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신냉전의 핵’으로 떠오른 베네수엘라

‘신냉전의 핵’으로 떠오른 베네수엘라

불법 대선 논란으로 촉발된 ‘두 대통령’ 사태 두고 국제사회도 두 진영으로 분열돼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왼쪽 사진)이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대치하면서 국제사회도 양쪽으로 분열되고 있다. / 사진:AP-NEWSIS
베네수엘라의 정치 위기를 두고 최근 러시아와 이란은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이끄는 야권세력에 반대하고 니콜라스 마두로의 현 정부를 지지하기로 합의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1월 28일 통화를 갖고 마두로 대통령의 사회주의 리더십에 불법 개입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맞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얼마 전 러시아는 마두로 대통령과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과이도 의장 사이의 중재를 자원했고 마두로 정부는 러시아의 제안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란도 중재를 제안하고 나섰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양국(러시아와 이란)의 외무장관들이 베네수엘라의 현 사태를 논의했다”며 “우리는 폭력사태를 막고 시급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최대한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책임 있는 정치 세력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됐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이란 외무부는 양국의 장관들이 “양자 관계와 지역 관련 문제,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최근 사태”를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러시아와 이란은 베네수엘라를 미주 대륙에 위치한 동맹국으로 인식한다. 양국 모두 미국의 ‘침략 야욕’에 맞서 그곳에서 군사적 존재감을 키우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베네수엘라는 수년 동안 재정난에 시달렸다. 초인플레이션으로 기초적인 상품과 용역이 부족하고 잠재적인 경제 붕괴와 정부의 인권 탄압을 피해 탈출하는 난민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두로 정권을 표적으로 자산 동결 등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상황이 악화될 경우 군사적 개입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1월 초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불법 대선 논란이 격화되면서 그를 지지하는 진영과 반대하는 진영의 맞시위가 전국을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1월 23일 과이도 의장이 자신을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하며 재선거를 요구하자 미국과 남미의 미국 동맹국(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콜롬비아·코스타리카·과테말라·에콰도르·온두라·파나마·파라과이·페루), 그리고 호주·캐나다·이스라엘·영국이 그를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했다. 미국 정부는 마두로 대통령의 통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미주기구(OAS)에 독자적인 대표를 파견한 과이도 의장과 직접 소통하기 시작했다.

반면 좌익 정부가 이끄는 남미의 볼리비아·쿠바·엘살바도르·니카라과는 그 결정을 비난했고, 러시아·이란의 마두로 정부 지지에 중국·터키도 동참했다. 시리아도 마두로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의 집권 사회당을 지지했다.

이전에 러시아와 이란은 시리아에서 미국이 지원하는 내전 개입에 맞서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그 이래 그들 4개국은 공동의 적인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격파에 초점을 맞췄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반군과 지하드 무장세력의 저항을 대부분 물리치고 역내 관계를 재구축하자 러시아와 이란은 이제 베네수엘라로 눈을 돌려 마두로 정부의 전복을 막기 위해 공동전략을 추진한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부상을 억제하려고 했다. 2002년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마두로 대통령의 전임자 우고 차베스를 무너뜨리려던 쿠데타 기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차베스는 미국 정부를 향해 극도로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다.이란의 메르 통신에 따르면 지난 1월 27일 이란의 사법부 수장 사데그 아몰리 라리자니는 관리들에게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의 쿠데타 형태로 일어나는 일은 결코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며 “그런 사태는 다른 나라들에 미국과 유럽의 본색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을 더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라고 말했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마두로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와 연계된 용병과 항공기가 현지에 파견됐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지금 가장 중요한 점은 베네수엘라가 자체적으로 헌법의 틀 안에서 모든 견해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우리는 베네수엘라 내정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그들을 돕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러시아는 합동 군사훈련을 위해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전략 폭격기 Tu-160 2대와 100명의 러시아 공군 조종사·요원 등을 베네수엘라에 배치했다. 미국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마두로 정부를 지지한다는 제스처였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이란도 베네수엘라와 양자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해군 함대를 파견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멕시코와 우루과이(두 나라 모두 마두로를 수반으로 인정한다)는 마두로 대통령과 과이도 의장 사이의 대화를 주선하겠다고 제안했다.

베네수엘라 군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과이도 의장은 반정부 시위를 촉구하며 군인들에게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가담할 경우에도 보호받을 수 있는 사면법을 안내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다. 그러자 마두로 대통령은 군 최고 사령관들을 양쪽에 거느린 채 중화기 발사훈련을 지켜보고 수륙양용 탱크에도 탑승했다. 베네수엘라 군부는 미국 동맹국으로 우익 정부가 이끄는 이웃나라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공격을 두려워하면서도 여전히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모든 미국 외교관이 떠날 수 있도록 72시간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곧 추방 시한을 30일로 늘리고 대화의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도 “필수적이지 않은 대사관 직원들에게 베네수엘라를 떠날 것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7일 트위터를 통해 “미국 외교관들과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지도자인 과이도 의장, 또는 국회를 향한 어떠한 폭력과 위협도 법치에 대한 심각한 공격으로 간주하며 중대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베네수엘라 국방부는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장관이 군 병력과 함께 행진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미국 제국주의의 끊임없는 공격에 맞서 높은 사기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박스기사] 베네수엘라 문제에서 어느 나라가 누구 지지하나
베네수엘라 사태를 두고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임시 대통령’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지지하는 진영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진영으로 쪼개졌다.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오랜 긴장을 배경으로 강대국과 동맹국들의 지정학적 노림수가 충돌한 결과다. (지난 1월 25일 기준)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전기차 올림픽’에 LG가 왜 출전?…“영향력 상당하네”

2“포르쉐 안 부럽잖아”...중국 시장 홀린 스웨덴 폴스타

3미국 주택에 스며든 삼성전자 가전…건설사 ‘클레이턴’에 패키지 공급

4포스코그룹, 이차전지소재 사업 강화…‘실리콘 음극재’ 공장 준공

5 서울대·울산대·원광대 의대 교수들, 주 1회 휴진…‘의료 공백’ 심화 조짐

6페퍼저축은행, 제2회 페퍼저축은행배 전국장애인양궁대회 성료

7“극한의 기술 혁신”…삼성전자, TLC ‘9세대 V낸드’ 양산

8SK그룹 경영진 머리 맞대고 ‘리밸런싱’ 고민…최창원 “전열 재정비” 주문

9글로벌 트렌드 한눈에 보는 '2024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 개막

실시간 뉴스

1‘전기차 올림픽’에 LG가 왜 출전?…“영향력 상당하네”

2“포르쉐 안 부럽잖아”...중국 시장 홀린 스웨덴 폴스타

3미국 주택에 스며든 삼성전자 가전…건설사 ‘클레이턴’에 패키지 공급

4포스코그룹, 이차전지소재 사업 강화…‘실리콘 음극재’ 공장 준공

5 서울대·울산대·원광대 의대 교수들, 주 1회 휴진…‘의료 공백’ 심화 조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