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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 고객들 “덜 쌓이고 더 많이 써야” 반발

[논란의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 고객들 “덜 쌓이고 더 많이 써야” 반발

공정위, 대한항공에 개편안 재검토 요청… 소급적용 여부 놓고 소송으로 비화 가능성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개편안에 고객 불만이 커지며 갈등을 빚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13일 마일리지와 현금을 섞어 항공권을 구입하는 ‘복합결제’ 등 마일리지 적립·사용과 관련된 프로그램(스카이패스)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미 발급된 마일리지를 재산권으로 인식하는 고객들은 마일리지 가치가 낮아졌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예컨대 미주·유럽 장거리 구간은 대부분 마일리지를 더 소진해야 하고,이코노미석 이용객 적립률이 대체로 낮아졌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달 26일 대한항공에 개편안 재검토를 요청했다. 대한항공 측은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더욱 합리적인 기준으로 마일리지를 적립·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이라면서도 “올 11월부터 새로운 스카이패스 제도를 시범 운영하면서 소비자 불만을 적극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의 재검토 요청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대한항공의 제도 변경을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법무법인 태림의 박현식·김동우·하정림 변호사는 온라인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서 공정위에 약관심사청구를 요구할 소비자를 모으고 있다. 공정위가 대한항공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시정명령을 내리도록 하려는 의도다. 김동우 변호사는 “공정위에 불공정 약관 심사를 청구할 계획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민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11월부터 시범 운영하며 보완”
법조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약관을 개정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이를 기존 마일리지 보유자들에게 ‘소급적용’ 할 경우 위법 소지가 크다고 본다. 화난사람들의 대표이사인 최초롱 변호사는 “마일리지는 승객들의 재산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약관 변경은 재산권 사용 조건을 승객에게 불리하게 변경한 것으로 법적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일리지를 ‘재산권’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2011년 지방법원 판결에서 ‘마일리지를 보유하고 이를 이용하는 고객의 권리는 단순한 기대권을 넘어서 재산권으로 보호된다’고 판시한 판례가 있다”고 답했다. 대한항공은 기존 마일리지에도 변경안을 소급적용 할 예정이다.

과거에도 항공사의 마일리지 제도 변경 과정에서 소급적용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2003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보너스 항공권을 발급에 공제하는 마일리지를 늘리는 제도 개정을 추진했다. 당시 공정위는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마일리지의 가치를 소급 변경하도록 하는 약관조항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와 항공사들은 당시 수차례의 논의 끝에 기존 고객에 대한 마일리지 혜택에 2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으로 합의했다. 2008년 마일리지에 10년의 유효기간을 설정할 때도 기존 마일리지에는 이를 설정하지 않았다.

경기 침체, 여객 감소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은 누적된 마일리지에 부담을 안고 있다. 지금까지 발급된 마일리지는 재무제표에서 부채에 포함되는 ‘이연수익’ 항목으로 잡힌다. 1984년(대한항공)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한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 3분기 말 기준 이연수익으로 인식한 마일리지 규모는 2조3111억원으로 전체 부채(23조2917억원)의 10%에 이른다. 아시아나항공도 총부채(8조7876억원)의 8.2%인 7238억원이다. 특히 지난해 새로운 회계기준 도입으로 운용리스 항공기 비용을 부채로 인식해야 해서 마일리지 부담이 어느 때보다 크다.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제도에 칼을 빼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두 항공사는 누적 마일리지에 따른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정위와 수차례 논의한 끝에 2008년 마일리지에 10년의 ‘유효기간’을 설정했다. 그런데 이게 부메랑이 됐다. 소멸 시기가 도래하자 보너스 항공권이 부족해 마일리지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빗발쳤고, 공정위가 나서 마일리지와 현금을 섞은 ‘복합결제’ 등의 도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이번 개편안도 공정위의 권고에 따라 내놓은 것이다. 소비자단체 등은 마일리지 사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복합결제 도입 외에 ▶마일리지 양도·판매 허용 ▶유효기간 적용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허희영 항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 항공사의 경우 대부분 2~3년마다 마일리지가 소멸되는 반면 국내 두 항공사는 30여 년간 누적된 마일리지 금액이 3조원에 이른다”며 “항공사의 재무구조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한항공의 개편안과 외국 항공사들이 실시하고 있는 마일리지 제도를 비교해 보면 전반적으로 대한항공의 마일리지가 소비자에게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현재의 상황은 두 항공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고용진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두 항공사가 2016년부터 2019년 8월까지 카드사 17곳에 마일리지를 팔아 거둔 수익만 1조8079억원에 이른다. 마일리지 탓에 부채 부담이 커지는 와중에도 카드회사에 마일리지를 팔아 과잉 공급을 부추긴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사들이 카드사 제휴 등으로 보너스 항공권 지급 규모에 비해 많은 마일리지를 남발했다”며 “미국의 경우 신용등급에 따라 엄격한 마일리지 적립 기준을 두는데, 이런 방안 도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해외 마일리지 제도와 비교해 보니
대한항공이 탑승 거리별 마일리지에 좌석 등급별로 공제율을 나누는 것과 달리 외항사들은 대부분 항공권 결제금액에 따라 마일리지를 제공하고 있어 전체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한항공 개편안에서 소비자에 불리하게 변경됐다는 장거리 노선, 이코노미 좌석을 기준으로 비교했다. ‘인천-시애틀’ 노선에서 미국 델타항공과 비교하면, 편도 기준으로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이용한 보너스 항공권은 4만(성수기 6만) 마일을 써야 한다. 델타항공의 경우 공개된 마일리지 공제 기준이 없는데, 공제 마일리지가 평균적으로 대한항공보다 높은 편이었다. 2020년 해당 노선의 공제 마일을 조회한 결과 3만2500~7만8000마일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회 시기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마일리지 적립률은 비슷하다. 같은 노선을 기준으로 대한항공에서 E등급의 티켓을 산다고 가정하면 5196마일이 적립되는데, 델타항공에서 같은 가격의 티켓을 산다고 가정하면 1달러당 5마일이 적립돼 4115~5850마일이 적립된다. 마일리지 유효기간의 경우 델타항공이 더 길다. 델타항공은 2011년 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을 없애 이후 적립된 마일리지는 사용하지 않아도 소멸되지 않는다. 에어프랑스 등 유럽 항공사도 결제금액 대비 마일리지 적립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에어프랑스의 기본 적립률은 1유로당 4마일이다. 인천-파리 노선에서 대한항공의 E등급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면 5626마일이 적립되는데, 에어프랑스의 적립 규정으로 계산하면 2772~3700마일이다. 에어프랑스는 홈페이지에서 인천-파리 노선의 보너스 항공권의 최저 공제 마일리지는 3만6000마일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의 개편안에 따르면 이 노선에서 4만 마일리지를 일괄 공제한다. 다만 에어프랑스는 일정 기간 마일리지를 추가로 적립하지 않으면 마일리지가 소멸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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