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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곰이 손잡고 독수리 추격

용과 곰이 손잡고 독수리 추격

다극화 세계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미국이 강하게 견제하면서 중 · 러 협력 갈수록 강화돼
지난 6월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 사진:XINHUA/YONHAP
미국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부상을 억제하려고 안간힘이다. 그러나 미국의 그런 노력이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 강화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물론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 두 나라가 세계 경제의 중심을 서에서 동으로 신속히 이전하기 위해 양자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질 생각이다.

지정학적 강대국으로 부상한 러시아와 중국은 현대 들어 서로 협력하거나 대치하면서 복잡한 역사적 관계를 이어왔다. 많은 분석가는 이 두 나라가 현재 주도적으로 다극화 세계를 열어간다고 본다. 탈냉전 시대의 세계 패권을 차지한 미국이 이제 위협받는다고 느끼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단독으론 미국에 도전하기 어려우며, 서로 힘을 합쳐야만 이 다극화된 세계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오스트리아 유럽안보정책 연구소(AIES)의 벨리나 차카로바 소장은 2015년 ‘드래곤베어(dragonbear, 중국을 상징하는 ‘용’과 러시아를 상징하는 ‘곰’을 통합한 표현)’라는 합성어를 제시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새롭게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차카로바 소장은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드래곤베어는 전통적 동맹 관계도 아니고 편의상의 정략적 연대도 아니며, 임시적인 비대칭 관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 관계는 중국이 주로 의제를 제시하고 러시아가 그 의제를 선별해 채택하는 식으로 이뤄진다.”그런 역학에선 “중국이 자금을 대고 러시아는 외교와 국방, 우주 등의 핵심 분야에서 가진 필수적인 노하우와 천연자원을 제공한다”고 차카로바 소장은 말했다.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적인 공급사슬에 맞서기 위해 북극 지방,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새로운 협력 관계가 탐구되고, 확대되고 있다. 드래곤베어는 세계 경제, 금융, 무역부터 외교와 정치적 관계, 군사, 국방, 전략적 동맹까지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는 원심력을 상쇄하기 위한 연대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현재 세계가 시스템 변환기에 있으며, 그 결과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그 여파가 자국에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공통의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기 원한다.”

지난 7월 31일 러시아 모스크바 동물원은 중국서 임대해온 자이언트 판다 루이의 세 돌 축하 파티를 열어줬다. / 사진:XINHUA/YONHAP
1960년대 중소 분쟁으로 세계의 양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중국이 서로 등을 돌린 이래 미국과 전통적 서방 동맹국들은 동방에서 그처럼 응집력 강한 블록이 등장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자 거의 곧바로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양국은 1994년, 1996년, 그리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첫 임기가 시작된 지 1년도 채 안 된 2001년 우호협력조약을 잇따라 체결했다.

그 후 약 10년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등장하기 몇 달 전 양국은 2012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정을 체결했다. 시 주석은 2013년 취임 후 첫 순방국으로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2014년엔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새로운 단계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 양국 관계의 격상에 합의했고, 10년간 끌어온 동부 시베리아 가스관 협상을 타결지었다.

그 이래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사실상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들은 30차례가량 만났고 회담때마다 양국 관계가 “전례 없는 최상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실무 차원에서 보면 두 나라의 뜻이 그리 잘 맞는 건 아니다. 러시아 스콜로보 경영대학원의 유라시아 최고경영자 프로그램 교수로 중국 문제 전문가인 올레그 레미가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양국 정상은 겉으로 서로 뜻이 잘 맞는 것 같지만 양국의 경제 관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개선할 점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레미가 교수는 “중국이 2011~2017년 러시아에 공식 투자한 액수는 160억 달러로 중국의 전체 해외 투자 중 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러시아의 에너지와 농업, 부동산 분야의 투자를 선호하며 러시아에 절실한 인프라 개선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양국이 최근 달성한 1000억 달러의 무역 규모도 사실 그리 크지 않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가 비교적 작고 중국의 금융 부문에서 러시아가 ‘고위험 국가’로 분류되는 현실이 양국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레미가 교수는 양국이 국가적 차원보다는 지역 차원에서 “새로운 협력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하듯이 중국에도 무역전쟁 등으로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그 분야에서 “상당히 괜찮은 거래”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경제와 국방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자 중국은 시 주석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RI)’에서 필수 파트너로 러시아를 선택했다. ‘신실크로드’ 또는 ‘육해상 실크로드’로 알려진 BRI는 아시아 전역을 포함해 아프리카와 유럽, 심지어 중남미까지 확대되는 야심적인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구상이다. 한편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제시한 유라시아경제연합[EEU, 러시아를 주축으로 카자흐스탄·벨라루시·키르기스스탄·아르메니아 등 옛 소련권 5개국이 서유럽 국가 중심의 유럽연합(EU)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한 연합체]을 강화하는 데 기회가 있다고 판단한다.지난 6월 두 정상은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신시대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강조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를 염두에 두고, 다자주의의 견지와 일방적인 무역 제재를 포함한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반대한다는 점을 강조한 공동성명은 올해 수교 70주년을 맞는 양국 관계가 역사상 가장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방향을 제시했다. 또 러시아는 시 주석이 추진하는 BRI를 지지하고, 중국은 푸틴 대통령이 추진하는 EEU를 지지하며, 그 두 프로젝트의 상호 교류 강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하얼빈에서 지난 6월 개막한 제6회 중러 박람회의 러시아관 개관식에 왕치산 중국 부주석 (가운데 오른쪽)과 막심 아키모프 러시아 부총리(가운데 왼쪽)가 참석했다. / 사진:XINHUA/YONHAP
레미가 교수는 “BRI와 EEU의 통합이 상당히 유망하다”고 말했다. 유럽과 중국을 연결하는 새로운 대륙 간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를 연결하는 약 2000㎞의 ‘메리디안 고속도로’ 건설 같은 야심적 프로젝트가 그 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메리디안 고속도로’가 BRI와 EEU 사이의 대형 협력 프로젝트에서 바람직한 사례가 될 것이다.” 그 외에 레미가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통화와 유로를 사용하는 거래를 늘리려는 방침도 지적했다.

