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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사 시작한 기회의 땅 쿠웨이트를 가다] 2035 비전 프로젝트에 31조원 투자

[대역사 시작한 기회의 땅 쿠웨이트를 가다] 2035 비전 프로젝트에 31조원 투자

현대건설, 북쪽 신도시 잇는 세계 최장 다리 완공 눈앞… LH는 쿠웨이트 첫 스마트시티 건설
대형 선박이 교량 밑으로 통과할 수 있게 만든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다리. 멀리 쿠웨이트시티가 보인다. / 사진:현대건설 제공
지난 1월 28일 쿠웨이트의 수도 쿠웨이트시티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슈웨이크항. 쿠웨이트만의 짙푸른 바다 위로 거대한 다리가 거친 바닷바람을 뚫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워낙 긴 터라 수평선 너머 끝이 안 보인다. 쿠웨이트만을 가로질러 쿠웨이트시티와 북쪽 수비아 신도시를 연결하는 길이 36.1㎞의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다리’다. 쿠웨이트 사상 최대 토목사업으로 꼽히는 이 교량 공사를 맡은 업체는 한국의 현대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 이후 최대인 26억 달러(약 2조7000억원)짜리 공사를 2013년 수주한 후 2월 말 완공하게 된 것이다. 현 국왕의 선왕이자 형인 셰이크 자베르의 이름을 딴 이 다리는 70분가량 걸리던 쿠웨이트시티와 수비아 간 이동시간을 20분으로 줄인다. 게다가 한국 GS건설이 시공 중인 도하 구간 교량이 연결되면 이 다리는 중국 칭다오의 자오저우만대교(41.6㎞)보다 더 긴, 총연장 48㎞의 세계 최장이 된다.
 쿠웨이트 남북을 잇는 대 동맥
나세르 크라이버트 쿠웨이트 주거복지청 부청장은 1월 28일 “한국 업체가 보여준 성실함과 정성이 사업을 맡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 사진:남정호 논설위원
다리 남단의 건설 현장에는 잘 꾸며진 미디어센터가 마련돼 있었다. 센터에 들어서니 검은색 히잡에 세련된 차림을 한 메이알 메사드 현장 감독과 현지 직원, 그리고 한국에서 온 현대건설 기술자 등이 반갑게 맞아 준다. 센터 2층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바다와 끝없이 이어진 다리의 경관이 여간 시원하지 않다. 놀라운 건 쿠웨이트 측 직원이 감독 이하 모두 여성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슬람 국가에선 여성들이 제대로 사회 활동을 할 수 없을 거란 선입관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일찍이 민주화가 진전된 쿠웨이트에서는 여성들이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위직에 오른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쨌거나 인구 약 410만 명에 경상북도 크기 만한 쿠웨이트로서는 이 프로젝트가 여간 중요한 게 아니다. 인구가 거의 없는 북쪽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결정적인 계기이자 수단이 바로 이 다리인 까닭이다. 아직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수비아 신도시가 완성되면 70만 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쿠웨이트 정부는 수비아보다 북쪽에 있는 부비얀섬도 중국과 함께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결국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다리는 이미 개발된 쿠웨이트 남쪽 지역과 새롭게 개발될 북쪽을 연결하는 대동맥이 되는 셈이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쿠웨이트 현지에서는 현대건설에 거는 기대와 관심이 특별하다.

쿠웨이트만을 가로질러 남쪽 쿠웨이트시티와 북쪽 수비아 신도시를 연결하는 길이 36.1㎞의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다리’ 조감도. / 이미지:현대건설 제공
이런 상황을 잘 아는 현대건설은 모든 건설 과정에서 여간 치밀하게 대응한 게 아니다. 대표적인 게 환경보호 분야다. 정일석 현장소장은 “다리가 놓인 쿠웨이트만에는 얼룩새우가 많았는데 건설 공사로 서식처가 파괴되는 것을 우려해 다른 지역 바다에 1000여 개의 서식용 돌과 블록을 투하해 이곳에서 살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다리 중간에는 2개의 인공섬을 만들어 쿠웨이트 정부 청사와 레저단지가 들어서도록 했다. 공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현대건설은 물론 한국의 위상이 크게 올라갈 건 분명해 보였다.
 환경보호에 역점
280억 달러(약 31조원) 규모의 ‘2035 비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기회의 땅 쿠웨이트의 수도 쿠웨이트시티. / 사진:위키미디아커먼 LH
쿠웨이트에서 활약 중인 한국 기업은 현대건설뿐만이 아니다. 1월 24일 쿠웨이트시티에 위치한 주거복지청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진행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쿠웨이트 정부가 압둘라 신도시를 함께 개발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예비사업약정을 체결한 것이다. 쿠웨이트시티에서 서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조성될 압둘라 신도시는 4만 가구를 수용할 예정으로 쿠웨이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스마트시티(Smart City)’다.

