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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결정장애인가

당신도 결정장애인가

고를 수 있는 가짓수 많을수록 유리할 수도 있고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어… 어느 정도여야 소비자에게 먹힐까
슈퍼마켓에서 브랜드가 너무 많으면 어떤 것을 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 사진:REUTERS/YONHAP
슈퍼마켓에 가면 진열된 상품의 종류와 브랜드가 너무 많아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는가? 스마트폰을 새로 사거나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때 가격과 보험료를 비교하면서도 무엇으로 결정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가?

이처럼 ‘많을수록 좋다’는 개념을 반박하는 소비자 행동 연구가 많이 나온다. 그런 연구는 선택지가 너무 많을 경우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아예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사람은 선택 사항이 많을수록 좋아하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린다. 우리의 새 연구는 자신이 선택 사항이 많은 것을 즐기는 성격인지 부담스럽게 느끼는 성격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최소한 몇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단 하나만 있을 때보다 나은 것은 확실하다. 예를 들어 자기공명 영상장치(MRI)를 사용한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는 특정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뇌의 보상과 동기유발 회로가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직장에서 근무시간을 마음대로 선택하는 등 자신이 자율권을 가질 수 있다는 느낌은 웰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이 다양한 활동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 자존감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런 본능적인 선택 선호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낫다고 믿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 동안 그런 전제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시나 아이엔가와 마크 레퍼는 슈퍼마켓 쇼핑객을 대상으로 선구적인 실험을 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주의 한 식품점에서 다양한 잼을 시식한 후 살 수 있도록 했다. 실험 조건을 두 가지로 나눴는데 6가지의 잼과 24가지의 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선택할 수 있는 잼이 적었던(6가지) 쪽은 잼을 시식한 고객이 40%였으나 실제로 구매한 고객은 12%였다. 반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잼이 많았던(24가지) 쪽은 잼을 시식한 고객이 60%였지만 실제로 구매한 고객은 2% 미만이었다. 선택할 것이 너무 많으면 혼란을 일으켜 결정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인간의 의사결정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는 선택지를 추가할수록 선택하는 상황이 매력적이라기보다 부담스러워진다는 점을 시사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선택이 반드시 축복은 아니라는 증거를 뒷받침하는 결과다. 실제로 어떤 경우엔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호주 시드니대학의 경제학자 로버트 슬로님은 기업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선택 마비’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소비자가 주도권을 가진 듯이 느끼도록 하기 위해 많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는 우리 대다수를 잘못된 결정이나 결정 기피로 이끈다.” 그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에너지 시장에서 그런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그러나 정확히 어느 정도로 선택지가 많아야 역효과가 나기 시작할까? 아이엔가와 레퍼의 실험은 참가자에게 6가지와 24가지의 선택지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일부 참가자는 12가지 선택지가 주어져도 6가지 선택지가 제공되는 상황에서처럼 결정을 잘할 수 있을까? 또 그 정도로 선택지가 제공되면 더 좋아할까?

스위스의 경제학 심리학자 벤야민 샤이베헨과 동료들은 이 분야에서 실시된 연구 50건(학술지에 실린 것만이 아니라 발표되지 않은 것도 포함됐다)을 분석한 결과 개인에게 언제 어느 시점에 과잉 선택지가 부담되는지 일괄적인 예측을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과잉 선택지의 부담이 생길 수 있는 여러 중요한 전제조건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사용 가능한 데이터에 근거해서 볼 때 선택지 증가가 만족도와 선호 강도, 선택 동기를 감소시키는 시점과 이유를 설명하는 충분한 조건을 정확히 가려낼 수는 없었다.”

나는 동료 매튜 차일린스키, 코 데 루이터, E. 토리 히긴스와 함께 선택지의 규모와 관련해 개인마다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했다. 현장, 실험실, 온라인 실험을 통해 우리는 성격적 특성과 선택지를 다룰 수 있는 능력 사이에 강한 상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는 더 많은 선택지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지 부담스러워하는지 상당히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퀴즈를 사용했다(표 참조). 미국과 이탈리아 연구자들이 개발한 이 퀴즈는 선택을 미룰 가능성과 자동 선택을 받아들일 가능성 등 소비자 관련 영역에서도 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이 소비자를 ‘마비’시키려고 의도적으로 광범위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더 많은 선택지가 실제로 더 나은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자신의 성격을 아는 것이다. 조사하고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요즘 같은 시대엔 행운아다. 충분한 정보에 기초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선택지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자신의 성격이 평가 지향적이 아니라면 자신의 한계를 알고 ‘선택 마비’나 잘못된 결정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프랭크 매스만, 게리 모티머



※ [필자 프랭크 매스만은 호주 퀸즐랜드공과대학 부교수, 게리 모티머는 같은 대학 교수로 마케팅·소비자 행동을 연구한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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