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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요구 다 들어주면 버릇만 나빠진다고?”

“아이 요구 다 들어주면 버릇만 나빠진다고?”

홍콩에서 ‘송환법’ 입법 추진 계기로 우산 혁명에 이어 대규모 시위 다시 벌어져… 중국화에 대한 거부감 표출
지난 6월 16일 홍콩 시내 곳곳에서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송환법’ 완전 철회와 람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 사진:YONHAP
지난 며칠 동안 홍콩 시민 100만 명 이상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홍콩 정부가 추진해온 ‘송환법’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쉽게 말해 준독립 정부인 홍콩이 중국 본토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중국 중앙정부 당국으로 송환하는 내용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홍콩 행정부와 사법부가 법적 감독 없이 범죄인을 중국 본토에 인도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의 지지자들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홍콩에 은신하며 법의 심판을 회피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은 중국 공산당이 홍콩의 이미 위축된 자치권을 더욱 제한하고, 민주적인 홍콩에서 반공산주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이번 시위는 2014년 ‘우산 혁명’ 당시의 시위보다 규모가 더 컸다고 알려졌다. 당시 홍콩 시민 수십만 명이 이 홍콩을 다스리는 행정장관의 직선제를 요구했다. 그 시위는 결국 실패했다. 홍콩 행정장관은 약 1200명으로 구성되는 선거위원회가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중국 국무원 총리가 임명한다.

지난 6월 9일 ‘송환법’ 반대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자 홍콩 경찰은 이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군중을 향해 최루액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고무탄과 최루가스를 발사하면서 수많은 비무장 시민을 곤봉으로 구타하고 시위자들을 체포했다. 그 사태로 홍콩 의회는 ‘송환법’ 논의를 연기했다. 그러나 캐리 람 행정장관은 범죄인 인도 계획을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신문은 친중국 노선을 견지하는 람 행정장관이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버릇만 더 나빠진다”고 시위자들을 버릇 나쁜 아이에 비유하며 ‘송환법’ 관철을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다가 여론이 계속 악화하자 람 행정장관은 지난 6월 15일 “사회의 다양한 우려를 반영해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다음 날인 16일에 대규모 시위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검은색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송환법’ 완전 철회와 람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내 곳곳에서 ‘검은 대행진’을 벌였다. 결국 람 행정장관도 “정부 업무에 부족함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홍콩 사회에 커다란 모순과 분쟁을 일으키고, 많은 시민을 실망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한 점에 대해서 사과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송환법 반대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람 행정장관이 이처럼 시민에게 직접 사과 메시지를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람 행정장관은 시위대가 요구한 송환법 철회와 자신의 사퇴는 수용하지 않았다.

홍콩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로서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중국 공산당의 지배로부터 부분적으로만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 홍콩 헌법에 따르면 홍콩은 중국과 영국의 합의에 따라 2047년까지 ‘일국양제’ 원칙 아래서 정치와 입법, 사법체제의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이 시간표를 앞당기고 싶어 한다.

이번 대규모 시위는 홍콩 당국의 ‘송환법’ 추진으로 촉발됐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 정부가 밀어 붙여온 ‘중국화’에 대한 홍콩 시민의 거부감이 폭발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들어 홍콩 시민 사이에서는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일국양제’ 원칙이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홍콩은 공산주의·전체주의 체제인 중국에 붙어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보루다.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에서는 인터넷이 검열되지 않고, 언론도 비교적 자유로우며, 기업도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지도부를 비판하는 홍콩 언론을 눈엣가시로 여기며, 민주주의를 원하는 수많은 시민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공산주의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에 대한 반응은 중국 공산당이 홍콩에서 얼마나 많은 통제권을 가졌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아울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산당 반대 세력을 억누르고 중국 공산당 아래서 권력을 더욱 다지기 위해 공격적인 조치도 마다치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서방이 오해하는 시 주석과 중국 시스템의 핵심이다.

홍콩 시민이 ‘송환법’ 폐지를 위해 싸우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중국 본토에서 인터넷 검열, 공산당의 비위를 거스르는 언론인의 투옥(사실상 완전히 충성하지 않는 언론인은 누구든 억류할 수 있다)에 단호한 자세를 보인다. 내가 오는 10월 출간할 새 책 ‘트럼프 대 중국: 미국의 최대 도전(Trump vs. China: America’s Greatest Challenge)’을 쓰기 위해 시 주석의 권력 강화 과정을 세밀히 조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 전체주의 독재자가 대개 그렇듯이 시 주석도 소위 ‘반부패’ 운동을 추진한다. 그 운동은 단기적으로 시 주석이 막강한 권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거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의 반부패 운동은 ‘친(親)정직’ 운동과 본질에서 다르다. 전체주의 체제가 밀어붙이는 강압적인 반부패 운동은 파괴와 폭정을 부른다. 시 주석의 강압적인 경찰국가화 운동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강요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정부와 공산당의 지도부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현대 중국의 여러 측면과 함께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오웰의 상상력마저 뛰어넘는 현대 기술과 감시 능력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공포가 진실을 억누른다. 그럴 경우 국민은 매일매일 모든 생각과 말, 행동으로 국가에 충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 현상은 끝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홍콩 시민이 거부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그들은 홍콩의 현관 앞으로 다가온 폭압적인 체제를 우려한다.

- 뉴트 깅리치



※ [필자는 1995~99년 미국 하원의장을 지냈다. 현재 팟캐스트 ‘뉴트의 세계(Newt’s World)’를 진행하며, ‘트럼프의 미국: 우리 나라의 위대한 재기에 관한 진실(Trump’s America: The Truth About Our Nation’s Great Comeback)’의 저자다.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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