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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라고 다 살인마 아니다

사이코패스라고 다 살인마 아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에 관해 우리가 잘 모르는 다섯 가지 사실
(왼쪽부터) 드라마 ‘킬링 이브’의 빌라넬이나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베이트먼,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대중문화에서 그리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다. / 사진:COURTESY OF BBC AMERICA, LIONSGATE, ORION PICTURES
영국 BBC TV의 인기 드라마 ‘킬링 이브’에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빌라넬은 첩보요원 이브에게 “절대로 사이코패스에게 사이코패스라고 부르지 마”라고 위협한다. “그렇게 부르면 사이코패스는 기분이 완전히 상하거든.”

그처럼 대중문화에서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우리 대다수는 사이코패스가 무슨 뜻인지 잘 안다고 생각한다. 흔히 감정이 없는 사람, 또는 어렸을 때 재미로 동물을 고문했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짐작한다. 옳은 추정이다. 반사회적 행동, 공감 능력과 죄책감 결여, 낮은 행동 통제력,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 기만이 사이코패스의 두드러진 특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에 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도 있다. 그중 다섯 가지를 살펴본다.



1. 우리 모두는 약간의 사이코패스 기질을 갖고 있다.
사이코패스는 일종의 스펙트럼이다. 영역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는 그 스펙트럼 사이의 어느 부분에 속한다. 죄책감이나 후회를 모르거나 누군가와 공감하지 못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누군가에게 잘보이려 했다면(취업 면접했을 때를 기억하는가?) 사이코패스의 특성 중 일부가 나타난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두려움을 모르거나 큰 위험부담을 감수했다면 그 역시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드러낸 것이다.



2. 사이코패스라고 전부 ‘정신병자’는 아니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낮에는 젊고 매력적인 월스트리트 금융인이지만 밤이 되면 엽기적인 살인마로 변하는 패트릭 베이트먼(크리스천 베일)이나 ‘양들의 침묵’에서 뛰어난 정신과 의사이자 식인습관을 지닌 연쇄살인범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가 대중문화에서 사이코패스로 그려진 전형적인 예다. 대다수 연쇄살인범이 사이코패스인 것은 맞지만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이코패스의 절대 다수는 연쇄살인범이 아니다는 뜻이다. 사이코패스는 인구의 약 1%를 차지하며 사회의 생산적인 일원일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불안과 두려움 같은 감정을 모르기 때문에 섬뜩한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실험에서 사이코패스는 놀람 반응(startle response,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반사적인 행동)이 둔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공포 영화를 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놀라게 한다면 대개는 ‘과장된 놀람 반응’을 보인다. 너무 놀라 펄쩍 뛴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그런 두려움을 일으키는 상황에서도 놀람 반응이 상당히 둔화돼 별로 놀라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만히 있는 경우도 많다. 군인이거나 외과의사, 또는 특공대원인 경우엔 그런 특성이 상당히 유용할 수 있다.

또 사이코패스는 아주 매력적일 수 있다(겉으로 만이라도). 아울러 위험을 자신 있게 감수하며, 무자비하고, 목표 지향적이며,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주식거래소나 기업체 이사회 회의실, 의회 같은 환경에 적합하다. 그런 환경에선 그들이 살인이 아니라 크게 한몫 잡을 수 있다.



3. 사이코패스는 시골보다 도시를 선호한다.
예를 들면 ‘초원의 집’(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미국의 근대사를 그린 가족 드라마)보다 ‘섹스 앤 더 시티’(대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네 여자의 ‘성 담론’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 실제로 사이코패스는 도시에 더 많다. 그들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속도감 있는 생활사 전략(fast life history strategy)’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파트너 찾기와 부모 역할, 생활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단기적인 관계의 기회를 노리고 섹스 파트너 수를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뜻이다. 이런 전략은 과도한 위험 감수나 이기심과 연결된다. 아울러 도시는 사이코패스에게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을 더 많이,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도시는 익명성을 유지하기가 쉬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4. 여성 사이코패스는 남성과 약간 다르다.
남성과 여성 사이코패스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지만 일부 연구에 따르면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여성 사이코패스는 남성보다 불안과 정서적 문제, 무분별한 성행위에 더 쉽게 빠질 수 있다. 일부 심리학자는 여성 사이코패스가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불안정한 대인관계, 반복적인 자기 파괴적 행동, 극단적인 정서변화와 충동성을 나타내는 장애) 진단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한다. 대다수 연구에서 여성 사이코패스의 비율이 적게 나타나는 이유도 그로써 설명할 수 있다.

우리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여성 사이코패스는 사이코패스가 아닌 일반 남성과 단기적인 관계를 갖기를 선호하는 듯하다. 데리고 놀거나 속이고 조종하기가 쉽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계를 위해선 여성 사이코패스도 같은 사이코패스인 남성을 찾는 경향이 있다. 결국 유유상종이라는 말이다.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경향이 있다.



5. 사이코패스도 감정이 있다.
사이코패스는 불안이나 두려움, 슬픔 같은 특정 감정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외 행복이나 즐거움, 놀라움, 혐오 등 다른 감정은 일반인과 비슷하게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두렵거나 슬픈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위협이나 처벌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지만 행복한 얼굴은 쉽게 알아보며 그런 면에서 자신이 보상 받을 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일반 사람은 적은 보상에도 기뻐하지만 사이코패스는 더 큰 보상이 있어야 반응을 보인다. 보상이 커야 행복을 느끼고 의욕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사이코패스도 누군가가 도발하면 화내고 목표 달성이 좌절되면 실망할 수 있다. 따라서 빌라넬의 말이 어느 정도는 옳다. 사이코패스도 기분이 쉽게 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그 느낌이 다르고 마음이 상하는 이유도 다를 수 있다.

- 나드자 헤임



※ [필자는 영국 노팅엄트렌트대학 심리학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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