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보랏빛 왕국’을 가다

‘보랏빛 왕국’을 가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프린스의 자택 겸 스튜디오가 박물관으로 탈바꿈
프린스의 자택 겸 스튜디오였던 페이즐리 파크는 많은 사람이 성역으로 여기는 곳이다. / 사진:BLOG.THECURRENT.ORG
굵은 철사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엮은 울타리를 지나니 교외의 복합 상업 지구에서 볼 법한 흰색 2층 건물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 건물은 그렇게 평범하고 재미없는 사무실 빌딩이 아니다. 여기는 미국의 전설적인 뮤지션 프린스의 자택 겸 스튜디오였던 페이즐리 파크(Paisley Park)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외곽에 있는 이곳에는 녹음실과 사운드스테이지(오디오 제작을 위해 방음 처리된 방), 클럽, 프린스의 패션 디자이너들을 위한 스튜디오, 농구 코트, 그리고 그의 개인 거처 등이 자리 잡았다. 페이즐리 파크는 프린스 자신이 그랬듯이 많은 사람이 성역으로 여기는 곳이다. 지난 11월 초 페이즐리 파크를 방문한 나는 프린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내부 곳곳을 둘러보는 투어에 참가했다.

사실 그때는 페이즐리 파크를 방문하고 프린스를 주제로 한 미니애폴리스 투어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였다. 프린스의 미완성 회고록 ‘더 뷰티풀 원스(The Beautiful Ones)’가 막 출간됐고, 1982년 발표된 그의 앨범 ‘1999’의 리매스터링 버전이 곧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이 앨범은 지난 11월 29일 발표됐다).

난 5년 전 우연히 미니애폴리스에 갔다가 프린스가 그날 밤 페이즐리 파크를 개방해 파티를 연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실 그때 난 나의 음악적 우상인 프린스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그곳에 갔다. 지난 30년간 단 하루도 프린스의 음악을 듣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열성팬인 나로서는 마침 미니애폴리스를 방문한 날 그렇게 보기 드문 행사가 열린다는 게 보통 행운이 아니었다. 프린스의 궁전이 대중에 공개되는 정말 귀한 기회였다.

프린스는 그날 밤 파티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들은 그가 그곳에 왔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딘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파티에 참석한 사람은 200명 정도 됐는데 우리는 천장이 높은 사운드스테이지에서 DJ가 틀어주는 프린스의 음악에 맞춰 새벽 3시까지 춤췄다. 음식도 몇 가지 나왔는데 그중엔 1980년대에 찰리와 에디 머피가 페이즐리 파크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룬 ‘채플스 쇼’의 에피소드로 유명해진 팬케이크도 있었다.

그 후로는 페이즐리 파크에 다시 가볼 기회가 없었다. 2016년 4월 21일 나는 독일 베를린에 있었는데 저녁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전처(그녀와 나는 지금도 좋은 친구다)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아주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자리에 앉아서 들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나서 10초 뒤 ‘프린스가 사망했다’는 메시지가 왔다.난 내가 프린스와 그의 작품에 왜 이렇게 끌리는지 그 이유를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단지 그의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듣기 좋고 전염성 있는 음악을 작곡하는 재능을 타고났고 몇 가지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뤘다(기타는 지미 헨드릭스, 피아노는 스티비 원더만큼 잘 쳤다). 또 마이클 잭슨을 능가할 정도로 춤을 잘 췄고 제임스 브라운처럼 밴드를 이끌었다.

페이즐리 파크 내부. 이제 팬들은 프린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이곳을 둘러보는 투어에 참가할 수 있다. / 사진:FACEBOOK.COM
프린스는 1960~70년대 최고의 소울과 펑크(그리고 록과 포크의 일부 측면)를 흡수해 그것을 자신의 과감한 스타일과 결합해 장르를 뛰어넘는 그만의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프린스는 모차르트처럼 재능을 타고난 뮤지션이었으며 완벽주의자였다. 그에게는 누구도 못 보는 것을 보는 깊은 통찰력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여성적인 측면을 인정하고 활용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갔다. 프린스는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페르소나를 창조해 그가 과연 이 지구에 속한 사람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는 잠을 거의 안 잤다. 내가 언젠가 펑크의 전설 조지 클린턴에게 프린스가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양쪽 다”였다.

