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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반도체 강화론’ 왜 나왔나] 메모리반도체 한계 덜어줄 ‘쌀 중의 쌀’

[‘시스템반도체 강화론’ 왜 나왔나] 메모리반도체 한계 덜어줄 ‘쌀 중의 쌀’

미래 활용성 풍부하고 시황 덜 타 유리… 시장 비중도 7대 3으로 더 높아
4월 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두 번째). / 사진:연합뉴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유지하는 한편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 세계 1위, 팹리스(설계전문) 분야 (글로벌)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해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입니다.” 지난 4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의 경기도 화성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강조하면서 ‘시스템반도체’의 국가적인 육성 의지를 내비쳤다. 이를 위해 반도체 분야에서 내년부터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시스템반도체 연구·개발(R&D)에 나서고, 1만7000명의 고급 전문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이보다 한 주 앞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와 기업의 의지가 동시에 시스템반도체 쪽으로 모아졌다.

배경이 뭘까. 이를 살피려면 메모리반도체와 비(非)메모리반도체의 차이와 국내외 반도체 시장 현황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정보 ‘저장’ 용도로 이용되는 반도체다. D램·S램·V램·롬(ROM)이 대표적이다. 비메모리반도체는 정보 ‘처리’ 목적의 반도체다. 중앙처리장치(CPU)·응용프로세서(AP)·차량용반도체·마이크로프로세서·광개별소자 등이다. 이 가운데 센서로 대표되는 광개별소자를 제외한 모든 비메모리반도체 종류가 시스템반도체다. 흔히 반도체 강국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경쟁력은 지금껏 메모리반도체에 집중됐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비메모리반도체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많은 자본을 투입해 미세공정으로 성능을 강화, 대량생산해 수익을 올릴 기댓값이 높은 분야여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구사해야 했던 한국으로선 이쪽에 집중하는 편이 승산 있는 선택지로 해석됐고, 실제로도 그랬다.

문제는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의존도가, 수출 효자 종목으로서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독이 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일단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약 30%에 불과하다. 70%가량을 비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다. 30%의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60%가량 점유할 만큼 속된 말로 ‘꽉 잡고 있는’ 한국은, 반면 70%의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선 점유율이 3%에 머물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비메모리반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는 다양한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적용될 수 있어 성장성이 그만큼 크다”며 “종종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중에서도 ‘쌀 중의 쌀’이라 일컬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사물인터넷·자율주행자동차·로봇·바이오와 같은 전도유망한 차세대 기술에 다양한 형태로 접목될 수 있는 게 시스템반도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2022년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가 3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메모리는 정보 ‘저장’, 비메모리는 정보 ‘처리’
이처럼 현재 가치뿐 아니라 잠재력까지 높은 시장을 미국 등 경쟁국들에 고스란히 내준 채 메모리반도체에만 안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최근까지의 기록적인 호황을 뒤로 한 채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것도 ‘시스템반도체 강화론’에 힘을 실어준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수출품인 D램의 경우 올 들어 지난해 대비 국제 거래 가격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수요 대비 공급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D램 재고가 세계적으로 줄지 않으면서 반도체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사이 기업들의 실적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6조233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0.2% 감소했다. 2016년 3분기 이후 10분기 만에 최저 수준이다. 반도체 부문 실적 악화가 치명타였다. 지난해 1분기 14조4700억원가량이던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올 1분기 약 4조1200억원으로 72% 줄었다. SK하이닉스가 기록한 1분기 영업이익 1조3665억원도 전년 동기 대비 68.7% 급감한 수치였다.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내포한 한계점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미국의 인텔은 CPU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 세계 1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그런 인텔은 올 1분기 국내 기업들과 달리 지난해와 엇비슷한 실적으로 선방하면서 2017년 1분기 이후 삼성전자에 2년간 빼앗겼던 반도체 업계 영업이익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인텔의 1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약 4조7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하는 데 그쳤다.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2분기 반도체 영업이익도 인텔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의 한층 큰 시장 규모와 무궁무진한 활용성 등이 시황 변동 문제에 따른 리스크를 어느 정도 최소화해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메모리반도체는 표준화한 제품이라 진입장벽이 낮고 공급 변동폭이 크다”며 “시스템반도체는 특화 제품이고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하면 생산이 쉽지 않아 애초부터 (반도체) 시황 변동에 덜 휩싸인다는 장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스템반도체를 제조하는 기업이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보다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수월하다는 분석도 있다. 통상 D램 제조사가 CPU나 AP 제조사에 제품을 납품하기 때문에, 기술 수준 등을 요구하는 쪽은 시스템반도체 제조사일 수밖에 없어서다.

인텔은 과거 D램의 원조로 통할 만큼 메모리반도체 사업에도 힘썼지만, 1980년 무렵 이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다. 메모리반도체에 의존했을 때의 한계점과 시스템반도체에 집중했을 때의 강점을 동시에 인식해서였다. 이후 한국은 패스트팔로어로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남은 경쟁 상대들을 누를 수 있었다. 반도체 전문가인 이강원 전 한국에스지티 대표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스템반도체는 값이 싼 메모리반도체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남들이 메모리반도체 하나를 만들어 2~3달러를 벌 때 인텔은 그 10배를 벌 수 있는 CPU에 집중하기로 했다. 인텔이 메모리반도체에서 철수한 이유다. 메모리반도체는 미세공정 전환을 통한 원가 절감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시스템반도체는 설계가 극히 어려워 그 능력이 제품 성패를 가른다. 메모리반도체가 대규모 투자를 요하는 장치 산업 성격을 갖는 반면에, 시스템반도체는 고도의 기술력과 창의성을 지닌 인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기술 집약적 산업 분야다.”
 고도의 기술력·창의성 가진 인력이 성패 좌우
이 같은 배경 속에 정부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시스템반도체 부문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AP와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시스템반도체를 집중 양산하면서 미래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상용 DS투자증권 연구원도 “삼성전자가 투자를 결정한 133조원 중 73조원은 R&D에, 나머지 60조원은 생산설비 구축에 각각 쓰일 예정”이라며 “해외 파운드리 의존도가 낮아지고 국내 팹리스 생태계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설계 분야가 전반적으로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아직 국내에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민간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아 팹리스 생태계가 당장은 잘 구축되기 쉽지 않은 점, 일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인 고급 설계 인력을 어떻게 끌어 모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은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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