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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흰고래는 러시아 해군의 ‘스파이’일까

이 흰고래는 러시아 해군의 ‘스파이’일까

카메라 홀더 달린 러시아 목줄 찬 채 발견…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동물에 관한 논란 재점화
액션 카메라 홀더를 단 흰고래가 노르웨이 선박에 접근해 러시아 해군의 ‘스파이’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 사진:NORWEGIAN DIRECTORATE OF FISHERIES-EPA/YONHAP
지난 4월 29일 노르웨이 북부의 한 해안에서 작업하던 어부들이 흰고래 한 마리를 발견했다. 북극해 인고야 섬 인근에서부터 노르웨이 선박에 계속 접근한 이 흰고래는 목줄을 차고 있었다. 외신에 따르면 그 목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의미하는 라벨이 찍혀 있고 액션 카메라 홀더까지 부착됐다. 그러면서 러시아 해군이 정보 수집을 위해 훈련한 ‘스파이용’ 흰고래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전문가들은 흰고래가 나타난 북극해 인고야 섬에서 약 415㎞ 떨어진 곳에 러시아 북방함대의 본부 무르만스크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사에 참여한 노르웨이 생태학자 조르겐 리 위그는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흰고래가 러시아 해군에서 훈련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흰고래를 훈련해 군사작전에 투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훈련된 흰고래들은 해군 기지를 지키고, 잠수부를 안내하고, 잃어버린 장비를 찾는다.” 물론 그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그럴듯한 얘기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군대가 오래전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동물을 이용해온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유럽의 여러 나라 군대는 개를 철저히 훈련하고 잘 다루면 전쟁터에서 부상 군인을 찾아내고 군사 시설과 전초 기지를 경계하는 등 유용한 군사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군견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그들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견은 지뢰와 폭발물 탐지에 동원됐다.

그 이래 훈련이 가능하고 지능이 비교적 높은 다른 동물을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실험도 시작했다. 특히 해양 포유류가 대표적인 동물이다. 이런 실험의 가장 초기 사례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 해군이 독일 잠수함 수색을 위해 바다사자를 훈련한 것이다. 영국 웨일스 귀네드에 있는 발라 호수의 한 시설에서 실시된 바다사자 훈련은 문제없이 잘 진행된 듯했다. 그러나 실제 바다에서 풀어놓자 바다사자들은 독일 잠수함을 수색하기보다 물고기 떼를 뒤쫓는 데 더 열심이었다. 바다사자를 훈련한 군인들은 크게 실망했다.

냉전 시대 들어 미국 등 다른 나라가 그런 실험을 다시 했다. 이번엔 돌고래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들은 돌고래가 수중에서 초음파 반향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이동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고주파로 딸각하는 소리를 내고 그 메아리가 반사돼 돌아오는 것을 듣고서 인근 물체의 위치와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돌고래·상괭이·바다사자·범고래·흰고래·참거두고래 등 다양한 종의 해양 포유류가 서로 경쟁하는 군대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동물은 뛰어난 감각과 신체적 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행동도 바꿀 수 있다. 육지에서 개가 수행하는 것과 거의 같은 임무를 바다에서 수행하도록 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한 수중 음파 탐지기 제조사는 이런 동물이 가진 감정과 정교한 지능을 인정하지 않고 과학적인 용어로만 이렇게 섬뜩하게 묘사했다. “자체 추진력을 가졌으며, 표적을 탐지하고 분류하기에 적합한 수중 음파 탐지 센서 시스템을 갖췄고, 복잡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할 수 있는 컴퓨터를 내장한 해양 운반체 또는 플랫폼이다.”

미국 해군은 1960년 해양 포유류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처음엔 돌고래를 연구함으로써 어뢰의 유체역학을 개선하고 수중 물체 탐지 능력을 개선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범위가 급속히 확장됐다. 곧 그들은 적군이 설치한 기뢰를 수색하고 해저에 떨어진 물체를 찾기 위해 돌고래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모리슨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 당시인 1971년 캄란만에 정박한 미군 함대를 지키기 위해 돌고래 1개 팀이 배치됐다. 모리슨은 또 미국 해군이 훈련한 돌고래가 1987년엔 페르시아만에서 이란이 가설한 기뢰를 탐지하고 미국 해군의 해상 지휘부를 공격하려는 적군 잠수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동물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관행은 오래전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들 돌고래가 적군을 만나면 어떤 식으로 대응하도록 훈련받는지를 두고 우려가 쏟아졌다. 1976년 미국 해군 돌고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마이클 그린우드는 ‘주변 수영자 무력화 프로그램’에 할당된 돌고래들이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채운 주사기로 무장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해군의 강한 부인에도 그런 주장이 자주 제기됐다. 소련 해군도 흑해 크림반도에 세워진 시설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돌고래를 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영국 BBC 방송은 소련 붕괴 후 러시아 해군이 그 돌고래 중 다수를 이란에 팔았다고 보도했다. 2012년 우크라이나 해군이 그 시설을 재개장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래 그 시설도 다시 러시아 해군의 수중으로 돌아갔다(그러나 우크라이나 소식통은 그 돌고래들이 러시아 해군이 주는 먹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동물을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또 다른 우려의 대상이었다. 언론인 모리슨은 미군이 돌고래를 학대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돌고래 훈련 프로그램이 동물권리 존중 운동의 초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1987년 5월에는 “‘레인보워리어의 찰리 튜나’라고 밝힌 한 동물보호운동가가 샌디에이고 돌고래 가두리장 4곳의 그물을 잘랐다”는 보도가 나왔다.

해양 포유류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비밀이 아주 많다. 모리슨은 일찍이 1989년 “군이 그런 프로젝트를 비밀에 부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런 매력적인 동물과 각별한 친밀성을 느끼기 때문에 훈련 프로그램을 공개했다가는 공공의 반대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더 최근에는 국제 동물보호단체 ‘동물에 대한 윤리적 대우 지지자들’(PETA)’이 성명을 통해 미국이 돌고래를 페르시아만에 배치한 적이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이렇게 항의했다. “동물을 전쟁에 이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 전쟁은 인간의 일이다. 인간과 정당은 전쟁이 필요하다고 결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동물은 그럴 수 없다.”

최근 노르웨이 어부가 발견한 흰고래의 출처가 어디서 어떤 훈련을 받았든 이 이야기는 해양 포유류를 현대 세계에서도 여전히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안타깝게도 그런 동물을 로봇잠수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현재로썬 요원한 듯하다.

- 게르바제 필립스



※ [필자는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학의 역사학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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