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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로 스위스의 신화 깨다

브리콜라주로 스위스의 신화 깨다

미국 개념미술가 톰 색스, 생 모리츠에서 열린 새 전시회서 정확성과 완벽함의 상징인 스위스 재조명해
이 전시회의 핵심 작품인 ‘더 팩’. / 사진:GENEVIEVE HANSON/TOM SACHS STUDIO/VITO SCHNABEL GALLERY
미국 뉴욕시 2번가 지하철 공사는 1972년 시작됐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예산과 계획의 차질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 2017년 1월에야 부분 개통됐다. 이 노선의 길이는 약 3.2㎞다. 거기에 비하면 2016년 개통된 스위스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완성됐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 이 터널의 길이는 57.09㎞로 뉴욕 맨해튼의 3배에 이른다. 스위스 당국은 알프스 산맥(일부 구간은 그랜드 캐년보다 1.5배 더 깊다)을 관통하는 구멍을 뚫어 이 터널을 만들었다. 이 터널의 건설은 연중무휴로 14년이 걸렸다. 미국의 개념미술가 톰 색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세탁기(스위스가 돈세탁의 온상이라는 사실을 빗댄 말인 듯하다)는 무슨 일이든 빨리 끝낸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스위스의 효율성에 매료돼 온 색스는 1990년대부터 작품 속에서 이 나라를 언급하고 묘사했다. 그가 스위스를 처음 방문한 건 16~17세에 스키 여행을 갔을 때였다. “그 나이에도 스위스의 정확성과 깨끗함, 그리고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명 받았다”고 색스는 말했다. “하지만 자연은 죽음과 혼돈이 지배하는 거칠고 폭력적인 곳이다. 스위스에서는 깔끔하고 세련된 인간에 의해 그 폭력성이 완화됐다. 스위스는 자연을 숭배하는 동시에 입자물리학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는 나라다. 입자물리학은 세계 파괴의 제한적 위험요소를 가진 과학이다.”
개념미술가 톰 색스. / 사진:MARIO SORRENTI
지난 30여 년 동안 색스는 예술을 통해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마땅히 그렇게 돼야 할 방식으로 리메이크하려는 자신의 욕망을 표현해 왔다. 그는 특유의 브리콜라주(닥치는 대로 아무 재료나 활용해 만드는 미술품 또는 그 기법)를 이용해 다양한 재료를 정교한 대안적 우주의 구성 요소로 탈바꿈시킨다. 소비지상주의와 폭력, 문화 아이콘, 사회제도에 대한 교활한 코멘트다.

일례로 2012년 뉴욕 파크 애버뉴 아모리의 전시실을 가득 메웠던 ‘우주 프로그램: 화성(Space Program:Mars)’은 미 항공우주국(NASA)을 비꼰 작품으로 관람객에게 대단한 불신의 유예(비판을 중단하고 초현실적인 것을 믿으려는 의지)를 요구했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이 전시회를 본 관람객들은 우주인이 합판으로 만든 우주선을 아타리 조이스틱으로 조종해 우주여행하는 걸 응원했다.
색스의 설치미술 ‘하이디’는 커피머신과 노인용 보행보조기, 디른들 (알프스 지역의 여성용 전통의상)로 구성됐다. / 사진:GENEVIEVE HANSON/TOM SACHS STUDIO/VITO SCHNABEL GALLERY
스위스 생 모리츠의 비토 슈나벨 갤러리에서 열리는 색스의 새 전시회 ‘더 팩(The Pack)’(2월 3일까지)은 스위스를 이상화된 브랜드로 묘사한다. 색스는 건강과 순수의 상징인 하이디(요한나 스피리의 1881년 동화 속 주인공)를 포함해 스위스의 자아상에 일관성이 없음을 강조한다. 스위스는 세계 최대의 은행이자 적십자사의 탄생지인 동시에 정치적 중립과 인도주의의 모델이며 완벽함의 전형인가 아니면 관용은 말뿐인 부패하고 자기중심적인 권력인가?

“이 전시회의 의도는 스위스를 비난하려는게 아니라 그 나라의 모든 측면을 한번에 이해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고 색스는 말했다. 하지만 전시작 중엔 빈곤과 불평등으로 분열된 세계에서 특정 지역을 유토피아라고 믿는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일례로 ‘스위스(Swizerland)’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스위스 연방의 26개 주에 아프리카 각국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작품은 주크주(스위스에서 가장 부유한 주)의 풍부한 자원이 아프리카의 브룬디 같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스위스’라는 제목의 이 그림에서는 스위스 연방의 26개 주에 아프리카 각국의 이름이 적혀 있다. / 사진:GENEVIEVE HANSON/TOM SACHS STUDIO/VITO SCHNABEL GALLERY
“이 작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조직적이지만 영혼이 부족한 곳과 가장 조직적이지 못하지만 영혼이 충만한 곳에 관한 이야기”라고 색스는 말했다. “어떤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아프리카는 예술적 의미가 있는 뭔가를 끊임없이 생산해 왔다.”

이 전시회와 핵심 작품의 제목인 ‘더 팩’은 독일 미술가 요셉 보이스의 1969년 설치미술에서 따왔다. 폭스바겐 버스 뒷문에 24대의 썰매가 매달려 있고 각 썰매에는 원시적 생존을 위한 물품들이 비치된 설치미술이다. 색스의 ‘더 팩’에는 썰매 대신 모터사이클 3대가 등장한다. 이 모터사이클은 1506년부터 바티칸을 지켜온 스위스 근위대를 상징한다.

“스위스 근위대는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고 알려진 보라색과 노란색의 우스꽝스러운 제복을 입지만 스위스의 네이비 실(미 해군 특수부대)로 불릴 만큼 전문적”이라고 색스는 말했다. “그들은 미늘창(도끼와 창을 결합시킨 형태의 옛날 무기)과 검을 들고 다니지만 안쪽엔 글록 권총을 차고 있다.” 중립을 지지하는 나라의 마지막 모순이다. 하지만 색스는 “뭐든지 하면 제대로 하는 스위스의 그런 정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 메리 케이 실링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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