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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10) 빈센트 리 '쓸모인류' 공동저자] 어른의 ‘쓸모’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재산

[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10) 빈센트 리 '쓸모인류' 공동저자] 어른의 ‘쓸모’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재산

요리하고, 도구로 뭔가 만들 수 있어야... “남이 설정한 시간에 휩쓸리지 않아야”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많은 사람이 돈과 재산을 혼동합니다. 재산에 대해 재정의할 필요가 있어요. 어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나름의 레시피 등 삶의 노하우도 돈을 떠나 일종의 재산입니다. 통장 잔액만 재산이 아니에요. 용기·희망·열정 같은 내 안의 재산의 가치에 눈떠야 합니다.” 얼마 전 [쓸모인류]라는 책을 낸 빈센트 리씨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된다는 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재산을 모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쓸모 있는 어른 남자는 두 가지 기술에 능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식을 만들 줄 알고 도구를 다뤄 손으로 뭔가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 줄 알면 남을 대접하는 방식, 서빙 예절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죠. 누군가를 위해 만드는 소박한 음식은 정직하고 건강하게 마련입니다. 요리를 하면 심지어 과학과 화학 지식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는 아침이면 부인과 함께 먹을 빵을 오븐에 굽는다. 생김새가 제 각각인 일명 못난이 빵이다. 기자가 처음 방문한 날 그는 천사빵을 구웠다. 계란 열두 개의 흰자위가 들어갔고 밀가루와 설탕을 조금씩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레시피엔 정답이 없다고 덧붙였다. 요즘도 그는 오믈렛을 더 잘 만들기 위한 레시피를 개발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그는 음식을 알아야 나잇값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은퇴 후엔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해 보세요.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지름길이죠.”

레시피뿐 아니라 인생도 정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나름대로 살아갈 뿐이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게. 인생이란 어쩌면 여정(旅程) 그 자체가 보상인지도 모른다. 그는 좋은 대학의 평가 방법이 꼭 그렇다고 말했다. “좋은 학교는 학생이 작성한 답안 자체보다 풀이 과정을 중시합니다. 시험을 봤는데 답은 틀렸지만 과정이 맞았으면 B학점, 과정은 틀렸는데 답이 맞으면 D학점을 주는 식이죠.”

현대인은 어쩌다 이토록 쓸모없는, 어쩌면 어설픈 어른이 돼 버렸을까? 그는 쓸모가 있으려면 “남이 설정한 시간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의 시대가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여유가 없고 시간에 쫓기는 건 TV·인터넷 등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강물에 떠내려가는 물고기는 죽은 고기들입니다. 나로부터 떨어져 나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어요. 실제로 내가 뭘 할 때 좋아하는지, 나의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게 뭔지 알 수 있죠.”

그는 이 과정을 자신을 타자화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것, 자신의 인지 과정을 더 높은 차원에서 관찰해 보는 메타 인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는 풍요로운 인생을 살려면 ‘미 퍼스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부터 먼저 챙겨야 비로소 주변 사람들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 자신을 응원할 수 있어야 인생이 풍요로워진다는 이야기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절대 비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평가하지도 않아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뿐이죠. 그래야 여유를 갖고 남을 대할 수 있어요. 나 자신이야말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죠.”

빈센트 리씨는 미국인이다. 주한미군 군속이었던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출생했지만 하와이에서 성장했고 고등학교 시절 4년 간 서울 용산에서 외국인학교에 다녔다. 그는 1년 반 전 손수 친환경적으로 리모델링한 가회동 한옥에서 부인과 둘이 산다. 부인 우노 초이씨는 한국계 미국 이민 1.5세로 모델 출신의 단추 디자이너이다. 그는 부인이 한국에서 활동해 연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이 집에서 보낸다.

그는 라이프스타일 혁신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집은 아담한 한옥이지만 사실상 원룸이다. 문턱과 벽을 없앴고 베네통 매장을 연상시킬 만큼 컬러풀하다. 주방엔 냉동실 없는 냉장고만 두 개 있다.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스테인레스로 주문 제작한 싱크대 왼쪽 끝엔 쓰레기를 담는 별도의 공간이 있다. 세 칸으로 돼 있는데 각각 일반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분리 배출할 쓰레기용이다. 음식물 쓰레기 칸엔 잠금 장치가 달려 있어 냄새가 나지 않도록 쓰레기 봉투 입구를 막을 수 있다. 그는 이들 봉투 아래에 쓰레기 봉투를 종류별로 수납한다.

미국 샌타모니카 해변의 타운하우스를 그는 이런 식으로 개조했다. 장기 임차해 30년 산 이 집의 담장 밑 제라늄은 그가 몇 번의 실패 끝에 제대로 키웠다. 담장을 넘은 제라늄 덕에 멋진 집이 됐다고 이웃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정원 일은 실패와 실수를 통해 비로소 느리게 몸으로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한 실수를 바로잡으면서 정원사로서의 실력이 쌓이게 마련이죠. 실수에 주눅 들면 실력을 쌓을 기회도 잃는 겁니다.”

그는 모든 걸 알고 관리하는 집사(butler) 같은 삶을 즐긴다. 집사는 대저택에서 일하는 남자 하인 중 책임자이다. 배트맨의 충직한 집사 알프레드를 떠올리면 된다. 배트맨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인 알프레드는 배트맨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내는 능력자다. 배트맨과 그의 저택의 관리는 물론 동료로서 배트맨이 필요로 하는 자료의 조사도 담당한다. “함께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집사야말로 어른에게 걸맞은 역할이죠.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이 담긴 서비스를 하고 싶습니다.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고 매너도 좋은 집사가 되기 위해 언젠가 ‘버틀러 스쿨’을 다니고 싶어요.”
 진정한 어른은 집사 같은 존재
그는 진정한 어른은 버틀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원로가 사라진 건 어쩌면 인터넷 시대의 만개로 어른으로서의 경험과 지식이 무용해 진 탓인지도 모른다. 그의 집은 그의 지인뿐 아니라 아내의 친구들이 즐겨 찾는 사랑방이다.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건 이런 공간이 집에서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아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파티라고 불렀다. 사람의 쓸모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삶의 기술은 인생의 쿠션 같은 거라고 말했다. “두려움에 빠졌을 때, 인생의 힘든 시간에 이런 삶의 잔 기술과 지식은 나 자신을 다독이는 훌륭한 쿠션이 될 수 있어요.”

그는 정리·정돈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삶의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삶의 다음 장면으로 편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 쓸모 있는 생활의 달인은 무릇 상품 디자인은 인생 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용자들에 대한 배려가 경험과 연륜에서 나온다는 생각에서다. 노인들이 이렇게 쓸모를 찾을 때 이들이 비로소 우리 사회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변했다. 그는 자신이 300살까지 살 거라고 호언장담한다. 그가 삶을 대하는 자세다. “300년을 산다고 생각하면 삶을 대하는 프레임이 달라집니다. 긴 호흡으로 시간의 프레임을 짜 볼 수 있죠. 긴 인생 시간표에 맞춰 천천히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어요.” 터무니없지만, 67세인 그가 30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80세를 사람의 평균 수명으로 간주할 때 방년 18세다. 그는 이런 자발적인 착각이 삶의 독에 찌들대로 찌든 인생에 훌륭한 해독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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