다. 전 구성원 750여 명 중 20%가 연구 인력이다.

샘표가 생산하는 연두는 세상에 없던 제품이다. MSG계가 아닌 식물성 조미료인데 콩을 발효해 만든다. 나트륨 함량을 30% 이상 줄인 저염 조미료이기도 하다. 샘표 측은 기존 제품과 전혀 다른 조미료라는 취지로 요리 에센스라고 부른다. 연두는 무엇보다 한국 음식뿐 아니라 서양 음식과도 잘 맞는다. 세계 최초의 요리과학연구소인 스페인의 알리샤연구소 연구진은 연두에 대해 ‘매직 소스’라고 격찬했다. 알리샤에서는 영양학자와 식품공학자가 셰프와 함께 일한다. “연두는 말하자면 알리샤로부터 인증을 받은 셈이죠. 2012년 마침 스페인이 재정위기에 처했을 때라 국내 기준의 5분의 1 비용에 알리샤와 공동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 등의 150가지 요리에 연두를 쓴 결과 맛이 훨씬 좋아지는 것이 과학적으로 검증됐습니다. 그 후 우리도 2016년 샘표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지난해 2월 알리샤처럼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우리맛 연구팀을 만들었어요.” 샘표 측은 연두를 넣으면 다른 양념이 필요 없어 음식의 원가도 절감된다고 밝혔다. 연두는 지난 3월 세계 최대 유기농·건강식품 박람회인 자연식품박람회(Natural Products Expo West)에서 국내 식품 기업으로는 최초로 차세대 혁신 제품상(Nexty Awards)을 받았다.



연두 하나가 장차 연 매출 1조원을 기록할 거로 보나 보죠? 이 중 글로벌 시장 매출 비중이 얼마나 될 거로 봅니까?


“연두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진출을 노리게 됐습니다. 20여 년 전 사장이 됐을 때부터 세계 시장에 들고 나갈 제품에 대해 고민했는데 일본의 기꼬만 간장이 이미 장악한 간장 갖고는 안 되겠더라고요. 마케팅과 영업을 잘하면 연두 매출이 1조원을 훌쩍 넘길 수도 있어요. 그중 국내 매출의 비중은 5분의 1에 불과할 겁니다.”

일본의 기꼬만 간장과 미국 매킬러니사 제품인 타바스코 소스의 연간 글로벌 판매량이 각각 6000억원 규모다. 기꼬만은 가정용이고, 서양음식과는 잘 안 어울린다. 반면 세계적인 핫소스인 타바스코는 거의 대부분 식당용이다. 그는 “연두로 가정과 식당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쟁사들도 연두와 유사한 미투 제품을 내놓았는데요?


“소비자도 느낄 만큼 차이가 커 같은 제품이라고 볼 수 없어요. 샘표의 미생물 기술을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콩 발효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은 세계적으로 우리 밖에 없어요. 일본이 발효 강국이지만 일본 양조간장은 콩에 밀을 섞어 발효를 시키고 사용하는 미생물도 우리와 다릅니다.”



한식 세계화는 어떻게 보나요?


“신흥 한류로서의 잠재력이야 충분하죠. 기본적으로 한식에 담긴 철학과 문화가 외국인들에게 전달돼야 합니다. 일례로 나물처럼 우리 음식 중 특징적인 것을 정비해 알려야 돼요. 가격은 2만원 정도가 적당한데 유감스럽게도 이 가격의 우리나라 식당 음식이 엉망이에요.”

샘표는 국내 최장수 식품 브랜드이기도 하다. 창업주인 고 박규회 회장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을 떠나기 전 갖고 있던 현금에, 은행 예금까지 찾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우리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한 그의 말대로 샘표 직원들은 서울 수복 후 돌아와 회사를 재건했다.

샘표의 지난해 매출액은 2678억원, 영업이익은 194억원이었다. 3년 전보다 각각 13.2%, 88.3% 늘었다. 박 사장은 유학파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후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그는 전공을 철학으로 바꿨다. 아들의 이런 행동을 아버지 박승복 회장은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샘표식품의 경영권을 승계해야 할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출세도, 먹고사는 문제도 포기한 거로 생각하신 거죠. 그 시절엔 던킨도너츠에서 커피를 주문하거나 뉴욕타임스를 집어들 때면 쿼터(25센트짜리 동전)가 아까워 망설이곤 했어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철학박사를 한 그는 그 후 아버지의 우려를 씻고 샘표식품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가 박사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 건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학도 출신에게 철학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특히 플라톤의 두꺼운 책 [플라톤의 대화]는 영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한 문장에 꽂혔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벼락이 몸을 통과해 지나가는듯한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문장에서 그는 겸손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자세가 곧 겸손이라고 해석했다.

