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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색으로 달궈진 지구온난화 논란

정치색으로 달궈진 지구온난화 논란

기후변화에 관한 미국인의 생각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노선 따라 양분 … “사기극 vs 기후변화 탓”
남극 서부반도의 빙산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정치권도 기후변화의 현실은 무시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지난 9월 중순 대형 허리케인 플로렌스가 미국 남동부를 덮쳤을 때 정치인들의 파당적인 주장도 허리케인처럼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정부가 청정에너지 반대론자들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인다고 비난했다. 펠로시 대표는 기자단 앞에서 화석연료가 허리케인의 강도를 더 높이는 데 기여한 게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이건 우리가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명확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앨 고어 전 부통령도 논란에 끼어들었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기후 관련 행사에서 “매일 저녁 TV 뉴스는 마치 성서의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세상의 종말과 비슷한 극심한 환경재앙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런 재난의 원인과 결과 사이 점들을 서로 연결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기후변화의 현실을 여전히 부인할 수 있겠지만 지난해 허리케인 마리아가 덮친 푸에르토리코에서 30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한편 극우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러시 림보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통해 ‘기후변화의 두려움을 부추기는 사람들’(그의 표현)에 맞섰다. “이건 지구온난화를 믿는 사람들만을 위해 맞춤기획된 공세다. 좌파는 자신들의 손에 넣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허리케인과 그 예보도 정치화한다.”

아무튼 이 문제가 지나칠 정도로 정치화됐다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갤럽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환경정책과 관련한 정당 간의 입장 격차는 아주 크다. 공화당 의원과 지지자의 69%는 현재의 환경 상황에 만족하는 반면 민주당 의원과 지지자의 67%는 불만족을 표하며 엄격한 환경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모든 현상은 기후변화를 둘러싼 미국인의 생각이 공화당과 민주당 각각의 노선을 따라 거의 똑같이 양분되며,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공화당 전략가로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티켓 존 매케인-세라 페일린의 선거대책 고문을 지낸 포드 오코넬은 이렇게 표현했다. “민주당은 기상이변을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탓으로 돌리는 반면 짐 인호프 상원의원 같은 공화당 인사는 상원 회의장에 눈뭉치를 싸들고 들어와 보여주며 ‘이처럼 얼음이 얼고 있는 데 지구 온난화를 외치는 것은 사기극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양측 모두 ‘카니발 호객꾼(carnival barker, 축제에서 특정 쇼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외치는 사람)’을 내세우며 싸우는 통에 어떤 일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은 생각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콜로라도대학(볼더 캠퍼스) 심리학·신경과학 교수 리프 밴 보벤과 캘리포니아대학(샌타 바바라 캠퍼스)의 데이비드 셔먼 교수가 지난 7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대다수 공화당 의원은 기후변화가 실제 상황이라고 믿는다. 조사에 응한 의원들은 기후변화의 책임 대부분이 인간의 활동에 있으며, 기후변화가 인류를 위협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 기후변화 억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도 그 논문의 내용을 뒷받침한다. 지난 5월 미시간대학과 뮬렌버그대학이 공동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3%는 기후변화의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믿는다. 또 60%는 ‘기후변화가 실제로 진행 중이며 지구온난화의 책임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퓨 리서치 센터의 지난 5월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의 59%는 기후변화가 자신의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지구시스템과학센터의 마이클 만 소장은 “올여름이 기후변화에 관한 대중의 인식이 확실히 기울어지기 시작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이 더는 모호하지 않다. 이제는 누가 봐도 그 영향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비롯되는 기후변화는 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경고해온 현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마리아·어마·하비에 이어 올해 플로렌스까지 치명적인 허리케인이 미국을 덮치면서 기후 문제가 미국인에게 개인적으로 피부에 와닿게 됐다고 온라인 환경뉴스 매체 그리스트의 편집자이자 기상학자인 에릭 홀트하우스가 설명했다. “이제 우리는 기후변화를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본다. 허리케인 플로렌스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공화당원이든 민주당원이든 모두에게 피해를 줬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견해와 정치적 태도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밴 보벤 교수의 논문은 지적했다. 응답자들이 조사에 응할 땐 소속당을 불문하고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공화당의 ‘믿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그런 불일치가 갈등을 강조하는 미디어 환경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이처럼 당 노선에 따라 증폭된 인식의 차이는 정책과 관련된 지지나 반대 행위에서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공화당 의원들은 다른 공화당 의원들이 지지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민주당 의원들이 지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후변화 예방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사진 : AP-NEWSIS(2), NEWSIS, AP-NEWSIS, NOAA EARTH SYSTEM RESEARCH LABORATORY, AP-NEWSIS
밴 보벤 교수는 “우리 연구에 따르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전부 당노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동료들이 당노선을 자신보다 더 철저히 따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노선을 지키려 한다. 대개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다른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당노선을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도 더욱 당노선에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기후정책에서 초당적인 결론을 도출하기가 더 어렵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제4 선거구에서 6선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낸 밥 잉글리스는 오랫동안 기후변화에 관한 당노선을 철저히 따랐다. 과학자들이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가 더워진다고 한목소리를 내도 그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잉글리스 전 의원은 뉴스위크에 자신은 기후변화를 뒷받침하는 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알았던 건 앨 고어가 기후변화 예방정책을 지지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그 정책에 반대했다.”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이 그뿐이 아니다. 기후변화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과학적 용어도 이 문제를 정치적 압력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예일대학 임학·환경 대학원 산하 예일 기후변화 프로젝트를 이끄는 앤소니 라이저로비츠 소장은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관해 잘 모르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당에 열성적일 땐 그들은 무조건 지도자 말을 따르는 경향을 띤다”고 설명했다. “지도자가 기후변화를 거짓말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은 지도자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지구온난화의 90%는 바다에 축적된다. 이 에네지가 쌓이면서 갈수록 강력한 폭풍이 발생한다.
그러나 잉글리스 전 의원은 2004년 하원 과학기술 위원회에 합류했다. 그는 소속 의원들과 함께 남극을 방문했을 때 지구에서 열이 발산되지 못하도록 차단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대기권 이산화탄소가 급증하는 것을 보여주는 빙산 시추물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했다. 또 호주에선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찾아가 또 다른 온난화의 결과인 산호 백화현상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2009년 잉글리스 전 의원은 화석연료 생산·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세수중립적인 탄소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그의 그런 과학적인 깨달음엔 대가가 따랐다. 2010년 보수단체 티파티 출신인 트레이 가우디가 공화당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그에게 도전해 승리했다. 그는 낙선 직후 기후전문 매체 클라이미트와이어에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가 실제라고 말하는 것은 늘 이단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 환경에 가장 큰 피해를 줬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들은 기후 변화를 믿는 것을 사탄 쪽으로 넘어갔다는 표시라고 인식한다.”

