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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철군 정책, 자칫 세계혼란 부른다

트럼프의 철군 정책, 자칫 세계혼란 부른다

세계질서 유지에는 비용 들지만 반대로 중국·러시아의 도전 방치해 세계가 혼란에 빠져들면 수십 배 더 큰 피해 발생할 수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2일과 28일 알렉산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왼쪽)과 마라톤 회담을 가졌다. / 사진:KIRILL KUDRYAVTSEV-AP-NEWSIS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이 중동을 넘어 세계적으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중동에선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레이트 등을 포함한 미국의 주요 우방국들이 미국이 의지할 만한 나라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신뢰성이 위기를 맞았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그 결정에서 한발 물러나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완전한 퇴치와 시리아 내 미국 편인 쿠드르족을 터키가 말살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내거는 듯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이 결정으로 북극에서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전략적 태세에 물음표가 붙었다. 그리고 러시아가 승리를 주장할 근거를 제공했다. 미국이 후퇴하는 듯한 모습에 경쟁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미국이 약해진다는 인식뿐 아니라 마리아 부티나(모스크바 정부를 위한 스파이 활동 혐의를 인정한 뒤 수감 중)나 그 밖에 미국에 억류된 러시아인들의 석방을 위한 협상카드로 폴 웰런을 체포했는지도 모른다. 캐나다 태생 미국인인 그는 최근 모스크바에 억류됐다.

미국이 시리아에서 발을 빼면 공백이 생겨나 이란·러시아·IS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더욱이 존경 받는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극성스러운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러운 철군을 지시함으로써 미국 지도부가 분열됐고 가치 높은 전략적인 지역에서의 주요 분쟁을 해결할 전반적인 정책 목표, 포괄적인 전략, 나아가 그럴 만한 지구력이 결여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모스크바 정부가 주목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리비아·이집트·중앙아프리카공화국·콩고 등지를 포함한 아프리카와 중동에의 개입을 확대할 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문턱에 자리 잡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러시아의 잠재적인 악행의 시곗바늘 움직임이 빨라진다.

벨라루스에 분쟁의 불씨가 잠재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2일과 28일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더 루카셴코와 마라톤 회담을 가졌다. 벨라루스와 모스크바의 소식통들은 러시아가 벨라루스 내 대규모 군사기지뿐 아니라 그곳에 있는 조기경보 레이더 시스템을 요구 중임을 뒷받침했다. 게다가 크렘린 정부는 1938년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을 떠올리면서 벨라루스의 러시아 연방 통합을 추진하려 한다. 푸틴은 벨라루스와 연합 의회·내각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러시아 헌법을 우회해 사실상 자신의 5번째 임기가 만료되는 2024년 이후까지 연합 정부 수반으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푸틴의 오랜 동지인 루카셴코 대통령에 어떤 사적인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비즈니스일 뿐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의 요청에 저항하려 하지만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는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겠다며 벨라루스에 가하는 러시아의 경제적 압력이 거세진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최근 더 이상 러시아를 “형제” 국가로 부를 수 없으며 크렘린 정부가 지도 상에서 벨라루스를 지우고 옛 소련을 연상시키는 대러시아권을 형성하려 한다고 말했다.

폴란드와 인접한 전략적인 입지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러시아의 벨라루스 병합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서방에선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 벨라루스에 러시아 공군·육군이 배치되면 나토와 러시아의 접경이 수백 마일 확장되면서 냉전 시대 철의 장막과 비슷한 군사적 대립 전선이 형성돼 유럽에서 대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키예프와 모스크바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도 군사작전을 계획 중이다. 이는 드니프로 강에서 크림반도로 물을 공급하는 운하를 차지하려는 싸움이거나 또는 흑해 해안의 항구 마리우폴·헤르손·미콜라이프·오데사를 점령해 우크라이나의 바다 진출을 차단하려는 더 큰 작전일 수 있다. 러시아가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파멸시키는 2014년의 ‘노보로시야’(신 러시아) 구상이 다시 안건으로 상정됐다.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침공을 당하면 맞서 싸우겠지만 나토는 필시 그 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독일의 한 고위 군사 정책 입안자는 노르트스트림 2 러시아 가스 수출 파이프라인 건설 거부 같은 에너지 제재는 의제에서 제외됐다고 최근 내게 귀띔했다.

한편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은 대만을 본토에 강제 병합할 수 있다고 재천명하는가 하면 중국의 한 고위 전문가는 미국 항공모함 2척을 침몰시키겠다고 으름장를 놓았다. 따라서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는 유럽의 미국 우방뿐 아니라 한국·일본·호주 등 태평양 지역의 우방들에도 불길한 전조였다.

중국은 갈수록 미국에 호전적으로 반응하는 반면 러시아는 발트해의 칼리닌그라드로부터 흑해 크림반도와 지중해의 시리아에 이르기까지 미사일 강화 접근저지·지역거부(A2-AD) 지역의 남-북 체인 구축에 여념 없다. 다음에는 벨라루스에 대규모의 A2-AD 지역이 추가될 수 있다. 그런 지역이 유럽 그리고 중동의 미국 기지와 우방을 겨냥해 러시아가 공격을 개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국가주의의 울타리 안으로 물러설 게 아니라 ‘서방 진영’의 리더십을 다시 떠맡아야 한다. 세계 질서의 유지에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반대로 세계가 혼란에 빠져들면 수십 배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유럽 우방 특히 독일을 설득해 전투태세를 갖춰 나토 회원국뿐 아니라 우크라니아·벨라루스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억지하도록 해야 한다. 유럽은 지난 75년간 누구보다도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힘에 의한 평화)의 혜택을 많이 봤으니 떠오르는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워싱턴 정부는 우방들과의 관계를 강화해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에 직면해 파국을 맞게 될지 모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아리엘 코헨



※ [필자는 미국의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선임 연구원이며 ‘러시아 제국주의(Russian Imperialism)’의 저자다.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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