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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코로나19에 요동치는 외환시장] 미국은 코로나19 ‘안전지대’라는 시각의 변화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코로나19에 요동치는 외환시장] 미국은 코로나19 ‘안전지대’라는 시각의 변화

보수적 관점에서 달러화 재평가 가능성도 열어놔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당초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1월 중순 1150원에 머물렀던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기 시작했고 2월 하순에 1220원까지 고점을 높였다. 코스피도 한때 2000포인트를 밑돌았다. 이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에서 보인 달러화의 가격 변동은 투자심리 변화에 따른 전형적인 안전자산 선호 움직임과 궤를 같이 했다. 그런데 시야를 넓혀 글로벌 외환시장을 보면, 유로화나 엔화 등 주요 통화의 움직임을 두고는 논란이 있었다. 코로나19에 금융시장이 본격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1월 21일이었는데, 2월 20일을 전후로 양상이 달라졌기에 이를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2월 20일까지 금융시장의 반응은 중국 내 바이러스 확산에 주목했고 글로벌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의 초강세로 이어졌다.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최저치를 3년 만에 경신했고 엔화 가치도 10개월만의 최저로 급락했다. 위안화 가치도 함께 하락했다. 특히 엔화의 급락은 다수의 외환시장 참가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금융시장에 악재가 터져 주가가 하락하는 상황에 전형적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안전자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월 20일을 기점으로 외환시장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유로화, 엔화 및 위안화가 일제히 방향을 돌려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엔화의 안전자산 지위 상실 논란
먼저 2월 20일을 전후로 중국의 확진자 수 증가는 둔화되기 시작한 반면, 중국 외 지역의 확산세는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즉, 금융시장이 두려워하던 전세계적 대유행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한국,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중동에서는 이란을 중심으로 확진자 수 증가가 가속화했다. 2월 20일 이전에는 미국이 안전지대라는 인식에 근거하여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매수세가 집중되며 달러화 가치가 상승했으나, 그 이후에는 결국 미국도 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달러화가 하락했다. 전세계적 대유행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것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고 미국 내에서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확진자가 생기자 미국이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표출된 것이다.

독야청청 고공행진하던 미국 증시는 2월 20일부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다른 국가 증시 대비 상대적 우위를 지속했던 미국 증시가 하락하자 달러화도 주요 통화 대비 하락 압력을 받았다. 직전까지 달러화를 과잉 매수하는 과정에서 반대로 과잉 매도가 나타났던 유로화 및 엔화에서는 기존 움직임을 되돌리는 흐름이 나타났고, 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다우지수가 2월 27일 사상 최대의 일간 낙폭을 기록하는 등 미국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혼비백산하자, 연준은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3월 3일 예정에 없던 FOMC 회의를 열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25bp 인하 관례를 깨고 기준금리를 50bp 인하했다. 향후 추가 액션 여지를 남겼고 시장은 원래 예정된 3월 17~18일 FOMC에서도 추가 금리 인하가 뒤따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가뜩이나 취약한 유럽 경제 여건에 중국발(發) 악재까지 겹쳤음에도 2월 20일 이후 유로화 가치가 달러화에 대해 급작스럽게 상승 반전하자 이를 의아하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기존에 달러화 매수 및 유로화 매도 포지션이 과도하게 쌓였던 상황에서 미국 증시가 상대적 우위를 잃으면서 달러화 자산도 매력을 상실한 것이 결정적 배경이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엔화의 단기적 약세는 2월 19일 유럽장 초기부터 엔달러 환율이 110엔 저항선을 걷어내고 내달리기 시작하면서 불을 뿜었다. 엔화의 약세 모멘텀은 2월 19일과 20일 불과 이틀 만에 생명을 다했지만, 이 짧은 기간 동안 일본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지목되며 엔화의 안전자산 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다소 성급한 평가가 있었다. 당시 엔달러 환율은 2월 19일 유럽시장에서 시작하여 뉴욕시장 마감까지 12시간 가량 꾸준히 상승하면서 레벨을 높였다. 외환시장의 급변시 배경으로 흔히 지목되는 알고리즘 트레이딩 때문이었을까?

만약 110엔 돌파시 움직임이 알고리즘 트레이딩에 의한 것이라면 찰나의 주문 폭주로 엔달러 환율 급등이 나타났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몇 시간에 걸쳐 꾸준히 상승한 것은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아니라 실수요 물량이 있었던 것임을 반증한다.

2020년 들어 첫 두 달간 금융시장에서 위험기피 및 안전자산 선호 움직임이 나타날 때마다 엔화 강세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가장 큰 배경은 일본 공적연금(GPIF) 때문이었다. 외환시장에서 고래(Whale)로 불리는 GPIF가 엔달러 환율이 하락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 달러화를 적극 매수하며 엔달러 환율이 하락하지 않도록 하단을 끊임없이 받쳤다. 2월 중순까지 일본계 자본의 해외 채권 투자가 4조엔에 육박하며 17개월 만에 최대 규모 매수액을 기록한 것도 엔달러 환율 급등 과정에 GPIF의 해외 채권 매수가 배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엔화 움직임의 주된 동력은 일본 경제가 아니라 미국 경제 및 달러화의 움직임이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2월 20일 이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안전지대로 인식된 미국 자산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위험기피에 따른 엔화 수요를 압도했기 때문에 엔달러 환율이 112엔까지 고점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다시 엔달러 환율이 하락하고 엔화가 강세로 전환된 것도 역시 일본 경제 및 엔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미국 경제에 대한 시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달러화 재평가 가능성 열어놔야
코로나19가 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코로나 사태는 유동성의 문제가 아니라 전염병에 취약한 사회적 구조에 기인했기에,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유동성 공급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사스(SARS)가 그랬듯 날이 따뜻해지면 바이러스 확산이 진정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기존에 가졌던 시각의 유효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 인하 여력이 컸던 미국의 금리 인하 폭이 커질 경우, 유로화 및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고금리 매력도 빛이 바랠 전망이다. 이는 향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경우 원화에 대해서도 달러화가 재평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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