차카로바 소장도 그에 동의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 제3자가 개입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을 방지하고, 이 지역에서 중러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이곳의 BRI와 EEU를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차카로바 소장은 “BRI와 EEU의 공생 관계는 아직 대부분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양자 관계의 상징적 의미를 가질 뿐”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국방 협력에 관심이 많다. 러시아로부터 첨단 기술과 정교한 무기를 전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의 전략적 관계는 군사 협력을 바탕으로 할 수도 있다. 러시아는 서방으로부터 고립된 상황이기 때문에 막강한 동맹이 필요하지만 중국은 자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하면서도 믿을 만한 파트너를 원한다.”

레미가 교수는 이 방정식을 더욱 단순하게 만든다. “중국은 많은 돈을 들고 다니는 ‘빅 가이’이고, 러시아는 큰 총을 들고 다니는 ‘빅 가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중국은 큰 총이 필요하다.” 그는 또 전형적인 중국 관리들을 두고 이렇게 묘사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다차원적 외교 정책을 추구하며, 어떤 군사 분쟁에도 개입할 생각이 별로 없다. 그들은 입장을 다변화하고, 모든 나라와 대화하며, 엄중한 상황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경제적으로 세계적인 입지를 가졌기 때문에 해외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동맹 세력이 필요하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아시아 파워·외교 프로그램 소장 에르베 르마휴는 지난 5월 ‘아시아 파워 지수’ 보고서와 관련해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중국의 세계 무역에서 2% 정도만 차지할 뿐이지만 그래도 중국의 자원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에너지 순수입국으로 현재 연간 5억8900만 석유환산톤(여러 가지 단위로 표시되는 각종 에너지원을 원유 1t이 발열하는 칼로리를 기준으로 표준화한 단위)을 수입한다. 따라서 중국이 잠재적인 에너지 공급망 붕괴에 대비할 수 있는 필수적이며 전략적으로 일치하는 에너지 공급국이 러시아다. 반면 러시아는 지역의 주요 방위 파트너로 중국을 중시한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베트남·인도와 더 가까운 관계였지만 이제는 중국이 우선이다. 지난 5년 동안 실시된 러시아 군사 합동훈련의 28%에 중국이 참가했다.”거기에는 지중해 최초의 합동 훈련, 러시아 현대사에서 최대 규모였던 ‘동방-2018’ 훈련(중국 외 몽골도 참가했다), 또 오랜 적대국인 인도와 파키스탄(각각 러시아와 중국의 전통적 파트너다)도 처음으로 함께 참가한 새로운 대테러 합동 훈련도 포함된다.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에서 시작된 군사훈련 ‘동방-2018’에는 중국과 몽골도 참가했다. / 사진:AP/YONHAP
레미가 교수는 “합동 훈련의 횟수가 계속 늘어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같은 방식의 중러 동맹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동맹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선 태평양의 이익을 지탱하기 위해 러시아가 필요하다. 우선 해결되지 않은 대만 문제가 여전히 중요하다. 아울러 석유와 액화 천연가스, 석탄 등 중국 경제에 필수적인 에너지 자원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한다는 사실도 중국으로선 큰 문제다. 미국이 그곳에 전함을 배치해 중국의 에너지 운송을 차단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는 아시아의 군사 분쟁에 개입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는 아시아에서 경제 협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따라서 나토 같은 공동방위 동맹체제는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세계 원유 운송의 더 중요한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진 최근의 사태는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곳에선 유조선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됐다. 또 지구 반대편의 베네수엘라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대신 야권 지도자를 지지함으로써 중앙아메리카의 또 다른 친중국 정부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베네수엘라에 중국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자랑하듯이 에너지 독립을 거의 이뤘지만 전 세계의 자원 흐름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애쓴다. 아울러 동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미국의 첨단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다 미국의 ‘중-단거리핵전력 금지 협정(INF)’ 폐기에 따라 곧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까지 추가될 예정이다(마크 에스퍼 신임 국방장관은 미국이 INF를 탈퇴한 다음 날인 지난 8월 3일 “새로 개발하는 중거리 크루즈 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을 아시아에 배치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그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전면 지배를 막기 위한 공조 체제를 강화할 명분이 더 커졌다.

차카로바 소장은 “중국과 러시아는 서로에게 천적과 같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특정 역사적인 적대감이 포함된 문제나 양자 관계에 심각한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를 서로가 의도적으로 피한다. 하지만 러시아가 서방에서 배척당하고(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으로 제재를 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새로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양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인 협력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국이 양국 각각을 향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곧 갈라설지 모른다는 기대가 계속 무너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두 나라의 관계는 더 돈독해진다. 차카로바 소장은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드래곤베어가 미국에 반기를 드는 것이 공통의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체계적인 협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국익이 교차하는 부분에서 세부적인 긴장이 발생하지만 그보다는 미국에 공동 대처하는 문제가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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