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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깊어가는 ‘홍콩 고민’

시진핑의 깊어가는 ‘홍콩 고민’

민주 개혁 시위를 강경 진압할 경우 평판 추락과 국제 제재의 리스크 크지만 국내외 여건상 무한정 두고 볼 수도 없어
지난 7월 21일 홍콩 중심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송환법 입법화 반대 구호를 외치며 민주 개혁을 요구하는 행진 시위를 벌였다. / 사진:REUTERS/YONHAP
지난 한 달 동안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송환법은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 등지에도 홍콩의 수반인 행정장관이 범죄자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송환법안이 통과될 경우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에 따라 홍콩이 누리고 있는 고도의 자치권이 크게 위협받고, ‘홍콩의 중국화’가 더욱 급속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홍콩 시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관측통은 제2의 톈안먼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또 한편에선 홍콩 시민들의 반발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대한 도전을 제기할 것인지도 궁금해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최근의 홍콩 시위는 30년 전 톈안먼 사태와는 본질에서 다르며, 홍콩 내부의 커져가는 정치적 불만을 드러낼 뿐 중국 전체의 상황을 반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 주석이 이런 시위를 마냥 두고 볼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최근의 홍콩 시위는 송환법 제정으로 홍콩 시민이 중국 본토에 임의적으로 인도되는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벌어졌다. 따라서 이 시위는 단순히 송환법에 대한 우려 만이 아니라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할 때 양국 사이에 합의된 기본법 아래 보장된 홍콩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중국이 갈수록 침해한다는 우려와 실망감이 시민들 사이에 커지면서 터져 나왔다. 홍콩특별행정구의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은 ‘홍콩은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않으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향후 50년 동안 유지한다’고 규정한다. 그동안 중국은 홍콩의 법원, 언론, 사법 시스템에 간섭할 수 없다는 뜻이다.그러나 근년 들어 이 약속이 점차 무시됐다. 2014년 중국 정부는 홍콩의 행정장관 선거 관련 토론에서 기본법이 약속하는 투표권을 홍콩 시민에게 부여하겠지만 행정장관 후보를 결정하는 권리는 중국 정부에 있다고 선언했다. 홍콩 시민이 선출할 수 있는 후보를 중국 정부가 선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면서 거의 3개월에 걸친 평화 시위가 벌어졌다. ‘센트럴을 점령하라’ 또는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시위였다.

