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여전히 표류하는 브렉시트] 英, 브렉시트 합의안 합의 못해 EU에 기한연장 요구

[여전히 표류하는 브렉시트] 英, 브렉시트 합의안 합의 못해 EU에 기한연장 요구

새 합의안 영국 하원 문턱 못 넘어… EU, 10월 28일 긴급 정상회의 열어
브렉시트 강경론자인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 사진:연합뉴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오줌통에 빠졌고 곧 똥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1870년 9월 1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프랑스 동부 스당에서 몰려오는 프로이센과 바이에른의 군대에 맞서던 프랑스군 사령관 대리인 오뤼스트알렉상드르 뒤크로(1817~1882년) 장군은 이렇게 외쳤다. 영어권과 프랑스어권에서 재앙적 상황 속에 패배가 불가피한 현실을 표현할 때 흔히 인용하는 말이다. 당시 프랑스군 12만 명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자와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이 이끄는 프로이센군과 교전하다 패해 스당 요새로 퇴각했다. 전선에 나왔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도 함께 요새로 몸을 피했지만 프로이센군의 포위망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9월 2일 나폴레옹 3세는 남은 프랑스군 8만3000명과 함께 항복해 포로가 됐다. 이 치욕적인 소식을 들은 파리에선 반란이 일어나 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선포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순간이다.
 프랑스, 기한연장에 반대
지금 영국이 1870년 9월 스당에서 프랑스군과 나폴레옹 3세 황제가 당한 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한없이 삐걱거리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과정 때문이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10월 17일 EU 정상회의 개막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벌인 막판 재협상에서 극적인 합의(새 브렉시트 합의안)를 이뤘다. 영국 하원은 10월 19일 새 합의안을 놓고 의회를 열었지만, 법안을 투표에 붙이지도 못했다. 문제는 영국 하원이 10월 19일까지 브렉시트 법안을 통과하지 못하면 브렉시트 기한을 10월 31일에서 내년 1월 31일로 추가 연장하도록 하는 내용의 유럽연합(탈퇴)법을 지난달 말 입법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영국 하원은 브렉시트를 내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하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19일 EU에 보냈다. 존슨 총리는 더 이상 브렉시트를 연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률을 어긴다는 지적이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서한을 보냈다. EU 의회는 10월 25일 영국의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승인할 지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회원국이 이를 승인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2주만 연기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10월 28일 긴급 정상회의에서 이를 논의할 수도 있다.

브렉시트 강경론자인 존슨 총리는 전임자인 테리사 메이 총리가 체결했던 합의안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재협상을 밀어붙였다. 메이의 합의안은 영국이 약 390억 파운드의 ‘탈퇴 위자료’를 EU에 주고, 영국 내 EU 시민 320만 명의 체류 권리를 보장하며 영국 땅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사이의 국경에 백스톱 장치를 유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백스톱 조항은 영국이 EU 회원국과 유일하게 (영국령 지브롤터 제외) 육지에서 국경을 맞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통행과 통관 자유를 보장하고 국경 관리의 엄격화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존슨 총리는 백스톱 조항이 영국을 EU 관세동맹 체계 안에 잔류하게 만들어 진정한 EU 탈퇴와 경제 독립, 그리고 주권을 실현할 수 없게 한다고 주장하며 취임 뒤 재협상을 추진했다. 존슨은 만일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고 밝히면서 EU를 압박했다. 노딜 브렉시트는 무역과 국경 문제에 대해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탈퇴하는 것을 말한다. 영국이 중간 이행 과정에 대한 합의 없이, 즉 노딜 브렉시트로 EU의 단일 시장과 단일 세관 관련 합의에서 벗어날 경우 EU와 영국 양쪽에서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교역 물품의 통관 절차와 관세 부과에 대한 아무런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자칫 영국에 들어오는 생필품의 공급이 끊길 우려도 있다. EU 국가도 혼란과 피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다.

존슨의 합의안은 전환 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 권리를 비롯한 기존 합의안의 핵심 골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백스톱 조항의 대안으로 북아일랜드에 영국과 EU 관세를 모두 적용하기로 한 것만 달랐다. 북아일랜드를 법적으로는 영국 관세를 따르게 하고, 실질적으로 EU 관세동맹에 남기는 내용이다. EU와 영국 간의 관세 국경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이 아닌 아일랜드 섬(주권국가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가 있음)과 그레이트 브리튼 섬(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가 있음) 영국 사이에 세워지도록 하는 묘한 절충안이다.

