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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장기 투자

[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장기 투자

투자의 목표는 세후 수익률 극대화... 투자 기간의 길이 구분 짓기도 어려워
사진:© gettyimagesbank
장기 투자가 좋을까, 단기 투자가 좋을까. 투자 교과서를 보거나 금융회사 임직원들의 말을 들어 보거나 워런 버핏과 같은 일류 투자가들은 모두 장기 투자 쪽에 표를 던지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투자 목표란 단 하나다. 세후 수익률 극대화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장기 투자든 단기 투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게다가 사정을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단기 투자와 장기 투자에서 말하는 ‘기간의 길이’, 다시 말해 ‘시간 지평(Time Horizon)’이 도대체 얼마인가도 명료하게 구분 짓기 어렵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는 1년도 장기지만, 다른 누구에는 5년도 단기일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일류 투자가들은 대부분은 장기 투자를 목 놓아 외치는 것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말 장기 투자를 하면 성과가 좋아질까.
 세계적 투자가들이 장기 투자 권하지만…
투자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타이밍(timing)’과 ‘가치평가(pricing)’이다. 타이밍은 말 그대로 시장이나 가격의 움직임을 예측해 돈을 벌려는 것을 말한다. 가치평가란 주식이나 부동산의 내재가치를 분석해 가치보다 가격이 아래에 있으면 매수하고, 반대의 경우는 매도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가치의 기준이나 평가 방법은 투자자마다 다를 수 있다(워런 버핏은 가치분석을 과학이자 예술이라고 했다. 과학적 엄밀성만으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에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주장이 ‘자산배분(Asset Allocation)’이다. 찰리 엘리스나 게리 브린슨 등 이 분야의 선구자들은 통념과 달리 매매 타이밍이나 종목 선택이 아닌 자산 배분이 투자 수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런 주장은 연기금 등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의 자산운용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찰리 엘리스와 같은 인물은 매매 타이밍 전략에 대해 “그럴 듯해 보여도 실제로는 쓸모없는 아이디어”라고 가혹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자산배분도 넓게 보면 가치평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배분하는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가 선행돼야 자산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가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현명한 투자자]에서 벤자민 그레이엄도 타이밍 전략은 보통의 투자자들에겐 어리석은 전략이라고 못을 박는다.

‘시장을 예측하는 데는 엄청난 전문 지식이 필요한데, 믿을 수 없게도 ‘어떤 사람들’은 주식시장에 대해 뛰어난 예측을 통해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의 일반투자자가 시장예측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일반투자자들이 알려진 신호에 따라 일제히 매도에 나선다면 누가 그 주식을 사주겠는가?…(중략)… 어떤 전형적인 보통의 일반투자자가 자신을 제외한 일반투자자들보다 성공적으로 시장동향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할 만한 근거는 없다(참고로 그레이엄은 시장 변동을 예측하고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두고 투기자로 규정했다).’

가치 분석에 기반한 접근법에서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자신이 평가한 가치보다 가격이 더 높을 때만 매도해야 하는데, 언제 그 시점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짧게는 1년 안에 올 수도 있지만 길게는 5년 내에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워런 버핏과 같은 투자자는 아예 ‘평생 보유 종목’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버핏처럼 투자하기에는 우리네 인생은 너무 짧고 버핏 만큼 돈도 없다.

‘시간’이란 요소를 현실적인 시각에서 말하자면, 물리적 시간도 시간이지만 태도와 관점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3년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제 가치에 도달했다면 팔면 그만이다. 반대로 1년의 시간 지평을 가지고 투자했는데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조급증에 시달리게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매입 가격보다 싸게 팔아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란 존재는 장기적 관점을 갖기 어렵다. 돈과 투자 등 경제적 의사결정에서 인간의 비합리성을 밝힌 행동경제학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일류 투자가들은 시장 변동과 인간 심리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갖고 있었다. 행동 경제학은 2002년 심리학자인 다니엘 커너먼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공인을 받게 되는데, 존 메이나드 케인스(1883~1946년) 같은 대학자이자 투자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투자 게임에서의 인간의 비합리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미국 일류투자가들이 꼭 읽어야 할 텍스트로 언급하는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 12장 장기 예상의 상태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간의 본성은 결과를 빨리 보기를 원하고, 돈을 빨리 벌고자 하는 특이한 열정도 존재하며, 보통사람은 먼 훗날의 이득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할인율을 적용한다’.

케인스의 지적처럼 인간의 본성은 단기적 결과를 선호한다. 인간은 원시 부족사회에서 진화해왔다. 주식시장과 같은 투자 시장이 존재한 것은 인간의 긴 역사에서 극히 짧은 찰나의 순간이다.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하루의 생존을 고민하며 살았다. 장기적 관점을 가질 여유가 없었고, 인류에게는 오랜 동안 ‘내일’이 없었다. 당연히 투자도 하지 않았다. 현재의 생존이 중요했던 원시인의 마음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도 새겨져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만일 당신이 시장 예측에 뛰어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매매 타이밍에 따른 단기 투자를 하는 것이 좋다. 이런 능력이 있는데 굳이 하지 않을 이유란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당신이 스스로를 보통사람이라고 여긴다면, 타이밍 전략은 피하는 게 좋다. 빨리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닌 천천히 부자가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원시시대부터 인류에게 ‘내일’은 없어
장기 투자는 본성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자제력도 요구한다. 하지만 자제력은 투자에서 쉬운 자질이 아니다. 그레이엄은 [현명한 투자자]에서 수도 없이 인간의 성격적 특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이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로 ‘논증, 실제 사례, 권고 등을 통해, 독자들이 투자결정을 내리는데 적절한 정신자세와 감정상태를 구축하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라도 ‘적절한 정신자세와 감정상태’가 없으면 투자에 실패한다. 전형적인 사례가 아이작 뉴턴이다. 1720년 당대 인기주였던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주식을 팔아 100%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몇 달 후, 주식 가격이 더 폭등하자 참지 못하고 그 주식을 재매수해 거의 전 재산을 날렸다. 여생 동안 그는 자신 앞에서 ‘남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우리는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비책이나 예언가를 찾지만 투자의 세계에서 그런 방법은 드물거나 가능하다면 그것은 아주 빼어난 소수의 몫이다. 만일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보통사람이라면 천천히 부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건전한 투자의 원칙과 감정적 훈련을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리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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