일부 시위대는 중국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건물의 중국 국가 휘장에 검은 페인트를 뿌리며 강한 반중 정서를 표했다. / 사진:REUTERS/YONHAP
그다음 해 홍콩의 여러 서적상이 사라졌다가 중국에서 다양한 범죄로 기소됐다. 그들의 서점이 중국 지도부를 희화화하거나 비판한 책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중국 공안이 그들을 납치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 서적은 중국 내부에선 금서에 해당하지만 홍콩에서는 불법 서적이 아니다. 기본법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홍콩에서 그런 책의 판매를 금지할 권리가 없다. 곧 서적상 여러 명이 석방됐지만 중국계 스웨덴인 서적상으로 홍콩에서 활동하던 귀민하이는 스웨덴 외교관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가던 중 다시 체포된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지난해 8월 말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의 아시아뉴스 편집자 빅터 맬릿 홍콩 특파원은 홍콩 외신기자클럽(FCC)의 수석부회장 자격으로 지난 8월 말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민족당 전 대표 앤디 찬 초청 강연회 주최를 주도했다. 당시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는 홍콩민족당이 불법 정당이라는 이유를 들어 강연회 개최를 취소할 것을 종용했지만, FCC는 강연회를 강행했다. 그 뒤 맬릿 특파원의 홍콩 비자 연장이 불허됐다. FCC 강연회를 강행한 것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지시로 홍콩 정부가 보복 조취를 취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좀 더 넓게 보자면 홍콩에서 언론의 자유는 중국 정부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고 있다. 여러 매체가 각종 압력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또 지난해 홍콩 입법부는 홍콩 기차역에 중국과 공동 국경검문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의결했다. 이 검문소는 광저우-선전-홍콩 고속철도 여행을 용이하게 하는 동시에 처음으로 공동 국경 통제 구역을 설정함으로써 홍콩 내부에서 중국법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그뿐이 아니라 중국 정부는 ‘일국양제’ 개념도 노골적으로 무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2014년 6월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홍콩 특별행정구 일국양제 시행 백서’는 “일국양제의 ‘양제’와 ‘일국’을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양제’는 ‘일국’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일국’에 중점을 뒀다. 백서에는 “홍콩이 누리는 권리와 자치는 기본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중앙 정부의 허용에서 비롯된다”, “홍콩 관할권은 전면적으로 중국 중앙정부가 보유한다”, “홍콩의 ‘고도의 자치권’은 중앙정부가 부여하는 만큼만 누릴 수 있으며 그 이상의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등의 문구도 포함됐다. 사실상 홍콩의 자유와 민주는 중국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실현된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송환법 제정 추진 결정이 홍콩 시민의 권리를 더욱 약화시키려는 시도로 비치면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번 홍콩 시위는 30년 전의 톈안먼 사태와는 큰 차이가 있다.1989년 6월 4일 중국 당국의 폭력적인 진압에 의해 피로 얼룩진 톈안먼 사태는 그해 4월 15일 개혁파 지도자였던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후 전 총서기는 시장 개혁은 물론 정치 개혁과 민주화 등에도 호의적인 인물이었고, 청렴한 생활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1986년 말 대규모 민주화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다음 해 1월 총서기직에서 강압적으로 물러났다. 뒤이은 그의 사망은 전국적인 추모 물결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화 시위가 힘을 얻으며 경제 상황에 관한 불만이 겹쳐져 노동자들도 전국적으로 시위에 동참했다. 그에 비해 현재 홍콩의 시위는 중국 내부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는다는 증거가 거의 없다. 홍콩의 현실에 본토 인민들이 공감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1일 밤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 흰 티셔츠를 입은 남성들이 들이닥쳐 송환법 반대 시위자 등을 무차별 공격하는 ‘백색 테러’가 발생했다. / 사진:AP/YONHAP
동시에 중국 지도부는 홍콩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과 관련된 위험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1989년 당시만해도 중국 경제가 지금처럼 무역에 의존하지 않았다. 톈안먼 사태에서와 같은 유혈 진압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심한 압력을 받는 중국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국제 제재 등의 조치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실제로 첨단 기술 금수 등 30년 전 톈안먼 사태와 관련해 국제 사회가 중국에 부과한 제재 중 다수는 아직도 유효하다.

하지만 시 주석이 무한정 인내심을 발휘하리라고 내다보긴 어렵다. 그에게 홍콩 사태는 어려운 시기에 떠안게 된 추가적인 부담이다. 시 주석이 30년 전의 실권자였던 덩샤오핑 중앙군사위 주석과 리펑 총리처럼 대응하다가는 계속 집권할 수 있다고 해도 자신의 평판에 먹칠할 게 뻔하다.

아울러 시 주석은 현 상황을 시급히 해결하고 싶어한다. 무역전쟁이 길어지면서 중국의 공장과 노동자가 받는 고통이 더 커질 전망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열대거세미나방(옥수수 등에 큰 피해를 입힌다)의 확산도 식량 가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후베이성 우한에서 쓰레기 소각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는 중국 공산당의 이미지를 손상하는 다른 여러 문제를 상기시킨다. 홍콩의 경우 대규모 서방 언론이 주재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시위가 시 주석의 골칫거리를 더한다.

하지만 신속한 해결을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평화로운 마무리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시 주석은 홍콩 특별행정구의 운명을 홍콩 주민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시위에 학생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자영업자, 어머니까지 가세하면서 그런 욕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홍콩의 폭넓은 계층이 그에게 반기를 들면 통제권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안타깝게도 홍콩 대학생들이 입법원에 난입한 사건 등 최근 들어 갈수록 심해지는 폭력 시위는 시 주석에게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시위를 진압할 구실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만 문제가 있다. 2020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시 주석이 홍콩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대만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대만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일국양제’를 주창했다. 그러나 중국 국무원의 홍콩 일국양제 시행 백서는 그런 접근법에 관한 회의론을 더욱 부추겼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시 주석의 대응이 차기 대만 총통의 임기 끝까지 양안 관계에 큰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 딘 청



※ [필자는 미국의 정책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의 선임 연구원이다.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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