스마트시티란 말 그대로 교통 정보 안내 및 신호등 통제 등을 전자 장치로 조절하고 폐기물 처리와 냉방 및 상·하수도 시설 등을 중앙집중식으로 운영하는 도시를 뜻한다. 예컨대 버스 도착시간을 전광판에 표시하고 교통량에 따라 교통신호등을 조작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운영 중인 설비들이지만 쿠웨이트에서는 처음으로 도입된다고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쿠웨이트 정부가 쿠웨이트시티 서쪽에 조성 중인 압둘라 스마트 시티 예상도. / 이미지:LH 제공
압둘라 신도시 개발을 LH가 맡게 된 사연이 흥미롭다. 당초 쿠웨이트 정부는 신도시 개발사업을 국제 입찰에 부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쿠웨이트 정부는 여러 나라 업체들로부터 사업제안서를 받아봤다고 한다. 하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는 것. 결국 쿠웨이트 당국은 내부 토의 끝에 한국 업체에 신도시 개발과 관련된 제안서를 내봐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LH 측에서 마음에 쏙 드는 개발 계획안을 내놔 이 업체로 최종 낙점됐다.

이렇듯 쿠웨이트 정부가 현대건설과 LH에 대형 국책사업을 맡기게 된 건 그간 한국 업체들이 남다른 신뢰를 쌓은 덕분이다. 쿠웨이트 내에서 한국 업체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알려주는 단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한국 업체가 지은 주택에 대한 평판이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산유국으로 올라선 쿠웨이트에서는 70·80년대에 주택 건설 붐이 일었다. 주택 건설 경험이 없던 쿠웨이트 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인도·터키 등 각국 업체에 비슷한 설계도를 주면서 주택 건설을 맡겼다고 한다. 그랬더니 20~30년이 지난 현재, 여러 주택 중 한국 기업이 지은 집의 상태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현지인 사이에선 ‘한국집’이라고 하면 다른 나라 업체가 지은 것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나세르 크라이버트 주거복지청 계획담당 부청장은 “그간 한국 업체가 보여준 성실함과 정성이 우리가 사업을 맡기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LH가 추진 중인 스마트시티 건설사업은 압둘라 신도시에서 그치지 않는다. LH와 손잡은 쿠웨이트 정부는 압둘라 신도시 건설에 성공하면 이 개발모델을 중동의 다른 국가에도 수출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쿠웨이트는 중동 내에선 다양한 실험을 선도적으로 시도하는 국가로 꼽힌다. 따라서 압둘라 신도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이 개념을 들여오겠다는 주변 국가가 속출할 공산이 크다는 게 쿠웨이트 정부의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LH와 손잡고 이들 나라에 진출해 개발사업을 펼쳐보겠다는 얘기다. LH로서도 처음으로 시도하는 비즈니스 모델이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쿠웨이트 공항 터미널 운영 맡아
인천공항공사가 지난해부터 운영 중인 쿠웨이트 공항 제4 터미널. / 사진:남정호 논설위원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좋은 열매를 맺는 건 비단 대형 건설사업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공항과 병원 위탁운영 사업까지 확장되고 있다. 실제로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4월 독일·프랑스·터키·아일랜드 업체 등과의 경쟁 끝에 쿠웨이트 공항 제4 터미널의 운영 사업권을 따내 8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공사는 앞으로 1억2000여 만 달러의 사업비를 받고 5년 간 제4 터미널을 운영하게 됐다. 제4 터미널 운영을 책임진 이광수 쿠웨이트인천공항 대표는 “앞으로 완성될 더 큰 규모의 제2 터미널까지 맡는 게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아직은 공식 발표되진 않았지만, 쿠웨이트 내 대형 병원도 한국의 의료기관이 위탁 경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바데르 모하마드 알아와디 주한 쿠웨이트 대사는 “280억 달러(약 31조원) 규모의 ‘2035 비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쿠웨이트는 한국 업체엔 분명한 기회의 땅”이라며 “앞으로도 한국과 쿠웨이트 간의 호혜적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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