프린스는 ‘The Question of U’라는 노래에서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은 뭔가요(And so what is the answer, to the question of U)?’라고 노래했다. 난 페이즐리 파크를 두 번째 방문한 그 날 투어를 앞두고 과연 프린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또 내가 평생 왜 그렇게 그에게 끌렸는지 그 의문을 풀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프린스의 자택을 둘러봄으로써 이 종잡을 수 없는 천재에 관해 뭔가 새로운 걸 알게 될까? 문을 들어서면서 마음속 깊은 곳까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전날 나는 프린스와 관련 있는 미니애폴리스 시내 곳곳을 혼자 둘러봤다. 영화 ‘퍼플 레인’(1984)의 많은 장면이 촬영된 클럽 퍼스트 애버뉴(First Avenue)와 영화 속에서 그를 상징하는 캐릭터 ‘키드’가 살았던 스넬링 애버뉴의 집을 방문했다. 프린스가 좋아했던 레코드 상점 일렉트릭 피터스(Electric Fetus)에도 가봤다.난 또 페어뷰 파크(Fairview Park)에 가서 에스더 오샤얀데의 설치미술 ‘보라색 빗방울(Purple Raindrop, 높이 4.5m)’을 봤다. 미니애폴리스 관광 당국이 웹사이트에 프린스 관련 장소들을 돌아보는 투어를 소개해 모두 찾기가 아주 쉬웠다. 프린스를 주제로 한 가이드 딸린 투어를 원한다면 그것도 가능하다.

2016년 마지막 순회공연 ‘피아노와 마이크로폰 투어’ 당시의 프린스. / 사진:ARCHIVE.ORG
페이즐리 파크를 둘러보니 프린스는 서서히 이곳을 자신의 성지로 만들 준비를 했던 것 같다. 2000년 무렵 그는 그동안 받은 각종 상과 골드 레코드(판매 기록 50만 장 이상), 플래티넘 레코드(판매 기록 100만 장 이상) 등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또 순회공연 당시 사용했던 소품과 영화 세트 등을 전시하는 방도 만들었다. 페이즐리 파크의 투어 가이드는 우리에게 이 투어를 위해 새로 꾸며진 몇몇 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프린스가 사망하던 날 상태 그대로 보존됐다고 설명했다.

2명의 가이드(남녀 각각 1명으로 둘 다 보라색 튜닉을 입었다)가 우리를 햇살이 비치는 아트리움으로 안내했다. 프린스가 이 건물에서 가장 좋아했던 곳이다. 푸른 바탕에 간간이 흰 구름이 그려진 벽이 유리 피라미드 지붕으로 이어진다. 그 유리 지붕을 통해 비치는 자연광이 방 안을 가득 메운다. 남자 가이드는 “이 아트리움은 프린스가 가장 편안하게 느꼈던 방”이라면서 “그는 이곳에 들어오면 완전히 평온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위쪽을 올려다보며 “그의 유골을 이곳에 둔 것도 그래서다”라고 덧붙였다.

약 3m 위 푸른색 벽과 유리 지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반투명한 상자 안에 프린스의 유골이 안치됐다.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 프린스에게 잠시 경의를 표하자”고 가이드는 말했다. 순간 내 가슴과 머리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우리는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난간의 새장에 있던 비둘기 두 마리의 울음소리가 정적을 깼다. 어쨌든 그 후 프린스의 유골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들었다.

잠시 후 우린 그 옆 방들을 둘러봤다. 각 방이 프린스의 중요한 앨범을 주제로 꾸며졌다. ‘Dirty Mind’ ‘Controversy’ ‘Sign o’ the Times’ ‘Lovesexy’ 등등. 한 시대를 정의했던 프린스의 의상과 악기, 기념품도 전시됐다. 각 방의 뒤쪽 벽에서는 각 앨범의 홍보 투어 때 콘서트 장면이 상영됐다.그 방 중 하나는 프린스의 사무실이었다. 마치 그 전날까지도 그가 책상에 앉아 있었던 듯 보였다. 고대 이집트에 관한 두툼한 서적들과 성경을 포함해 책이 꽤 많았다. 주방에는 간이 식당 스타일의 부스 몇 개와 커다란 TV, 소파 하나가 놓여 있었다. 프린스는 그 소파에 앉아 팬케이크를 먹으며 NBA 농구 경기를 봤다. 또 마지막 순회공연 ‘피아노와 마이크로폰 투어(The Piano and a Microphone Tour)’의 준비차 레이 찰스와 스티비 원더의 오래전 공연 비디오를 보며 연구했다.