이제 기후변화의 여파가 양당 지지자 모두를 위협한다. 공화당 지도부는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고 잉글리스 전 의원이 뉴스위크에 말했다. “내가 하원에서 활동할 때 기후변화가 현실이라는 견해 표명을 막으려는 사람이 늘 있었다. 하지만 사적으로는 공화당 의원들도 기후변화를 예방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공화당 전략가 오코넬에 따르면 공화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주의 많은 일자리가 에너지 산업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문제다. 따라서 공화당 의원들이 지역구 주민에게 “일자리를 줄이자”라고 말하면 재선에 실패할 게 뻔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후변화를 무시하려 애쓴다는 설명이다.

진보적인 싱크탱크인 데이터 포 프로그레스의 선임고문이자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경제적 안정을 이루기 위한 정책 제안서 ‘녹색 뉴딜’의 저자인 그레그 칼록은 기후변화 예방은 선거에서 쉽게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를 예방하기 위한 투자와 환경 복원 사이에 피드백 고리가 확실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환경이 복원되려면 오랜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그런 사안을 선거운동 메시지로 전달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실제적인 자연현상인 허리케인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라이저로비츠 소장은 “기후 시스템은 당신이 공화당을 지지하든 민주당을 지지하든 상관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 공화당 인사는 현실을 더는 부인할 수 없다며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민주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공화당 기저에선 일부 지지가 있지만 지도부는 다르다. ‘기후변화는 없다’는 대세적인 주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잉글리스 전 의원은 2010년 낙선한 뒤 기후변화의 자유기업적 해결책을 지지하는 단체 리퍼블릭엔을 설립했다. “2009년 기업 탄소세 법안을 제출했을 때 지지하는 단체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황을 바꾸고자 한다.

지난 7월 카를로스 쿠르벨로 하원의원(플로리다·공화당)이 탄소세 법안을 새로 제출했다. 그의 지역구인 마이애미 구역은 허리케인과 해수면 상승으로 큰 피해를 보는 플로리다 키스 제도를 포함한다. 그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포럼에서 “이 법안이나 유사 법안이 언젠가는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런 법안은 미국의 인프라 투자와 세제, 환경보호 조치에 관해 중요한 논의를 촉발할 것이다.” 잉글리스 전 의원은 그 법안의 통과를 위해 공화당의 지지를 규합하려고 애쓴다.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진척은 있다. 2014년 노스캐롤라이나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토론회에서 진행자가 후보 4명 모두에게 간단한 질문 한 가지를 던졌다. “기후변화가 사실인가?” 청중은 웃음을 터뜨렸다. 네 후보 모두의 대답을 듣는 데는 14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부다 한마디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노스캐롤라이나주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지난 8월 현지 샬럿츠빌 방송에 출연해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게 확실하다고 설명하며 그 문제를 다루는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조치를 취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전략을 짜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 니콜 굿카인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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