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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도 건강해지는 ‘집단면역’의 효과

이웃도 건강해지는 ‘집단면역’의 효과

미국 다트머스대학 연구팀, 한번 의심하면 설득하기 어렵다는 ‘히스테리시스’ 현상이 안티백신 운동의 동인
아프가니스탄은 2017년 소아마비 퇴치 운동의 일환으로 경구용 백신을 보급했다. / 사진:AP-NEWSIS
백신이 어린이 질병 예방을 위한 안전하고 효과적인 도구라는 과학적 증거가 넘치지만 여전히 예방접종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안티백신 운동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런 점을 입증한다. 전문가들은 백신에 대한 오해나 불신, 안일함, 또는 접근성 부족으로 백신 기피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은 가성비가 가장 높은 예방법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사망을 막고 있다”며 “백신 기피로 그런 진전이 퇴보할 위험에 처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5년 WHO의 ‘백신 기피에 관한 권고’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어린이 150만 명이 백신을 접종했다면 예방했을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다.

질병을 예방하려면 ‘집단면역’이 필요하다. 집단면역이란 인구 집단 중에 특정 감염병에 대한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많을 때 그 질병에 대한 집단 전체의 저항력이 향상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방접종은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로 봐서도 집단면역 형성이란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백신 기피 현상과 안티백신 운동이 확산하는 지금의 현실에선 ‘집단면역’ 효과를 보는 데 필요한 예방접종률을 달성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최근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다트머스대학의 연구자들이 이 현상을 깊이 조사했다. 그들은 예방접종률을 높이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의 핵심 요인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B에 발표된 연구에서 푸펑 수학과 부교수와 동료들은 ‘히스테리시스(hysteresis, 이력 현상)’가 예방접종률을 높이려는 노력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히스테리시스는 일반적으로 여러 물리적 시스템에서 나타나지만 인간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떤 물질이 거쳐 온 과거 이력이 현재 상태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가리킨다. 간단히 말해 외부의 힘이 가해져 초기 시스템의 조건이 완전히 변한 뒤에도 가해진 힘의 효과가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효과를 그림으로 나타낸 곡선을 ‘히스테리시스 루프’라고 부른다.

푸 교수는 뉴스위크에 “히스테리시스 루프를 보면 가해진 힘이 사라진 뒤에도 그 영향이 지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히스테리시스는 대개 물리학에서 물질의 자기적 성질과 연관돼 나타나지만 생물학과 사회경제학적 시스템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특정 물체가 외부의 힘이 가해져 상태가 완전히 달라진 뒤엔 원상태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이유다. 경제학을 예로 들면 경기가 회복돼도 실업률이 높은 것은 바로 히스테리시스 현상 때문이다.”

다트머스대학 연구팀은 히스테리시스가 물리학과 경제학 같은 분야만이 아니라 공중보건 정책의 맥락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입증했다고 주장한다. 푸 교수는 “사람들이 일단 백신의 안전성이나 효과에 의심을 품게 되면 그런 부정적인 인식을 뛰어넘도록 설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히스테리시스는 사회적인 차원에서 차단하기 어려운 아주 강한 힘이다.”연구팀에 따르면 히스테리시스 루프는 사람들이 예방접종과 관련해 부정적인 경험이나 인식을 가지면서 시작된다. 그런 경험이나 인식은 백신이 때때로 원치 않는 부작용을 나타내거나(대다수의 경우엔 사소하다고 해도) 질병으로부터 완벽한 보호망을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될 수 있다. 그에 따라 ‘예방접종 궤적(vaccination trajectory, 백신을 접종 받는 추세를 가리킨다)’ 이 히스테리시스 루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탈리아 의회는 어린이의 입학에 필수 조건이었던 의무 예방접종을 폐지하는 새 법을 통과시켰다. 사진은 지난해 2월 의무적인 예방접종에 항의하는 시위. / 사진:AP-NEWSIS
푸 교수는 “다시 말해 히스테리시스 루프로 인해 사람들은 비용과 효과 등 예방접종 행동을 촉진하는 요인에서 나타나는 변화에 상당히 민감해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히스테리시스 루프의 존재는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새로운 경로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주 저자인 천싱루 연구원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낮은 예방접종률을 높이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도 그로써 설명된다. 이 분야의 이전 연구는 낮은 예방접종률과 관련된 모든 요인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천 연구원은 “특히 공중보건 이슈에서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논거의 힘만으로 히스테리시스와 인간의 행동을 극복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낮은 예방접종률로 이어지는 백신 기피는 공중보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푸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거의 퇴치된 것으로 알려진 홍역·유행성이하선염·백일해 같은 질병이 근년 들어 놀라울 정도의 기세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연구 결과에 따라 히스테리시스 효과를 극복함으로써 부분적이나마 예방접종률을 높이는 데 실용적인 효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백신과 관련된 히스테리시스 루프의 확인은 의미가 큰 발견으로 공중보건 관리들이 예방접종을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관리들은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선 백신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내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델링 결과에 따라 두 가지 사안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첫째는 효과 있는 백신을 개발해 수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는 어느 수준에 도달했을 때 그 효과를 대중이 확실히 인식하도록 홍보하는 것이다. 사실 둘째가 더 중요하다.”

푸 교수는 또 집단면역의 측면도 강조했다. “예방접종 증진은 공중보건 측면에서 질병예방 효과 외에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바람직한 이타적인 행동으로서 홍보될 필요가 있다. 예방접종은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집단면역 개념을 통해 가족과 친구, 심지어 낯선 사람까지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2011년 출생한 어린이의 경우 24개월이 됐을 때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비율이 0.9% 늘었다. 또 2015년 출생한 어린이의 경우 그 비율은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CDC 산하 면역·호흡 기질환센터(NCIRD)의 백신 담당 선임고문 아만다 콘은 “그처럼 접종을 받지 않은 어린이의 비율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백신으로 예방 가능하지만 예방접종 없이는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으로부터 두 살 미만의 미국 어린이 약 10만 명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아리스토스 조지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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