1982년 발표된 그의 앨범 ‘1999’의 리매스터링 버전이 지난 11월 29일 발표됐다 (오른쪽 사진). 페이즐리 파크 기념품 상점에서는 프린스의 상징이 새겨진 기념품을 판매한다. / 사진:AMAZON.COM, FACEBOOK.COM
그다음엔 그의 녹음실들을 구경했다. 더블 앨범 ‘Sign o’ the Times’를 녹음했던 방과 더블 플래티넘 앨범 ‘Diamonds and Pearls’를 녹음했던 방 등등.

가이드는 프린스가 말년에 녹음한 펑키한 재즈 연주곡을 들려줬다. 그러고 나서 밝은색으로 꾸민 복도로 우리를 안내했다. 액자에 넣은 골드 레코드, 플래티넘 레코드들, 그리고 프린스가 받은 그래미 트로피 7개가 줄지어 전시됐다. 앨범과 영화를 주제로 한 방은 영화 ‘퍼플 레인’으로 받은 아카데미 트로피를 그의 오토바이와 함께 전시했다. 그다음 우리는 사운드스테이지로 자리를 옮겼다. 5년 전 팬들을 위한 파티가 열렸던 곳이다. 대형 스크린에선 여러 순회공연의 콘서트 장면이 방영됐다.

투어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가이드는 프린스의 2007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비디오가 상영되는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고는 투어를 끝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념품점을 구경했다. 남녀를 각각 상징하는 기호를 합쳐놓은 듯한 프린스의 심볼이 새겨진 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우리는 프린스가 사망 당일 발견됐던 엘리베이터는 못 봤다. 그의 거처가 있던 건물 2층에도 올라가 보지 못 했다. 또 프린스의 미발표 녹음 수천 곡이 보관된 금고가 있는 지하실도 구경할 수 없었다.

난 페이즐리 파크의 기념품 상점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게 있다. 누구도 감히 프린스를 흉내 내거나 그와 같아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의 위대함을 모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자기다워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지 말고 자신 있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이 돼라.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어라. 아니면 프린스가 자신에 관한 곡 ‘Cream’에서 노래했듯이 ‘규칙을 만든 다음 그것을 깨트려라. 당신은 최고니까(Make the rules and then break them all, ‘cause you are the best).’

자동차까지 걸어가는 동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프린스가 1985년 발표한 ‘Paisley Park’였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코러스 부분을 노래했다. ‘이 공원에 입장하기는 정말 쉽다/그냥 ‘믿는다’고만 말하면 된다, 그리고 당신 마음속에 있는 이곳으로 오라(Admission is easy/Just say you believe, and come to this place in your heart).’

- 데이비드 팔리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NH투자증권, 1분기 영업익 2769억원…전년比 10.1%↑

2“SU7, 모델 3 이겼다”...테슬라 넘었다는 샤오미

3KB금융, 1분기 순익 1조491…전년比 30.5% ‘털썩’

4베일 벗은 공매도 전산시스템…완비 때까지 ‘공매도 금지’ 연장되나

5KB부동산 “전세안전진단 서비스…10건 중 2건 ‘위험’ 등급“

6파랗게 물든 제네시스, 베이징 모터쇼 사로잡았다

7아워홈 임시주총 요청한 구본성...'본인·아들' 사내이사 선임 안건

8“날개 달린 차, 하늘을 달린다”...‘베이징 모터쇼’ 달군 中 샤오펑

9그랜드벤처스, 코드모스 운영사 '로지브라더스'에 시리즈 A 라운드 투자

실시간 뉴스

1NH투자증권, 1분기 영업익 2769억원…전년比 10.1%↑

2“SU7, 모델 3 이겼다”...테슬라 넘었다는 샤오미

3KB금융, 1분기 순익 1조491…전년比 30.5% ‘털썩’

4베일 벗은 공매도 전산시스템…완비 때까지 ‘공매도 금지’ 연장되나

5KB부동산 “전세안전진단 서비스…10건 중 2건 ‘위험’ 등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