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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인터넷전문은행은] 특별한 무기 내세운 내로우 뱅크 전략 구사

[해외 인터넷전문은행은] 특별한 무기 내세운 내로우 뱅크 전략 구사

영미권·일본에선 틈새시장 공략… 중국·아프리카에서는 규제 푸는 선봉장
네덜란드 넵 뱅크 관계자가 투자자 설명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넵 뱅크의 이자율은 네덜란드 어느 은행보다도 약간 더 높게 책정된다. 일종의 최고 이자율 보상 정책이다. / 사진:넵 뱅크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은행과의 거래는 매우 어려웠다. 시간과 약속에 구애 받고, 물리적으론 지점과 관리자를 찾아가야 했다. 창구는 3시 30분에 닫혔다. 하지만 지금은 1년 내내 언제 어디서든 우리 돈에 접근할 수 있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잔고를 확인하고 결제하며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전화나 e메일, 혹은 소셜미디어로 원할 때마다 은행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CEO가 한 말이 아니다. 영국의 오래되고 전통있는 거대 은행들의 모임인 영국은행가협회 앤서니 브라운 회장이 2014년 “전통적인 은행 지점은 죽었다”며 일간지 ‘선데이 텔레그레프’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실제 영국 은행의 지점 수는 1995년에서 2015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 유럽중앙은행의 2013년 통계에 따르면, 디지털화가 빠르게 일어난 덴마크에서는 10년 동안 전체 은행 지점의 3분의 1이 없어졌고, 네덜란드에서는 4분의 1이 사라졌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오히려 20%나 지점 수가 늘어났다. 지점 수가 줄어든다는 건 은행이 더 이상 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폴란드에선 전통 은행이 인터넷전문은행에 흡수되는 일도 생겼다. 독일 코메르츠은행 소속인 폴란드 BRE 은행이 2000년 만든 인터넷전문은행 엠뱅크는 오히려 모회사를 뛰어넘어 폴란드 내 4위 은행이 됐다. 엠뱅크의 성공 비결은 실시간으로 모든 고객을 분석해 최고의 대출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객이 대출신청을 하면 30초 안에 대출금이 통장에 들어온다. 고객이 대출을 원하기도 전에 이미 승인을 받은 상태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진정한 저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엠뱅크는 지점을 늘리거나(심지어 없었고) 인수합병을 하지도 않고 12년 만에 역으로 모회사를 흡수해 금융그룹을 엠뱅크라는 브랜드로 통합해버렸다.
 해외에선 일반은행과 동일하게 취급
인터넷전문은행은 미국에서 시작됐다지만, 법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과 일반 은행을 구분해 정의하지 않는다. 지점이 없다는 의미의 다이렉트 뱅크로 불리다가 최근에는 디지털뱅크라고 통칭한다. 미국 통화감독청(OCC: 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은 은행 예비 인가서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을 전자적인 접근 채널을 이용해 영업하는 은행으로만 정의한다. 유럽에서도 이와 같은 정의를 사용하며 심지어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존 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서 오프라인 점포망을 구축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인터넷전문은행을 세운 주체에 따라 구분한다. 기존 은행권, 증권사, IT 회사, 자동차 회사 등 설립 주체에 따라 상이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주체에 따라 상반된 결정을 하기도 하지만, 특히 국가 정책에 따라서도 흥망이 갈린다. 2009년 설립된 독일 피도르 은행은 4년 만에 독일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선정됐다. 5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으며, 2016년 프랑스의 BPCE 금융그룹에 인수됐다. 피도르 은행은 자사 시스템을 외부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개방해 수십 곳의 다른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 부분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반면 인터넷전문은행은 아니지만 피도르 은행과 동일하게 API 개방 정책을 쓰면서 우크라이나 부동의 최대 은행으로 성장한 프리밧뱅크는 한창 주가를 올리며 ‘우크라이나의 아마존’이라고 불리던 2016년 우크라이나 정부의 결정에 따라 국영은행이 됐다. 중국과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중국 인터넷전문은행의 시작은 2013년 알리바바가 머니마켓펀드(MMF)를 내놓던 시점으로 봐야 한다. 당시 중국의 모든 은행은 국영은행이었다. 하지만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중국의 뱅킹 산업은 고객의 20%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는 지금껏 뱅킹 서비스를 받지 못한 80%의 기업에 주목한다. 금융산업에는 파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리바바는 경쟁사인 탠센트와 함께 결제 서비스를 만들고, 중국식 새해 용돈인 ‘홍바오’를 디지털 세상에서 구현했다. 1년 만에 디지털 홍바오 거래 건수는 12억건을 넘겼다. 중국 정부는 결국 민영은행 설립을 인가했다. 텐센트는 소액대출에 초점을 맞춘 위뱅크를, 알리바바는 소액 예금자에게 유리한 마이뱅크를 만들었다. 대다수가 은행 계좌를 갖지 못한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이동통신사 사파리콤이 정부와 함께 만든 모바일 송금 서비스 ‘엠페사’가 사실상의 은행 계좌 역할을 했다. 케냐 전통 은행들은 위원회를 결성해 엠페사 서비스를 고사시키려고 했지만 금융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면서 결국 실패했다.

글로벌 인터넷전문은행의 핵심은 내로우 뱅크 전략이다. 영국 금융전문가들의 모임인 파이낸셜서비스클럽을 만든 크리스 스키너는 저서 [금융혁명 2030]에서 “인터넷은행의 핵심은 특별한 한가지를 내세우는 내로우 뱅크 전략”이라고 정리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미국 인터넷전문은행의 진입·퇴출 특징’ 보고서는 차별화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한 곳만이 살아남았다고 분석한다. 보고서는 미국에서 1994~2014년 중 설립된 인터넷전문은행 38개 중에서 14개가 퇴출됐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고객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설립됐고 기존 은행과 차별 없는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생존 은행 24곳 중 은행이 만들지 않은 15개 은행은 증권사, 카드사, 자동차 회사 등 기존 고객을 기반으로 차별성 있는 비스를 제공하면서 성장을 이어나갔다. 특히 증권사가 설립한 찰스슈왑 뱅크와 이트레이드 뱅크는 모기업 고객들의 현금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보고서는 기존 고객 기반이 없는 경우 무리한 금리 경쟁을 촉발시켜서 수익성과 건정선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한다. 일본의 인터넷전문은행들도 철저히 ‘내로우 뱅킹’ 전략을 내세웠다. 이 역시 설립 주체가 어디냐에 따라 서비스의 방향이 결정된다. 2008년 모바일 전문은행을 표방하며 설립된 지분 뱅크는 일본의 전통 메가뱅크인 미츠비시도쿄UFJ가 이동통신업체 KDDI와 50%씩 출자해 만든 곳이기 때문에 모바일 거래 비중을 90%까지 높일 수 있었다.
 네덜란드 넵 뱅크, 가장 높은 이자율 보장
네덜란드에서 2012년 서비스를 시작한 넵(Knab) 뱅크는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은행 스타트업’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넵 뱅크의 핵심 전략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높은 이자율을 보장하는 것이다. 어떤 은행이 얼마나 높은 이자율을 미끼로 쓰던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은 이자율을 제공한다. 넵 뱅크는 영어로 된 홈페이지조차 없다. 철저하게 네덜란드 시장만 본다. 오래된 투자은행 출신인 르네 프리지터스 넵 뱅크 CEO는 “전통 은행의 수입원은 상품판매다. 그들은 고객 중심을 이야기하지만 최대한 많은 상품을 파는 게 일”이라며 “우리는 이런 모형을 신뢰하지 않고, 고객 편에 서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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