하지만 결국 새 브렉시트 합의안은 영국 하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영국 하원은 총 650석인데 존슨 총리의 집권 보수당이 289석, 제1야당인 노동당이 244석으로 원내 1, 2당이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 외에 스코틀랜드 국민당(35석), 자유민주당 (9석), 민주연합당(10석), 신페인(7석), 웨일스민족당(4석)과 무소속 등이 나머지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제1 야당인 노동당은 합의안에 반대한다. 여기에 북아이랜드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영국 잔류파 정당으로 보수당의 연립정부 파트너인 민주연합당 대표도 반대를 공언해왔다.
 노동당 등 야당 대부분이 합의안 반대
스코틀랜드국민당도 반대 의사 밝혔다. 민주연합당은 새 합의안이 “벨파스트 협정의 신성함을 무시하는 것으로 북아일랜드의 장기적 이익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1998년 4월 10일 체결된 벨파스트 평화협정은 영국과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8개 정당이 모여 30여 년에 걸친 북아일랜드 내 신구교도 갈등을 봉합한 약속이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섬 전체를 영토로 규정한 헌법 2조를 개정해 북아일랜드에 대한 흡수통일을 포기하고 북아일랜드의 장래는 주민들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영국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온 무장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군(IRA)은 무장해제를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했다. 이는 양국이 모두 EU의 단일 시장에 포함되면서 더욱 진척됐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이 국경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다시 국경을 긋는 문제는 단순히 관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인적·물적 왕래를 보장함으로써 아일랜드의 경제적·문화적 통일성을 유지한다는 벨파스트 협정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브렉시트로 인해 물리적 국경이 들어서는 것 원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섬에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정치·경제적 소외를 받아왔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번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을 혼자 뒤집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북아일랜드 주민 중 브렉시트 지지파는 영국의 브렉시트에서 일시 제외되면서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잠시, 브렉시트 과정을 복기해보면 문제가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영국(영국령 지브롤터 포함) 국민은 2016년 6월 29일 유럽연합(EU) 잔류(Stay)와 탈퇴(Leave)를 놓고 국민투표를 한 결과 EU를 떠나는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총 유권자 4650만1241명 가운데 3357만8016명(72.21%)이 투표해 이 가운데 찬성 1741만742표(51.89%), 반대 1614만1241표(48.11%)로 브렉시트가 결정됐다. 영국 정부는 2017년 3월 29일 리스본 조약의 제50조의 탈퇴 조항을 발동해 브렉시트 협상에 나섰다. 리스본 조약은 2009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발효한 EU의 헌법으로 그 중 제50조는 EU 회원국의 탈퇴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탈퇴를 원하는 회원국이 유럽이사회에 이를 통보하면 EU는 협상을 통해 ‘탈퇴 협정’을 체결한다. 탈퇴 협정은 유럽의회의 동의를 받은 다음 회원국 정상들의 협의기구인 유럽이사회에서 체결하게 된다.

탈퇴를 위해선 EU 내 인구의 65% 이상, 28개 회원국 중 16개국 이상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그런 다음 탈퇴 국가를 제외한 다른 27개국이 의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해 4월 29일 EU 정상회의는 EU 집행위원회에 협상 권한을 부여했으며, 그해 5월 EU 집행위는 탈퇴 협상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5~6월에 탈퇴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은 2018년 10월 완료할 예정이었으며, 그해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영국 하원과 유럽이사회, 유럽의회가 최종협상안을 표결로 통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탈퇴 일정은 협상안이 영국 하원에서 통과되지 않으면서 뻐걱거렸다. 원래 영국은 제50조를 발동한지 2년이 되는 2019년 3월 29일 EU를 떠나기로 했다. 첫 브렉시트 시한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시한인 3월 29일까지 영국 하원은 법안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는 올해 4월 EU 정상회의서 탈퇴 시점 연기를 제안할 수밖에 없게 됐다. 회원국 정상들은 만장일치로 이를 받아들여 브렉시트 시한을 10월 31로 연기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시한이 되기 전에 탈퇴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합의안은 하원에서 통과되지 못했으며, 메이 총리는 결국 7월 23일 총리에서 물러났고 보수당 내 경선에서 승리한 보리스 존슨이 7월 24일 새 총리에 취임했다. 브렉시트 강경론자인 존슨 총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10월 31일 EU를 탈퇴하겠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선 국민투표 움직임도
그는 메이 총리가 EU와 합의했던 협정안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만일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딜 브렉시트’를 하겠다고 밝혔다. 노딜 브렉시트는 무역과 국경 문제에 대해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탈퇴하는 것을 말한다. 존슨 총리는 10월 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회의 개막을 몇 시간 앞두고 브렉시트 재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했지만, 의회에서 시동이 꺼진 셈이다. 브렉시트의 험난한 과정은 EU 탈퇴가 국내와 국제 정치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여실이 보여주고 있다. 역으로 EU 탈퇴를 주장해 온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의 극우 정치인이 더 이상 이를 거론하지 못하게 하는 긍정적인 역효과도 유발하고 있다. 브렉시트로 영국은 국가 이미지에서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다. 의회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영국에선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다시 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혼란이 혼란을 낳는 형국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효성, 형제 독립경영 체제로…계열 분리 가속화 전망

2윤 대통령, 이종섭 호주대사 면직안 재가

3행안부 “전국 26개 사전투표소 등 불법카메라 의심 장비 발견”

45대 저축은행 지난해 순이익 1311억원…전년比 81.2% 급감

5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

6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

7남양유업, 60년 ‘오너 시대’ 끝...한앤코 본격 경영

8하나은행, 은행권 최초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금 지급

9행안부 “전국 18개 투·개표소 불법카메라 의심 장치 발견”

실시간 뉴스

1효성, 형제 독립경영 체제로…계열 분리 가속화 전망

2윤 대통령, 이종섭 호주대사 면직안 재가

3행안부 “전국 26개 사전투표소 등 불법카메라 의심 장비 발견”

45대 저축은행 지난해 순이익 1311억원…전년比 81.2% 급감

5조석래 명예회장 별세…기술 효성 이끈 ‘미스터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