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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 김동원 회장] 최저임금 인상, 방향 맞지만 연착륙 필요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 김동원 회장] 최저임금 인상, 방향 맞지만 연착륙 필요

코엑스서 7월 27일까지 ‘노사관계 올림픽’ 열려… 세계 노동학자 2000명 한자리에
사진:전민규 기자
“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등 노사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려는 의지는 평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착륙이 아니라 연착륙해야 합니다. 2004년 도입한 주5일 근무제도 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했고, 성공 사례로 남았습니다. 이처럼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역시 예외 업종을 둔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착륙하는 데 집중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회장인 노동 전문가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방향성은 맞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소득 양극화”라며 “그 점에서 최저임금 인상 등은 옳다고 보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노사정 합의가 아닌 대통령 공약이라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당장 2019년 최저임금 인상 결정 이후 노사정 관계가 급속히 경색되고 있다.
 양대 노총 노사정 대화에 참여
하지만 김 교수는 현재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괜찮다’고 평가한다. 그는 “지난 10여 년 간 노사정 사이에 거의 대화가 없었던 점을 고려해본다면 지난해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최소한 양대 노총(한국·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진일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비록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파열음도 들리지만 ‘침묵’이 아니라 ‘이견’으로 논쟁하고 있으므로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경색된 고용노동 현안의 엉킨 실타래를 풀고 노사정 대화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된다.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제18차 ILERA 세계대회’가 열린다. ILERA 세계대회는 ‘노사관계 올림픽’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노동관련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학술대회다. 한국에서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교수는 2015년 9월 아시아인으로는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ILERA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서울대회에는 국제노동기구(ILO) 관계자와 전 세계 60여 개 국가에서 약 2000명이 참석한다”며 “170개 학술세션이 열리고 논문만 600편 이상 발표된다”고 설명했다. 대회 준비가 한창이던 7월 19일 오후 고려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이 대회는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3년에 한 번씩 열립니다. 4개 대륙이므로 아시아에 기회가 오는 데만 최소 12년이 걸리고, 아시아권에서 다시 한국 차례가 오려면 30~40년은 걸릴겁니다. 서울대회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고용·노사관계-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국내·외 노사관계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며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될 겁니다. 우리나라는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만큼 이번 대회의 의미가 남다릅니다. 특히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의 노사관계가 분규와 알력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퍼져 있는데, 이번 기회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외국 기업이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가 노사문제다.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도 노사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국민성이나 역사 혹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빈도와 강도가 다를 뿐이다. 김 교수는 “10여 년 전 미국 LA타임스는 대한민국을 ‘죽을 때까지 파업하는 나라’(Strike to Death)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며 “이번 서울대회는 국내 노사관계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꾸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서울대회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시장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일의 미래’ 세션을 주목하라고 했다. 그는 “장기 고용과 평생직장 개념이 생긴 것은 불과 100년 정도밖에 안 된다”며 “당시 가내 수공업, 도제식 교육, 장인 위주의 프리랜서 노동이 대세였는데 최근 들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플랫폼 노동’이 늘면서 고용 형태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노동이란 쉽게 말해 애플리케이션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 노동력이 거래되는 근로 형태를 일컫는다. 플랫폼 노동은 노무 제공자가 사용자에게 종속된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에 가깝다. 특수고용노동자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국내에선 ‘디지털 특고’로도 불린다. 예컨대 배달대행앱, 대리운전앱, 우버택시를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문제는 플랫폼 노동이 급속히 늘고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분류돼 처우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근속이 짧고 근무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한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고, 설령 노조를 만든다고 해도 노동법상 노조로 인정받지 못한다. 김 교수는 이에 따라 제조업 기반의 전통적인 노조의 모습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당장 프리랜서 등을 중심으로 준노조(쿼지노조·quasi-union)가 생겨나고 있다. 알바노조·청년유니온·외국인근로자쉼터가 대표적이다. 법적으로는 노조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동자를 보호하는 기구다.
 노조 형태·역할 변화할 것
“앞으로 노조 역할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노조, 비노조 구분이 사라지고 근로자·이민자·여성·노인·인권 등 다양한 문제를 포괄하는 단체가 기존 노조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사관계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테고요. 노사 분규 양상도 달라질 겁니다. 준노조는 파업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거리로 나서는 예가 많아지게 될 겁니다. 여론에 호소하고 결국에는 정부를 압박해 법을 바꾸는 것으로 이해관계를 달성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 맞춰 노동법 개정도 서둘러야 한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이미 준노조가 생겨나고 있지만 지금의 노동법으로는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목소리조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대회를 계기로 정부의 인식도 바뀔 것으로 그는 기대한다. 김 교수는 “해외 석학과 각국의 학계, 기업, 정부의 오피니언 리더가 참여하는 만큼 한국의 노동 관련 학문의 수준과 기업과 정부의 정책 역량을 한 단계 향상시킬 것 ”이라고 말했다.

※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란: 1966년 설립된 ILERA(International Labour and Employment Relations Association)는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노동기구(ILO)에 본부를 둔 단체로, 세계고용노동 분야의 최대 학술단체로 꼽힌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34개 주요 국가 학자들과 정책 관계자들이 회원으로 소속돼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노동법 등에 대한 학술연구와 정책을 개발한다. 냉전시대에 태어난 ILERA는 처음에는 명칭이 국제산업관계학회(IIRA·The International Industrial Relations Association)였다. 1970~80년대를 지나면서 산업관계학이라는 명칭이 협소하다는 평가가 나왔고, 2009년 지금의 ILERA로 바뀌었다. 노동관계를 넘어 전반적인 고용 문제를 포괄하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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