고 박규회 회장은 “내 가족이 먹을 수 없는 건 만들지 않는다”를 경영 신조로 삼았다. 손자인 박 사장은 “건강에 좋은 제품만 생산하겠다”는 뜻의 이 말을 시대에 맞게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이 사회에 기여한다”는 뜻으로 재해석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우리 회사의 목표는 아니지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정말 잘하면 이익도 많이 나겠죠. 우리 일을 잘하고 회사 구성원들이 행복하다면 회사도 성장할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회사의 규모가 작아 못할 때가 꽤 있거든요.” 그는 구성원들이 행복해지려면 회사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느낄 때 행복합니다. 샘표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려는 것도 그래야 구성원들이 행복하기 때문이죠.” 샘표 공장은 하나의 문화 공간이다. 이천의 간장공장은 외벽을 작품화한 갤러리 프로젝트 덕에 무채색의 공간에서 갤러리로 바뀌었다. 충북 오송에 있는 연구소 샘표우리발효연구중심을 지을 땐 아예 갤러리 프로젝트를 병행했다. “구성원들의 감성이 풍부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면 더 행복해 할 것 같았죠. 보통 사무실은 인테리어를 해도 공장은 잘 안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접하는 환경의 폭이 좁은 생산직에 대한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들로 하여금 공장 외벽에 그림을 그리게 했어요. 연구소는 신축 때 연구원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해 ‘세상에 없는 제품’을 개발해 보라고 인테리어 콘셉트부터 업자가 아니라 화가들에게 맡겼고요. 작업이 다 끝난 후 가 보고 저도 충격을 받았어요.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지만 몇 번 가보니 좋아지더라고요.”

샘표는 한국의 맛과 멋을 제품 디자인에 반영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펜타워즈’ ‘굿 디자인’ ‘iF 디자인 어워드’ 등의 디자인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 차별화된 디자인 경영으로 그는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디자인 경영부문 최우수상인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겸손한 ‘금수저’
그는 자신이 ‘금수저’임을 자인한다. “100% 금수저입니다. 운 좋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에 고맙게도 여태 편하게 살아왔습니다. 제게 그런 여건이 주어진 건 너무도 고맙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 여건이 우연히 저에게 주어진 것일 뿐 제가 선택한 것도 아니에요. 제가 남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할 이유도, 근거도 없고요.”



요즘 보면 세상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아니 수저 계급 간의 전쟁 상황 같아요.


“굶어죽지 않으려 상대와 싸우는 생존의 제로섬 게임을 벌이느라 내가 행복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어버린 거 같아요.”



흙수저들은 그렇다 치고 대한항공 일가 같은 ‘갑질 금수저’들이 왜 스스로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나요?


“내가 행복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같이 행복하면 나의 행복이 증진됩니다. 구성원들이 행복해야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CEO도 행복해요. 그런데 그에 대한 개념도, 경험도 그런 사람들은 없는 거죠. 저는 금수저이기에 남들은 해외에 나가기도 어렵던 시절 유학을 떠나 16년 간 살았습니다. 그 기간 남들과 싸울 일도, 잘난 척할 일도 없었고 잘났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이 역시 금수저이기에 받은 혜택이죠.”



그런데 회장 취임은 왜 안 하나요?


“회장 할 자격이 안 돼 못하는 거죠(웃음). 그런데 사람들이 대부분 회장인 줄 알아요. 회장을 하려면 사장 시킬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두 가지 결정으로 아내와 결혼한 것과 철학을 공부한 것을 꼽는다.



잘한 결정으로 배우자 선택을 꼽으면, 팔불출 아닌가요?


“이해타산을 해 볼 때 그래요. 이 여자랑 살면 엄청난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 선 계기가 있어요. 유학 시절 전공 변경에 대해 아내에게 말을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다른 얘기 끝에 전자공학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싶다는 말을 살짝 끼워넣었는데 ‘그렇게 하면 되지 왜 안하느냐’고 반문하더라고요. 일반적인 반응은 저희 선친이 그러셨듯이 ‘당신 미쳤어?’거든요.”



장차 경영권 승계는 누구에게 할 건가요?


“4세 승계가 이뤄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회사를 경영할 만한 역량과 더불어 ‘할아버지가 하시던 회사’를 지키겠다는 애정이 있어야죠. 저도 마음만 먹으면 회사 가치를 높여 1조원가량 받고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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