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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총리의 분리불안

메이 총리의 분리불안

영국 정부는 EU로부터 추가적인 양보 얻어내려 모색하고 일부 의원은 2차 국민투표 추진할 듯
메이 총리는 EU에서 탈퇴하기로 민주적 투표를 통해 결정한 나라가 아니라 마치 패전국 지도자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 사진:AP-NEWSIS
지난 1월 15일 테리사 메이 정부는 결정적인 표결에서만 패한 게 아니다. 영국 정부 역사상 최대의 참패를 당했다. 오는 3월 29일로 예정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조건을 정한 그녀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합의안은 무려 230표차로 부결됐다. 전체 하원 의원의 3분의 1을 넘는다. 재앙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많은 평론가의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나 같은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메이 총리의 끔찍한 합의안이 부결돼 기쁘면서도 마음 한편에 커다란 갑갑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영국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원인이 메이 총리에게 있음은 명백하다. 그녀 자신이 영국 정치의 최대 문제를 상징한다. 그녀의 한심한 협상 시도와 고집불통 성향이 영국의 깔끔한 브렉시트를 가로막고 있다. 명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장 물러났을 것이다.

먼저 영국이 어떻게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살펴보자. 지난 2년 중 메이 총리의 약한 리더십이 확연히 드러나는 때가 많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EU 정치가와 관료들에게 우위를 양보했다. 실제로 그녀가 실패한 정치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기로 민주적 투표를 통해 결정한 나라가 아니라 마치 패전국 지도자처럼 느껴진 경우가 허다했다.

EU의 비선출직 협상 대표인 미셸 바르니에가 정한 시한을 맞추려 메이 총리가 동분서주한 2017년 12월 8일의 예를 보자. 그녀는 새벽 4시 15분에 총리관저를 떠나 브뤼셀까지 수백 마일을 날아가 아일랜드 백스톱(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의 국경차단을 피하기 위한 안전장치) 원칙에 서명했다. 그 과정에서 귀중한 영국 연합의 분할에 사실상 청신호를 보냈다.

이는 메이 총리가 EU에 순종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실패가 공백을 남겨 영국의 EU 잔류를 원하는 의원들이 계속 이용해 왔다. 그러면서 더욱 대담해진 그들은 그 과정을 장악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영국 국민이 표결한 브렉시트를 약화시켰다. 일부는 동시에 2차 국민투표를 추진했다.

이번의 패배가 그렇게 의미심장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메이 총리의 합의안으로 친브렉시트와 반브렉시트 의원들이 뭉친 데 있다. 친브렉시트 진영은 그 합의안이 유권자들이 결정한 영국의 독립을 거부하고 우리의 주권을 전보다 더 약화시킨다고 봤다. 설상가상으로 영국은 390억 파운드(약 57조원)의 탈퇴비까지 물어야 한다. 반브렉시트 진영은 2차 국민투표를 확보하거나 브렉시트를 완전히 좌초시키려고 반대표를 던졌다.

사실상 메이 총리의 합의안은 무엇보다도 항복문서에 가까웠다. 그녀가 2016년 브렉시트에 반대 표를 던졌을 뿐 아니라 2차 국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그 투표 방식을 묻는 질문에 답변도 못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영국은 전례 없는 영역에 들어섰다. 의회는 사상 최초로 민의를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2016년 1740만 명 남짓한 사람이 브렉시트에 지지표를 던졌다. 지지가 130만 표 더 많았다. 그 결과는 2017년 총선에서 다시 확인됐다. 양대 정당이 브렉시트 이행을 약속해 전체 투표의 80% 이상을 확보했다.

문제는 전체 의원 650명의 과반수가 더이상 브렉시트를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오는 3월 29일까지 영국이 탈퇴협약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원칙에 따라 탈퇴한다고 정한 리스본 조약 50조에 2017년 498명의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는데도 말이다. 이는 2015년 유럽연합국민투표법으로 뒷받침된다. 영국과 EU 양쪽의 법에 따라 영국은 자동적으로 EU에서 자동 탈퇴하게 된다는 의미다.

유감스럽게도 국회의원들이 그런 상황을 허용하지 않을 듯하다. 50조가 연장되고 영국 정부가 EU로부터 추가적인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런던에서 표결에 참가한 다음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 의회를 방문했던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한편 일부 의원은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2차 국민투표를 추진할 듯하다(1월 중순 실시된 유고브의 한 조사에선 8%의 지지를 받았다).

50조가 연장되고 2차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기성체제가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게 될 수도 있다. 영국 유권자들이 2차 투표에서 더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더 큰 표차로 EU 탈퇴를 지지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브렉시트를 달성하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 나이젤 패라지



※ [필자는 전 영국독립당 대표이며 친 브렉시트 단체 ‘리브 민스 리브(Leave Means Leave)’의 부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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