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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콘서트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콘서트홀

벨기에 브뤼셀의 ‘클라라페스티벌 박스’, 1.5㎡의 이동식 유리 상자 안에서 3~6명의 청중 대상으로 무료 연주회 열어벨기에 수도 브뤼셀은 과일 향 맥주와 감자튀김 말고도 내세울 게 많다. 늘 음악이 흘러넘치는 이 도시는 최근 사람들에게 독특한 체험의 기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서 진행하는 클래식 음악 공연을 아주 가까이 접할 기회다.

1.5㎡가 채 안 되는 이 작은 상자는 전체가 다 유리로 돼 있다. 클라라페스티벌 박스(Klarafestival Box)라는 이름의 이 상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콘서트홀이다. 연례 클래식 음악 행사인 클라라페스티벌 주최 측이 2년 전 디자인해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15개 버전을 거쳐 최근엔 이 지역은 물론 해외에서도 명물로 알려졌다. 이 박스는 공연 규모에 따라 3~6명의 청중을 수용할 수 있다. 이전 버전과 달리 현재의 박스는 장소 이동이 가능하다. ‘음악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준다’는 개념이다.

최근 클라라페스티벌의 책임자로 임명된 그리트 드 그라브는 이 개념이 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에게 클래식 음악 듣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지난해엔 이 박스를 브뤼셀의 플라지 광장 한곳에 계속 두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올해는 브뤼셀 도심과 스하르베크, 제트, 이 세 곳을 중심으로 옮겨 다닌다. 지역 주민 중에 매일 이 박스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 박스는 또 젊은 음악가들이 색다른 체험을 할 기회를 준다. 또한 사람들이 평소와는 다른 환경에서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클라라페스티벌 박스는 지금까지 45명의 젊은 뮤지션을 초청해 공연했다. 그들은 공연마다 3시간씩 연주하고 15분간의 미니 콘서트를 열었다. “이 콘서트는 무료이며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을 일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드 그라브는 말했다.

지난 3월 2주일 동안 열린 2019 클라라페스티벌에서 이 박스를 찾은 사람은 2000명을 웃돈다. “우리는 클래식 음악이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드 그라브는 말했다. “요즘엔 모든 사람이 콘서트홀에 가서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박스를 사람들에게 가져감으로써 그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아주 가까이서 접할 기회를 준다. 뮤지션과 청중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고 할까?”

박스 방문객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입구에서 누가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안내 받는다. 뮤지션들은 보통 클래식 음악 콘서트와는 사뭇 다른 독특한 환경에서 공연한다. 박스의 벽이 유리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쪽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지켜볼 수도 있다.

브뤼셀에서 활동하는 크로마 앙상블은 클라라페스티벌 박스와 인연을 맺은 많은 그룹 중 하나다. 그들은 이 박스를 ‘음악의 한계를 확장할 기회’로 본다. 이탈리아 출신 하프 연주자 로베르타 브람빌라(26), 그리스계 키프로스인 바순 연주자 마브로우데스 트룰로스(27)는 이렇게 작은 유리 상자 안에서 연주하는 게 처음이었다. 그들은 이 일이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음악 교류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트룰로스는 “대다수 뮤지션은 대형 콘서트홀에서 많은 청중을 앞에 놓고 연주할 때 감동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클라라페스티벌 박스의 연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청중을 불과 몇 미터 앞에 두고 연주할 때 훨씬 더 풍부한 감정이 우러나온다. 일반 연주회장보다 스트레스를 좀 더 받을 수는 있겠지만, 청중이 가까이 있을 때 매 순간 더 집중하게 된다.”

브람빌라도 클라라페스티벌 박스 연주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연주자가 청중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그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연주자와 청중 간에 거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일반 연주회장에서 연주할 때와는 방식을 달리해 사운드를 체임버 연주단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이 유리 박스는 방음장치가 돼 있어 지나가던 사람이 멈춰 서서 들여다봐도 악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페스티벌 주최측은 원래 박스 밖에 스피커를 설치하려 했지만 결국 박스 안에 들어가야만 들을 수 있는 ‘더 친밀하고 개인적인 음악 체험’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트룰로스는 “박스 밖의 사람들이 우리가 연주하는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모습은 볼 수 있다”면서 “그것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리고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클라라페스티벌 박스의 목적은 그 유리 벽을 뛰어넘어 클래식 음악을 잘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박스 공연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넓은 층의 청중에게 다가갔다. 크로마 앙상블의 콘서트는 처음에 한 어머니와 그녀의 두 자녀(3세와 6세), 20대 커플, 그리고 70대 할머니들이 관람했다.

브람빌라는 “우리가 큰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때는 티켓 가격이 부담스러워 관람하지 못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클라라페스티벌 박스의 모든 콘서트는 무료이며 누구든 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콘서트를 열면서 어린이부터 10대 청소년,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청중을 만났다. 이것은 우리 연주자에게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매우 좋은 경험이다.”

이 작은 콘서트는 브뤼셀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뒤 세계 순회에 오를지도 모른다. 드 그라브는 “우리는 이 개념을 확장할 생각”이라며 “해외로 나가는 건 앞으로 성과를 더 지켜본 뒤에 결정하겠지만, 가능성은 분명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직 뮤지션과 청중의 좀 더 가까운 관계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콘서트홀을 만들었다. 이 작은 콘서트홀은 친밀한 분위기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가 원했던 게 바로 그거다. 음악보다 중요한 건 그런 경험이다.”

- 키아라 브람빌라 뉴스위크 기자

※ [뉴스위크 한국판 2019년 5월 27일자에 실린 기사를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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